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이라는 시간이 또 그렇게 지났다.
매달 20일은 어김없이 찾아오는 월급날이다.
급식비 명목으로 지급되는 몇푼의 돈이 덩그라니 담긴 봉투...
아마도 월급은 지금쯤 나의 통장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오랜시간 몸담은 것에 비하면 그리 많은 액수는 아니라고 말할수도 있겠지만,
난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그 봉투에 씌어진 나의 이름 석자
그리고 일일이 컴퓨터로 찍혀 내려간 숫자를 눈으로 읽어 내린다.
그 속엔 힘들었던 고통의 시간들도 고스란히 녹아 있음에 조금은 서글프고 그렇다.
결혼을 하고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부터는
나도 남편에게 의지하여 조금은 편하게 세상을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의 일이란게 살다보면 어떤 어려움에 처할수도 있고,
내가 남편에게 어떠한 방법으로든 도움이 될수 있다면
그것으로써 나는 충분히 만족할수 있다는 생각에
지금껏 일을 계속 해 올수 있지 않았나 싶다.
가끔씩은 그런 생각을 한다.
사십을 바라보는 나이의 여자가 현실적으로 새로운 일을 찾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게 아니었기에 어쩌면 그동안 마음에 들지 않을때도 있었을
지금의 직장을 고수하게 만들었을 가능성도 클 꺼라는...
봉투에 찍혀진 숫자는 다소 버거운 현실을 살아내게도 하지만
그 돈으로 아이들은 좋아하는 피아노를 칠수도 있었고,
한참 흥미로워 하는 영어를 즐겁게 배울수도 있어서
봉투가 점점 비어갈수록 다른 한켠에서 무엇인가 채워가고 있는 충만감으로
줄어드는 통장잔고에도 나는 행복하다.
20대의 나는
이상은 높고 현실은 나를 채워주기에는 역부족이라서인지
늘 새로운 도전을 일삼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들의 엄마가 된 이후로는
나 자신만을 위하는 시간으로 살기보다는
얼마 안되는 액수이지만 내 손으로 번돈이 내 아이들에게 뭔가를 해줄수 있다는 기쁨에
그 어떤 것보다도 자랑스러운 자긍심을 갖고 살수가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한해 두해 나이 들어감이 느껴지는 곁에 있는 남편의 건강이 염려되어
또 가족들의 미래를 생각하여 내 힘으로 종신보험도 가입했다.
이번달부터는 아주 작은 액수이지만 따로 떼어 내
우리 가족의 여행을 위한 적금을 들어 둘까 한다.
일년에 한번쯤은 일상의 모든 근심걱정을 털어버리고 홀가분하게 떠나보는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있었는데 ...
지금껏 한번도 계를 든다거나 그런 명목으로 적금을 든 적은 없다.
월급봉투를 바라보며
아이구 저걸 갖고 어떻게 사나 하며 작다고 투정하기 보다는
그 범위내에서 요모 조모 분배하는 재미는 스스로 만들기 나름이 아닐까 싶다.
엊그제 나에게 소설책 한권을 건네 주던 남편은 늘 업무상 외근이 많은데
그를 위하여 예쁜 썬글라스라도 하나 마련해 줄까?
또 한달을 살아내기 위하여 여기 저기에 내 나름대로의 가늠으로
지혜로운 지출을 꿈꾸어 본다.
자신의 손으로 돈을 벌수 있을 만큼 건강한 몸으로
또 하루를 살아낼수 있도록 지금 내게 주어진 시간의 소중함 때문에
오늘 날씨 만큼이나 화창한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아침이다.
스스로 난 지금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가끔씩은 자기최면을 걸어야 할만큼
사는 것이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아뭏튼 지금 그런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 조차 감사한 일일 것이다.
시간은 단한번 찾아오는 기회일수도 있기에 ...
오랜만에 찾아든 아침햇살이 오늘따라 유난히 눈이 부시다.
어젯밤에 해 널고 온 이불빨래가 지금쯤 너울너울 잘도 마르겠지 ...
사무실에 앉아 있어도 머리속 한켠엔 아이들과, 채 손길 미루어둔 집안일이
자리를 차지하는 걸 보면 나는 어쩔수 없는 아줌마인가보다.
누구나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귀하다고 높여줄 때 그 가치가 따라서 높아지는 것은 아닐까?
"한달동안 정말 수고 많았어 ..."
어깨를 토닥이며 나즈막히 건네고픈 위로의 말한마디가
햇살 가득 담고서 내안에 머문다.
더 많이 미소 지어볼 수 있는 새로운 날들의 기대로
한달마다 찾아오는 월급날은
작은 출발선상에 나를 서 있게 해주기에
그 어떤날보다 소중하다.
한달에 하루쯤은 그렇게
나를 칭찬하고 다독이는 날로 보내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