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이 바빠 거의 밤 9시를 넘겨서
들어오는 남편을 보며 참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일요일인 어제도 남편은 바쁘다며 새벽밥을 먹고
일찍 집을 나섰다
애들과 같이 놀면서 집안을 정리하다 책장위에 있는
마늘주, 더덕주, 매실주, 회양주를 발견하고
식탁의자를 갖다놓고 더덕주병을 내려 한번 개봉해 보니
술이 잘 익어 독한 소주냄새는 나지 않고
더덕향기만 은은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향이 너무좋아 국자로 조금 떠서 살짝 입에 대어 보니
술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보아도 참 좋은 술이 되어 있었다
술을 담갔던 더덕은 작년에 출장갔다가 오는 길에
직원과 같이 우연히 산에서 약초캐는 할아버지에게서 진짜 산더덕을 살 기회가 있어
거금(6만원)을 들여 산것이다.
일요일까지 가족을 위해 일하러 가는 남편이 오면
과일과 함께 내어놓아야지 하고 술만 걸러 따로 병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어제도 남편은 10시가 거의 되어가자 피곤한 얼굴로 들어왔다.
나에게 보여지는 얼굴이 피곤해 보여
"피곤해요" 물어보면 남편은 항상 웃는 얼굴로
피곤하지 않다고 한다.
매사에 남편은 그렇다.
긍정적이고 낙관적이고 자기가 죽을만큼
피곤하지 않으면 가족들앞에서
절대로 나약한 모습 보이기 싫어하고.
결혼생활 10여년이 지나고 내가 공들이지 않고 얻는 것이 있다면
아마 남편의 행동하나하나에 깃들어 있는 의미를 설명해 주지 않아도
아는 것일 것이다
밤참으로 포도와 작은 귤을 온가족이 둘러앉아 먹으면서
일요일데도 아빠와 같이 놀지 못해 아빠의 빈자리를
단 몇분으로라도 메꾸려는지
아이들은 계속하여 아빠에게 하루 있었던 일들을 종알거린다
그런 남편과 아이들을 보면 왜그리 즐거운지...
냉장고에 우유를 가지러 간 둘째가
낮에 작은병에 걸러두었던 더덕술을 가지고 나오며
"아빠 약" 하며 남편에게 가져다 준다.
"그래 아빠 피곤하니까 약 드시게 하자"
하며 한잔 따라주니 남편이 감탄한다
소주를 좋아하지 않는 남편이지만
독하지도 않으면서 마시고 난 후의 향기가 입안에
은은히 남은 더덕술이 너무 좋단다.
더덕술 두잔을 마시고 난 남편은
갑자기 관대해지며 큰애와 약속을 한다
이번에 아이가 보는 시험에 최선을 다해 합격하면
"레고 스타워즈..."블럭을 사주겠다고.
옆에 있던 난
"그럼 더덕술 담가준 나는 뭐해줄건데"하니
"당신도 원하는 것 다 해줄게, 뭐해줄까 " 한다
"난 여름휴가도 못갔으니까 시간나면 가을여행 가요" 하자
더덕술두잔에 남편은 흔쾌히 모든 것이 오케이다
가족이란?
이래서 좋다
아무것도 아닌것에 서로 감동받고 마냥 즐겁고..
더덕술 두잔에 큰애는 레고블럭, 난 가을 여행을 따냈으니....
이만하면 남편에게 술담가준 보람이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