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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가져다 주는 것
BY 칵테일 2000-11-22
죽음이 가져다 주는 것
내 개인적으로는 아버지의 임종 외에,
한번도 다른 사람이 실제로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을 본 적 없다.
그러나 가까웠던 선배 언니와 친구의 죽음을
예전에 연이어 겪은 바 있어서,
가끔은 두려운 생각이 들 적마다
그들의 죽음이 떠오르곤 한다.
그들에게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 데,
둘 다 그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고,
우연의 일치겠지만
둘 다 18살의 어린 나이로 生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내가 고1 때 자살한 선배 언니는 매사에 모범적이고
사교적인 성격의 사람이었다.
물론 성적도 아주 우수했고, 학교에서는 학생 간부로서
나름대로 활동을 하고 있었기에,
선생님들의 귀여움도 독차지 하고 있던 언니였다.
또한 활달하고 누구에게나 다정한 그 언니의 성품은
주변의 많은 사람을 사로잡아서,
유난히도 친구나 후배들이 많았었다.
그 주위 사람들 중의 하나가 바로 나였는 데,
그 언니의 죽음을 알게 된 후, 내 자신은 한동안
그 언니로 인해서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했었다.
그래서 그 언니가 좋아하였던
'아드리느를 위한 발라드'를 종종 방송에 내 보냄으로써
그 언니에 대한 나의 미련을 표현하기도 했었으니까.
하지만 그 언니의 죽음의 이유는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하였다.
다만 누구나에게 모범생으로 비쳐지던 자신의 모습에
대해 적잖은 부담을 느끼던 차, 개인적인 어떤 시련을
겪으므로 결국 죽음을 택했다는 이야기만
각종 소문이 무성한 가운데 떠돌았었다.
그렇지만 어떤 사유로 그 언니가 죽음을 택했던 간에
그것이 너무도 허망했던 것이,
그 언니가 죽고나자마자 선생님을 비롯한 친구나
그의 각별했던 주변 사람들은
일제히 그 언니를 나쁘게 평하고 다니는 것이었다.
그들이 언니를 나쁘게 평하는 이유의 대부분은
제 손으로 목숨을 끊을 만큼
'독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렇다하더라도 그 언니와 가장 절친했던
어떤 언니가 오히려 남들보다 훨씬 더 큰 목소리로
그 언니를 흉보고 다니는 것을 보았을 때는
무척 충격을 받았었다.
어찌 친구라는 존재가 별 의미없는 다른 사람보다
더 그 사람에게 반감을 보일수 있는 것인지,
그때의 나에게는 그 언니의 그런 면이 새삼 두렵게
느껴져, 그 언니와는 아예 그 뒤부터는
상종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사람이기에 어쩌다가 있는 자리에서 욕을 하는 일은
있을 수 있겠지만, 어찌 이승에 있지 않은 사람을
남보다 더 큰 목소리로 욕하고 다닐 수 있단 말인가.
그 언니가 죽음을 택하기까지 그 나름대로는
혼자와의 많은 싸움을 했을 것인데,
적어도 친구라면서 살아있을 때 그 아픔을 함께
나눠 주지도 못한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착잡한 기분이었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때때로 자신들이 너무도 잘났기에
오히려 종종 우를 범하기도 한다.
친구란 무릇 자신의 다른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예컨대 누구나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우습다고 경멸
하지 않음은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애정의 표현이며,
또한 최대한의 자기 사랑이라 볼 수 있다.
그 언니가 나에게 살아서 큰 의미를 주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언니는 그렇게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한 사람의 죽음으로 인하여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얼마나 허망하고 부질없는가를
그 언니는 죽음으로 나에게 보여준 셈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씩 생각한다.
내 친구나 선배, 후배, 사랑하는 사람 등등
나와 비교적 가까운 이들이 과연 내가 죽은 뒤에도
지금같은 호의로 나를 기억해줄까하는
야릇한 생각을 말이다.
하지만 꼭 그러리라고 기대하지 않는 것도
또한 나의 생각이다.
그렇게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사실 존재와 비존재로 나뉜다는 것에 있겠지만,
사람의 기억과 마음만을 의지한다면
그 영멸함만은 절대적이 아닐 것이다.
몸은 죽었으되, 마음 속 끝까지 지지 않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아있다면
비록 죽었다하여도 너무 행복하지 않은가.
그런가하면 살아있다하여도 어느 누구에게도
의미 없고 무가치한 존재라면 그것이 살았다한들
무슨 고귀하고 아름다운 삶이라 할 수 있을까.
목숨에 연연하여 추하게 사는 것도 보기 흉하겠지만,
그렇게 살아있으면서도 별 의미없는 삶을
사는 것은 더욱 슬픈 일이다.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이 어쩌면 공간과 시간의
차이를 뛰어넘는 일이 될 수는 있겠지만,
결국 그것도 한 사람의 인생의 한 단면이라면
무슨 다른 뜻이 있을 수 있을까.
어차피 이 인생살이에서 영원히 살아남을 자
한 사람도 없는 것을, 굳이 의미를 두자면
生과 死를 초월하여 지금 한 순간순간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라고나 할까.
내가 죽음에 있어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내 자는 중에 홀연히 거두어 질 목숨이라면 좋겠다.
아무도 내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지 못한 채,
그저 조용히 꽃잎이 지듯
한순간에 영원히 질 수 있다면 .....
그리고 내 죽은 뒤에 나를 아름답게 추억해 줄
몇 몇의 지인이 있어준다면.....
무엇이 두려우리.
꿈같이 죽음이 어느 날 갑자기
날 찾아온다하여도 말이다.
어차피 시간의 차이는 있을 망정, 언젠가는 누구나
사라질 정해진 목숨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구태여 무엇에 더 미련을 두고
애착을 가질 것인가.
칵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