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97

들꽃을 닮은 여자


BY my꽃뜨락 2001-06-15



갱년기 증후군인지 후딱하면 열이 나면서 벌떡증이 나고
어떤 땐 오슬오슬 춥기도 하고, 도무지 가닥을 잡을 수
없는 나날들입니다.

정신마저 산란해져 좁은 마루바닥을 겅중겅중 서성이다
옷을 벗어부치고 요위에 눕습니다.
오늘이 보름인지 베개 위로 둥싯 달빛이 내리꼿히는군요.

그 달빛을 보듬으며, 어렸을 적 모기장 밖에서 나를 희롱하던
동글동글하고 야무지던 그 달빛을 회상합니다.
한여름 밤에, 엄마가 빳빳이 풀먹여 만져놓은 옥양목 요호청에
대자로 뻗어 버석거리는 소리까지 즐기며 달구경을 하던...

나이가 가르치는지 요즘은 입고, 먹는 것은 물론 사람까지 가장
담백하고 자연스러워야 마음이 편합니다.
먹는 것부터 예전 입맛에 맞춰 요리를 하다보니 식탁이 온통
풀밭입니다.

열무 김치에, 호박은 반으로 납작납작 썰어 새우젓에 살짝 볶고,
가지는 열십자로 갈라 겅그레 위에 김 올려서 찢어 무치고.
밥 위에 살짝 익힌 호박잎을 꺼내, 풋고추 숭숭 썰어 뚝배기에
자글자글 끓인 된장찌개에 싸먹는 맛이란...

처음에는 이게 뭐야? 찡그리며 젓가락이 가지 않던 아이들도
이제는 제법 엄마취향의 식단에 적응이 되는지 싫다 않고
곧잘 집어먹으니, 갈수록 시골밥상이 자리를 잡게 되는군요.

입는 것도 까탈스러워져서 순면이나 순모 아니면 걸치기가
싫습니다.
돈도 없는 주제에 부황만 잔뜩 들은 것같아 민망스럽지만...

화학섬유는 아무리 디자인이 뛰어나고 색상이 아름다울지라도
몸에 걸치기만 하면 치근덕거리고 따끔따끔 한것같아 참을 수가
없으니 어찌합니까?

그러다보니 내 패션스타일은 맨날 면티에 면바지에 면남방에 면점퍼까지,
바뀔 줄을 모릅니다.
겨울엔 소재가 두꺼워지고 면바지가 골덴바지로 바뀌는 것 빼고는.

자연도 그렇습니다.
오만할 정도로 화려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장미꽃이나 서구미인처럼
늘씬한 글라디올라스, 칸나같은 화초보다는 우리 산야에 아무렇게나
널려있는 이름모를 들꽃들이 훨씬 아름답고 정감이 갑니다.

허름한 농가 돌담 밑에 수줍게 피어있는 봉숭아, 채송화, 접시꽃,
과꽃, 이렇게 아름다운 토종 꽃들의 정취를 무엇으로 대신하겠습니까?
요즘에는 큰 맘먹고 야생화로 뜰앞을 가꾸는 사람이 많아지는
추세이니 정말 반가운 현상입니다.

한 몇년 전부터 일부러 품을 내어 야생화 감상을 위해 전국을 누비니
내 말년에 눈호사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능소화 아시죠?
투명한 주황빛 꽃으로 돌담 위에 의지하거나, 고목나무에 서리서리 타고
올라가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는 그 화초 말입니다.

그런데 그 꽃의 가장 아름다운 자태는 어떤땐지 아십니까?
검은 기와로 네모 반듯하게 싸올린 굴뚝에 멋지게 타고 올라가며
주황색의 향연을 펼칠 때...

노오란 병아리색의 원추리, 새색시 이마 위에 달린 족두리 꽃술같은
자귀나무 꽃, 선홍빛과 흰색의 멋진 앙상블 금낭화, 깨박사 나리꽃...
아! 그리고 이 여름에 꼭 한번은 봐야 할 진귀한 꽃이 있습니다.
지리산이나 설악산, 아니 정선 아우라지 가는 길목에도 많이
있더군요.

바로 산목련, 일명 함박꽃입니다.
북한의 국화라고도 하지요? 아마... 순백색 나비같은 꽃날개를
활짝 젖히고 자주색 꽃술이 그림같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꽃입니다.
그것뿐인가요? 우리가 흔히 보는 개량목련은 향이 없지만,
이 자생목련은 향까지 은은하답니다.

에고! 들꽃 자랑하다 날 새겠다.
여기까진 취향대로 맞춰 살 수 있어 그런대로 괜찮은데, 정작 고민은
딴 데 있습니다.

사람, 그 놈의 사람이 문젭니다.
본듯, 안본듯, 좋고 싫음조차도 유난스럽지 않은, 그런 담백하고 수채화
처럼 맑은 사람이 갈수록 좋은데...
그렇다고 수십년 죽살이치고 코맞대고 부대껴 온 사람들을 선별해서
만날 수도 없으니 이 것 만큼은 대책이 없군요.

애증이 지나쳐 사람 질리게 하는 그런 사람은 정말 싫습니다.
성취욕이 남달라 눈까지 휘번득이는 사람, 나만은 비켜가고 싶습니다.
따지고, 점검하고, 못미더워 하는 사람, 에구 밀어내고 싶습니다.
부모든, 자식이든, 배우자든 자기 아니면 안되고 자기 품 떠나면
큰 일 나는 줄 아는 인간, 정말 어찌할까요?

그러나 인연이 닿아 만난 이 모든 사람들을 무심히, 그냥 웃음으로
내 가슴 한켠에 담을 수 있다면, 그럴만큼 내 그릇이 넉넉하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무리 마음공부를 하려해도 잘 되지 않는 우매한 중생의 번뇌는
무엇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
고통스런 밤입니다.

꽃뜨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