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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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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 - 대책없는 사람들의 대책없는 사랑


BY rjvna2 2002-09-10



1. 편견과 오만

주인공 종두는 단순한 전과자가 아니다. 그의 천성은 착하나 그 선함을 지킬 수 있는 의지나 사회적 능력이 없다. 본능(강간미수범)과 상황(형 대신 감옥에 가기)에 의해 전과자가 되었고 무능력과 부적응으로 다시 범법자가 된다.

영화에서 형과 동생은 종두에게 시종일관 생각 좀 하며 살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종두에게는 '생각하며 살기'의 내용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자기의 실수로 죽은 사람의 집에 찾아가서 사죄하기가 왜 생각없는 짓인지 모른다. 어머니의 생일 파티에 왜 공주를 데리고 나타나면 안되는지 모른다. 물론 간단한 것 몇 개는 안다. 출감하면 생두부를 먹어야 한다는 것 정도.

그리고 나쁜 짓을 하면 안된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그 나쁜 짓의 내용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른다. 수많은 규칙과 금기를 일일이 몸과 마음에 새기며 사는 것이 그에겐 너무 벅차다.

공주는 신체 장애로 인해 완벽하게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 있다. 뒤틀린 육체와 뒤틀린 눈, 의사 소통 불능.....그녀의 삶을 적절하게 설명하거나 충분히 묘사할 수 있는 단어나 문구를 찾지 못했다.
고립, 소외, 절망..... 상투적인 단어 몇 개로 그녀에 대해 말할 수 없다. 그녀의 삶, 인생, 사랑 모두가 수용 불능이다. 그저 혼란스럽다. 그녀의 삶이. 아니, 내게 비춰지는 그녀의 삶이. 도대체 왜? ... .라는 질문만 되뇌게 한다.

그러나 이런 질문 자체가 얼마나 편견에 가득찬 생각인가? 의미라던가 가치라던가 하는 말들은 또 얼마나 오만한 말들인가? 누가 감히 타인의 삶의 의미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가? 누가 감히 한 인간의 가치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는가? 편견에 오만을 더했다.

2. 사랑은 아무나 하나

흔히들 사랑에는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고 한다. 어떤 책임과 의무일까? 이때 말하는 책임과 의무는 사랑하는 사람 두 당사자들에 대한 책임인가, 두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과 의무인가?

종두와 공주 두 사람은 자기 자신조차도 책임질 수 없는 사회적 금치산자이다. 금치산자에게 사랑은 허락되는가? 책임과 의무를 다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감정은 사치인가? 사랑의 감정조차도 허락받아야 하는가? 타인들에 의해 사랑불능의 판정이 내려지면 그 사랑은 막을 내려야 하는가?

그래야 한다고 평균적인 사람들은 생각한다.
보통 사람이라는 말은 쓰지 않겠다. 보통의 반대말은 특별한 사람이라는 뜻인데 종두나 공주는 결코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잠재적인 너와 나의 모습이다. 드러나지 않은 우리의 모습이며 떨쳐낼 수 없는 나의 분신이다.
정상적인 사람들이라고도 말하지 않겠다. 정상인이란 지칭은 장애인에게는 너무나 모욕적인 말이다. 불편한 것이 왜 비정상인가? 누가 정상이고 누가 비정상인가? 누가 멋대로 구별하는가?

잘난 사람 못난 사람 가리지 않고 모두 섞고, 섞은 수대로 나누어서 나온 평균인 .... 다친 무릎에 약을 발라주면서 '난 정말 삼촌이 싫어'하고 말하는 형수, 장애인 동생 덕에 장애인 아파트를 분양 받았으면서도 정작 장애인 동생은 떼어버리고 이사간 오빠 내외, 강간 현장에 숨이 넘어갈듯한 충격을 받고 '불쌍한 우리 아가씨'를 되뇌는 올케, 둘의 행위가 절대로 사랑일리 없다고 단정해버린 가족, 경찰, 목사 .... 모두가 평균인이다.
이런 평균인들이 사랑할 수 있는 자격 조건을 정하고 그에 못미치는 종두와 공주의 사랑을 금지하고 사랑을 벌한다.

사랑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나는 유부남 유부녀의 사랑만 금지되는 줄 알았는데 정말로 사랑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또 있다, 신분차가 현격한 남녀의 사랑도 금지된다. 연령차가 많이 나는 사랑도 의심받고 경제적 차이가 현격해도 삐딱한 눈으로 바라본다. 정말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도 몇 안된다. 사랑은 저리도 지천에 널려있는데 선택된 소수만이 사랑할 수 있다.

3. 해피엔드?

영화보면서 여간해서는 울지 않는다. 거미줄 같이 예민한 감성은 사는데 별 도움이 안된다. 작은 일에 상처받기 쉽고 잊어야 할 기억을 붙잡고 산다. 해서 나이들면서 감성이 무뎌지는 것을 다행이라 생각했다. 물론 아쉬움도 있지만 무뎌진 감성이 주는 편안함이 더 크다. 그러나 공주가 울부짖는 장면에서 눈시울이 붉어지고 종두가 공주를 위해 나뭇가지를 잘라내는 장면에서는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서러운 우직함 ....나뭇가지의 그림자를 보고 무섭다던 공주를 위해 자신이 다시 잡혀갈지도 모르는데 이것저것 생각하지 못하는 종두의 사랑 표현, 그 방법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해내지 못하는 부적응자의 사랑. 라디오 볼륨을 높여 종두에게 답하려는 공주의 안간힘...

너무나도 아름다우면서도 처절한 사랑이다.
사랑이란 그런 것 아닌가? 앞 뒤 기리지 못하는 것, 내일 종말이 온다해도 사랑한다고 온몸으로 외치는 것, 내 몸 부서질 걸 뻔히 알면서도 가서 부딪치는 것.

마지막 장면, 공주는 불편한 몸으로 방을 쓸고 있고 감옥에 들어간 종두의 편지가 나래이션으로 깔린다. 잘 있냐고, 나는 잘 있으니 걱정 말라고 ......

해피엔드인가?
아니, 해피엔드로 끝내고 싶은 감독의 희망이다.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이다. 해가 서쪽에서 뜨지 않는 한 종두와 공주에게 사랑은 없다. 사랑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그게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