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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68

그자리의 그 국화꽃.


BY somjingang 2002-08-27

지난 여름휴가중에 어렵사리 바쁜 친구랑 시간을
맞춰 친구의 산소를 들러 볼수 있었다.
작년 이맘때 사랑하는 남편과 차마 가슴에도 묻을수
없을 아들녀석을 남겨두고
너무도 짧기만한 서른다섯해를 마감한 친구에게
가는 길은 가슴이 떨리고 다리도 떨려와서
들고 가던 국화화분이 그렇게나 무겁게 느껴질수가
없었다.

멀리 있다는 핑계로 여태 찾아보지 못한 나의 불찰이
친구의 산소를 찾는 발길을 떨리게 했으리라 생각하며
물어 물어 그 친구의 시댁 선산으로 향했다.

친구가 생전에 좋아했던 노란 후리지아를 들고 가고 싶었지만
후리지아 피는 봄은 이미 지난지 오래고, 노란 장미라도 사고
싶었으나 한적한 시골의 들가 어디서도 꽃집을 못찾고 대신
화원하나를 발견해 들어가 보았었다.

꽃은 안 판다고 했다. 대신 국화꽃 화분이 어떻겠냐고 해서
노랗게 꽃송이가 다닥다닥 달린 커다란 국화꽃 화분을 골랐다.
곧 피어날듯 풍성한 가지가지 마다 꽃송이를 많이도 매달고
있는 그 국화꽃 화분이 보는 순간 맘에 쏙 들었으므로
더 망설일 필요도 없이 그걸 골랐었다.

무거웠다. 비가 온뒤의 밭은 이랑이랑 마다 물을 가득 품고 있었고
그걸 피해 밭둑으로 올라섰으나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서 우리
둘인 신발이며 바지까지 진흙에 빠져 가며 올라 올라 갔었다.

샌달이 흙투성이가 되었고 하얀바지를 입고온 친구는
세탁을 해도 원래 색으로 되돌아 올것 같지 않게 진흙물이
들어 버렸지만 그래도 우린 웃었다. 이애가 우릴 이런 추억도
만들어 주는구나... 평생 오늘 이렇게 무거운 국화화분을
들고 진흙 속에 박히며 저를 찾아갔던 일을 잊을수가 없겠다, 그치?

친구가 다소곳이 누워있었다.
앞으로는 밭이 넓다랗게 펼쳐져 있었고, 밭이 끝나는 곳에는
양식장인듯한 곳이 그리고 그 뒤로는 작은 강줄기가 조용히
흐르고 있는 곳에서....자신이 생전에 그토록이나 사랑했던
신의 품속에서 안식과 평온을 얻은듯 싶게 평화로이 잠들어
있었다.

친구를 위해 내 마음속에 써온 수많은 편지들 한구절도
생각이 안났다. 그냥, 세월의 간격이 서글프게 다가왔다.
옛날 어느한때 우린 해남 대흥사로 여름휴가를 갔었다.
그때 그 친군 너무도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사진속에
박혀 있었으므로 난 그 친구가 병실에 누워 있던 초췌한
모습보단 이상하게도 그 사진속의 웃는 모습으로 기억되곤
했었다.

친구의 산소 한귀퉁이에 자라난 명아주며 강아지풀을 손으로
뜯어내고 그 자리에 가져온 국화화분을 놓아 보았다.

아, 그때 비로소 밀려오던 친구를 잃은 상실감,... 결국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나보다 먼저 친구의 산소를 찾아 보았던
함께 온 친구는 그런 나를 두고 산소 뒷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래... 눈물로라도 그렇게 만나거라.. 우리가 감당하기에
너무 벅찬 서글픔을 그렇게 라도 풀어 버리거라... 아마도
그 친구는 나를 향해 그렇게 얘기하는듯 했다.

오늘 친구의 산소와 그래도 나보단 가까이에 있는
친구에게 편지를 쓴다.
..........그때, 국화화분을 오른쪽 한켠에 두고
내려와서 보니 왠지 쓸쓸해 보이더구나...
그래서 말인데 똑 같은 국화화분 하나 더 구해서
그 왼쪽에 하나 갖다 두지 않을래?
다른건 몰라도 혼자 누워 있을 그 적막함에
외로움까지 더해 주고 싶지가 않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