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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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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얼굴


BY 영광댁 2001-06-02


테마가 있는 글방에 방금 올린 글인데 여기에 다시 옮겨 놓습니다.
에세이 방엔 늘 들락거리지만 벗님들의 글에 감상 적지 못해서
늘 미안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곳이 제일 좋습니다.
노르웨이님의 눈물어린 글에 메일 주소를 몰라 편지를 쓰고 싶은데
보내지 못하고 있네요.
소풍 다녀오신 분들을 이렇게 부러워 할 줄 알았다면 삿갓쓰고 장에
간다는 사람 두엄 지고 따라간다는 격으로 따라가 볼걸
후회하고 있습니다.
내년엔 꼭 가봐야지... 벌써 부터 혼자 다짐하고 있습니다.

어쩐 일인지 오늘은 몹시 우울하고 ...




아름다운 얼굴

제가 아주 암담했을 때 서울 광희동 1가에 있는 s 손해보험 사무실에서
저와 제 어린 아이들의 입에 풀칠을 할 수 있게 도와준 회사에서 한 사람을 만났네요.
물론 회사에서 바라는대로 교육을 받았고, 시험을 쳤고 계약체결을 하였으므로
일한 만큼의 품삯을 받는 것이였지만 그 회사에서 나를 도와주었다고만 씁니다.
그 일을 시작한 지 횟수로 4년이 되는 지금도 낯가림이 심해 사람들 앞에 나서지도
못하는데 그땐 일을 시작한 지 처음이였으니 어느 길로 나서는지 알기나 했겠어요.
간간히 트레이너의 도움을 받아 낯선 사람들을 사귀는 법, 말하는 법을 배운다지만
번번히 저는 같이 따라가다가 부러 사람을 놓아버린 것이 한두번이 아니였으니
집을 나서서 나오긴 했지만 갈곳이 없었던 겁니다.
사람들이 겁나고 내 자신이 겁나서....

해걸음이 지고 집으로 돌아올 시간인데 나서지 못하고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엉거주춤하고 있는데, 한 사람이 지갑을 놓고 왔다고 버스비 500원만 빌려 달라고 해서
지갑에서 내 가라고 했어요. (동전넣는 작은 지갑이였고 그때까지도 전 지갑도 없었어요)
그 시간의 시점에서 허둥대며 살아가는 내 모습이였으니까.
사람들 앞에서 낯설고 어설프기 그지 없어서 나눠줄 자료들 잔뜩 뽑아 놓기만 하고서 감히
문밖으로 들고 가지 못하고 ,밤엔 분식집에서 알바를 하였고 하도 보기가 딱해 도와주는 사람들의 손길도 뜸한 낮엔 그냥 넘기는 시간이 아까워 리서치를 한다고 겁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지쳐있었을 때니 버스비만 놓고 다녔을까요.
나도 잃어버리고 싶었을 때인데.
아니 나는 없었을 거고 에미만 있었을 거예요.

그 한사람 들국화 같았네요.
고개를 수그리고 일에 열중하는 그가 어찌나 갸름하고 갸냘퍼 보이던지 얼마나 조용하던지 내 책상과 먼 곳에 앉아 있는 그를 바라 볼때마다 내 가슴이 자꾸만 내려 앉았습니다.
나도 그랬지만 그도 도체 이 일과는 맞지 않은 사람으로 여겨지기만 했습니다.
정말 주제도 넘게...
그리고 어느 날 그 500원은 그가 이 나라에서 이름이 등록된 시인이라는 팻말을 달고 내 가슴 깊숙이 돌아왔습니다.
합병된 은행으로 남편이 실직을 했으며 IMF가 그를 신새벽에 신문을 돌리게 했고 우유를 돌리게 했다고 ... 그리고 그녀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녀나 나나 눈안에 무언가가 번들거려서 한참씩 눈을 감고 앉아
있었던 거 밖엔 더 이상 퍼내지 않아도 느껴지는 고단함이였어요.
서리내린 기온속에서 선명하게 피어 있는 국화꽃을 아시겠지요.
그는 그 국화꽃이였네요.
그리고 또 그 어느날 숫기 없기는 세상에 저만도 못해서 그사람 책상을 빼고 자리를 옮겨
갔습니다. 제게 마음의 친구라는 명찰을 하나 달아주고 ....

