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와 큰어머니는 동갑이시다.
두 분은 동서지간이시며 너무나도 판이하게 사시는 걸 보면 인생의 미묘함을 느껴본다.
오늘 큰아버님 댁엘 다녀 왔다.
시골이라 사는 게 변변치 않았다.
큰아버님은 마당에 따뜻한 햇살이 그리운 병아리 마냥 웅크리고 앉아 계셨다. 치매를 앓고 계시는 큰아버님은 우리를 보더니 이내 나오신다.
"내가 여기에 피난 나와 있지 않냐"시는 백부 님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안에서 큰어머님이 삐끔이 내다 보시더니 얼른 나오신다. 추울 때 입으시라고 두툼한 옷들을 정리해서 갖고 왔다. 두 분께 드리니 좋아하신다.
방에 들어가 큰어머님의 푸념이 시작되고 이때부터 우린 귀기울여 그 푸념을 다 받아 들인다.
박복하신 큰어머니, 4번째 부인이시다.
세분은 살다 결국은 보따리 싸 가지고 다들 도망가셨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우리 어머님 말씀에 의하면 큰아버님의 바람 끼 때문이라고 하신다. 내가 시집왔을 때에는 지금 큰어머니가 계셨다. 처음엔 몰랐었는데 결국 시어머니 입을 통해서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온갖 고생 다하신 큰어머님, 고생한 흔적이 얼굴과 풍기는 인상에 그대로 베어 있다.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자 둘 이렇게 살고 계신다.
그 아들은 친아들이 아니다. 나도 그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어디서 데리고 와 키운 삼촌 아닌 삼촌이다. 이름도 개똥이라 불렀다 한다.
그 삼촌의 청소년기부터 결혼하기까지는 시어머니의 입을 통하면 개망나니 짓은 다 했다 한다. 그 뒤를 우리 아버님이 많이 봐 주시고 거기에 시어머니가 큰댁이라 하면 치를 떠신다.
남편 복이 없으면 자식 복도 없다고들 한다. 우리 큰어머니를 두고 하는 말 같다.
지금까지 마음 편하게 살아 본 적이 없는 큰어머니. 힘든 농사일 도맡아 하시고 온갖 궂은일 다 하신다. 그러면서 볼 때마다 시어머니 안부를 물어 보시는 큰어머니를 보면 마음이 좋으신건 지 아니면 눈치를 보시는건 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우리 어머니는 당신의 시숙을 완전히 개나 소 보듯이 한다. 내가 보기에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난 다음 할머니 제사에 가신 어머니께 큰아버님이 얼굴이 좋아 보인다고 말씀하셨다고 그 뒤로 발길을 끊으셨다. 지금 6년째 큰댁에 한번도 안 가셨다. 당신의 시어머니, 시아버지 제사는 나의 남편에게 돈만 10만원 들려서 보낸다. 만약에 내가 그렇게 한다면 어떻게 하실까.
인간의 도리....
전혀 모르시는 시어머니이시다.
시어머니도 젊으셨을 적엔 고생을 많이 하셨다. 그 시절엔 모두들 정말 많은 사람들이 고생했던 때라서 내가 보기에는 그리 심하지 않은 것 같은데도 어머니는 힘드셨다고 하신다.
장사 수단이 있으셔서 인지 금방 돈을 모으셨다. 아버님과 함께..... 자식들 키우면서 큰아들 유학 보내고 나의 남편, 시누 두 명을 서울로 보내 다 공부시키셨다.
시아버님은 자식들을 무척이나 챙기셨다. 자상하시고 인자하시고 따뜻한 마음씨를 갖고 계시던 아버님, 그 사랑을 받고 사신 시어머니이셨다.
시아버님은 돌아 가셨지만 그래도 어머님은 아버님이 남겨 놓으신 재산이 많아서 매우 풍족하게 사신다. 그러면서도 매일 돈이 부족하시다 한다. 이해할 수가 없는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조금이라도 진짜 조금이라도 당신의 형님이신 큰어머니께 나눠 드리면 아니 도와 드리면 좋을텐데..... 얼마나 아까워 하시는지....
생각하기조차 싫어하시는 시어머니다.
오늘 농사지으신 쌀을 한가마니 가져 오면서 10만원을 드리고 왔다. (어머님이 시켜서)..
"큰어머니, 그냥 갖다 먹기 미안하니 용돈하시래요. 어머니가요" 말씀드렸다. 큰어머니는 안 받으시려고 나에게 돌려주는 것을 뿌리치면서 나왔다.
우리 어머니께 갔다 왔다고, 돈은 쌀값이라고 드렸다고 했더니 글쎄 소리를 버럭 지르신다.
그게 무슨 쌀값이냐고, 우리 땅에서 농사지어 먹고 살면서 쌀 주는 게 당연한 거지 무슨 쌀값이냐고 하신다. 그 돈은 구정 제사 때 음식 준비하라고 주시는 돈이라고 하신다.
그게 무슨 상관일까. 꼭 그렇게 따져야만 할까. 당신에게서 돈 10만원은 없어도 그만이신 돈이다. 항상 우리에게도 말씀하신다. 도와줄 필요 없다고...
갈 때마다 그래도 우린 사골이라도 돼지갈비라도 사서 가는데 우리 어머니 아시면 큰소리 치신다. 그런 것 얻어먹을 자격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하신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동갑내기이면서 동서지간이신 두분...
이 두 분을 보면서 인생의 아리송함을 느낀다.
큰어머님을 보면 너무나도 불쌍하고 시어머님을 보면 내가 울화통이 치민다.
커다란 건물 안에서 너무나도 풍족하게 사시는 얼굴에 고생하나 안하신 듯한 얼굴의 시어머님, 농사짓느라 손이 쪼글거리다 못해 문드러져 버린 손을 가지신 큰어머님.
신은 이런 여인네들을 보면서 어떠한 생각들을 할까...
궁금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