오늘도 남편은 출장지에서 돌아오지 못한다며
초저녁에 전화한통만을 남길 뿐이다.
그가 하는 일은 가는 곳마다 축제의 현장이라서
힘들고 고단한 시간도 구경삼아 일한다며
언젠가 넉두리하듯 그렇게 말하던 생각이 난다.
쌀쌀한 기온이 감도는 어둠이 내리는 가을 어스름녘이면
어디에서일까 아직도 끝나지 않았을 일자락 놓지 못하고 떨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내인 나는 노심초사하며 온 신경이 그리로 쏠리곤 한다.
아이들과 저녁을 먹을 때도 반찬 한두가지 덜하기 일쑤이고,
남편의 빈 자리를 바라다 볼 때면 밥맛은 저만치 달아나 버린다.
제 시간에 밥도 챙겨 먹지 못하고 있을 만큼 바쁘다 하는 사람 두고
제 시간에 밥 먹는 것... 따스한 실내에서 편안하게 쉴 수 있다는 것조차
내심 미안한 마음이 인다.
이번에 맡은 행사의 규모가 제법 큰 탓에
며칠씩이나 그 일에 매달려 근거리에 있는 시댁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남편은
어쩌다 집에서 밥 먹는 모습을 볼라치면 나는 그가 마치 손님 같아
슬그머니 웃음이 날때도 있다.
그래도 어머니손에 얻어 먹는 밥 한그릇 보다는
이젠 제법 아내의 손으로 지은 밥 한그릇이 더욱 마음 편해 보이는 그의 표정에서
가족이란 의미를 새삼 떠올려 보게 된다.
그렇게 잠 많은 나이건만 그가 돌아 오지 않는 날에는
늦은 밤까지 영 잠을 이루지 못하고 서성인다.
곁에 있을 때는 뭐 그리 대단하게 애틋할 것도 없는 듯 느끼다가도
곁에 없을 때는 여지없이 드러나는 뭔가 허전한 속내를 들키기라도 한 듯
며칠만에 집에 돌아온 그에게 나는 조금씩만 이해의 폭을 넓혀야지
마음 먹어 본다.
늦은 저녁 피곤에 젖어 돌아온 그는 씻기 바쁘게 머리를 베게에 붙히는 순간
요란하게 골아대는 코 고는 소리에 나는 그의 하루가 얼마나 고단했을까
마음 아파진다.
찬밥 먹는 일을 싫어하여 남편이 집에 못온다 하는 날이면
식구수대로 딱 맞춰서 밥을 해서 먹으면서도
왠지 한그릇 정도 따로 담아 놓고 기다리시던 예전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지만,
무사히 가장이 귀가하기를 바라는 기다림과 염려의 마음을
바로 그 그릇에 담아내시지는 않았을까 ...
그 마음이 한번 더 헤아려진다.
10년 동안 함께 살면서도 함께 한 시간 보다는
서로 각자 떨어져서 자신의 일에 할애한 시간이 더 많은 부부로 사는 나는
그 만큼 아쉬움도 많다.
다만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며 그것을 위안삼아
소소한 불평불만을 잠재워야 하는 것도 내 몫의 삶일꺼라는 것을
지나가는 가을 바람 한 자락에 털어 버리는 지혜로움을 내 안에
불러 들이고 싶다.
원하는 모든 것이 충족되진 않는다 해도
지금 이만큼의 건강과,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낼수도 있으리 ...
쌀쌀한 아침 아이들에게도 가디건을 챙겨서 입혀 주며
간 밤에도 아빠없는 빈자리에서 아이들도 함께 기다림의 시간 있었을 터에
아빠의 몫까지 더 많이 안아주고, 사랑해 주어야 하니
이 아침에도 난 참 바쁘고 정신없다.
그러면서 또 간밤에 늦은 시간까지 일하지는 않았을까?
남편의 안부가 염려된다.
부디 지금의 그의 고생이 젊어서는 사서도 한다는 그 값진 일이 되어지기를
이 아침에 난 간절하게 소망한다.
그런 남편을 둔 나는 좀더 따뜻한 아내가 되는 연습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
하는 생각으로 또 하루를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