간간히 그녀를 만나 차 한잔을 마실 때마다 그 사람됨에 한 걸음 다가서지고 그 야무짐에 한 걸음 더. 그 내면에 가득쌓인 솜씨, 맵씨에 한 걸음 더, 그 부지런함에 한 걸음 더...
이력을 들쳐보아 그가 살아온 날이 어찌나 화려한 단정함인지, 그녀 말마따나 꿈속에서
살았네로만 쓸 수 밖에 없는 그 남편분의 이력이나 집안도 그랬는데...
그런 그녀가 보여주는 생활에 저는 고개를 흔들며 길바닥에 퍼질러 앉은 꼴이였네요.
그 단정한 내면의 빛이 검소한 그의 옷차림을 무색하게 만들어 버렸대도 이해하시겠지요. 내 단정한 단화가 사람들이 많은 길에서 자꾸 벗겨져 다시 줏어신고
자꾸 벗겨져 줏어 신기를 반복한 즈음에....
그가 하던 일은 공공근로 일원, 경양식집 그릇 닦기, 리서치. . .
그리고 아이들에게 편지쓰기... 더 이상 시는 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써지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리고 둘 다 그랬던 것 같습니다. 시나 글보다는 밥이 먼저라고 ...
눈 맑은 새끼들을 키워야 한다고...

그후 얼굴 보고 싶은데 서로 바빠 만날 수가 없었어요.
지난 가을 그녀의 집을 ?아가 들국화 같은 그녀을 보고 함께 점심을 먹고 헤어졌습니다. 그가 일해서 가족의 생활과 생계를 이을 수 있는 자리를 ?은 지 이틀째라며 벙거지 모자를 쓰고 얼굴에 홍조를 띠며 아름다운 얼굴의 갈대가 되어 걸어갔습니다.
저도 그 빛에 물들어 아름다운 갈대가 되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책을 빌려 봤는데 누군가의 책 속에 있었다는 걸 A4용지에 옮겨 적은 시였는데
그걸 내게 주며 가져다 냉장고에 붙어두라던 요리 한가지.
그녀의 탁자에 엎드려 연필 꼭 꼭 누르며 적어왔네요.
누군가는 이미 다 알고 있는 요리법이였겠으나 제겐 이것저것 넣어 요리는 하였겠지만
이름없는 요리였고 재료는 이미 상했고 잡다한 재료에 제 분량을 맞추지 않고 않고
마구잡이로 넣었으며 끓이지도 않고 날것인체 둘러 삼켰을 게 뻔한
"가슴으로 마시는 사랑차 "였습니다.

재료준비
1.미움과 불평은 뿌리를 잘라내고 잘게 다진다.
2.시기와 자존심은 속을 빼낸 후 깨끗이 씻어 다진다.
3.짜증은 껍질을 벗기고 반으로 잘라서 넓은 마음으로 절여 둔다

차 끓이는 법
1.주전자에 실망과 미움을 한 컵씩 붓고 씨를 잘 빼낸 다음 불만을 넣고 푹 끓인다
2.미리 준비한 재료에 인내와 용기를 첨가하여 재료가 다 녹고 없어질때까지 충분히 기다린다.
3.기쁨과 감사로 잘 젓고 미소를 몇 개 예쁘게 띄운 후 사랑의 잔에 부어 따뜻하게 마신다.

추신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사랑차는 주문하시는 것보다 직접 끓여 드시는게 낫겠죠.
그런데 재료(불평,불만등....)는 무궁무진한데 차를 끓여서 마시는 일(인내.기쁨,감사)
이 무지 힘든 거 같아요.
그래도 자주 이 사랑의 차를 마시도록 하구요.
다른 이에게도 많이 나누어 주면 좋겠네요. 라구요.
저는 그 밑에 다른 추신을 하나 더 보태놓습니다.
추신:후일 그 시인님이 제 글을 보게 된다면 허락받지 않고 썼음을 용서 바랍니다.

그 사랑차 끓이는 법은 제 냉장고에 여즉 잘 붙어 있고,
사랑차 덕분인지 저는 이제 사람들이 많은 거리에서 내 단화는 더이상 벗겨지지
않으며 더 이상 주워신지는 않지만,여전히 허둥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낯설고 말을 더듬고 ... 부끄러워 하면서 ....

그 아름다운 얼굴, 삶을 가꾸는 그 당당한 얼굴, 국화꽃같은 얼굴.
여기 두고 갑니다.

다들 행복한 시간 되시기를 빕니다.

강 경자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