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327

태극기의 비애.


BY rilri0723 2002-08-11

어린시절 국경일이 되면

엄마는 국기함을 두 손 받쳐 가져 오게 하셨고

동생과 나란히 앞에 앉히시고는 국기를 봉에 매는것 부터

대문 옆 귀퉁이 위쪽에 매다는 것까지 졸졸 따르게 하시며

사뭇 엄숙하게 그리고 매우 진지하게 가르치시곤 하셨다.

언젠과 동생과 국기 봉으로 손오공 놀이를 하다가 그만

플라스틱 봉이 동강나고 말았는데 엄마 야단이 두려워

다음달 현충일까진 모르시겠지 하는 심보로 지붕위로

휙하니 던져 숨겨 두었다가 며칠 못 가 잊어버리고 말았더랬다.

득달같이 시간은 흐르고 드뎌 심판(?)의 날이 왔다.

까맣게 잊고 있던 우리는 "현충일은 조기 다는 거 알쟈?"

하시며 국기를 꺼내어 걸어보라는 엄마의 명령에

가슴이 두근반 세근반..

뒤곁에서 둘이 앉아 이 고민 저 고민 하다가

눈에 띄는 것은 아빠가 도둑 고양이 잡을라고 부러뜨려 놓았던

밀걸레 자루 하나!

옳다구나 싶어 낼름 가져다 구색 갖춘답시고 조기모양까진

갖추었는디..

"우리 새끼들 을매나 잘했는가 보자!"허고 나오신 엄마의 눈에

따악 걸려 버렸다.

그 놈의 밀걸레 자루...어찌나 야물던지..

궁둥이를 휘감기는게 얼마나 호되던지..

엄마의 손이 매운지 밀걸레 자루가 매운지 눈물 콧물 쏙 빼 놓고

엄마 앞에 둘이 앉아 싹싹 빌었다.

"백성이 제 나라 국기 하나 건사 못해 어디 제나라 백성이라 하겠느냐

고..국기 가지고 장난하라는 법은 어디서 배워먹은 법이냐고.."

엄마는 무장 호통을 높여갔다.
... ... ... ...

그렇게 배운 국기 사랑 이었다.

2002년 6월 거리의 가로등 아래로 기념기와 국기가 휘날렸다.

그러나 월트컵의 열기가 달아오르던 그때 6월.

첫 한국전이 열리던날 나는 두 딸아이의 손을 잡고 길을 가다가

어린 학생들이 거리의 국기들을 걷어다 봉은 버리고

그 큰 국기로 목에 감고 치마로 두르는 모양을 보았다.

........

그 다음 경기가 있던 6월의 광주 도청앞

민주의 물결이 숨쉬는 그 곳에

수천의 사람들이 응원을 위해 모였다.

나 역시 그 역사의 한 자락에 아이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경기가 승리로 끝나고 질서 정연하게 승리를 자축하며 밀려나가는

인파들 사이로 길곁을 휩쓸려 나뒹구는 내 나라 국기들을 봤다.

더럽혀질대로 더럽혀지고 찢어지고 구겨진...

나는 4살 5살인 내아이들로 하여금 줍게 하고 펴게 했다.

집에 와서 펼치니 여럿 된다.

아이들과 집 뒤로 나갔다.

"엄마 버리게?"
"아니"
"그럼?"
"태울려구.."
"빨아서 다시 쓰면 되잖아!"
"국기는 빠는게 아니야. 못 쓰게되면 태우는 거야.
그러니까 국기를 이렇게 쓰면 안되.
국기는 나라를 생각하 듯 소중히 다루는 고야."
"응"

분명 이해 못했으면서 모른다는 말을 죽어도 싫어하는

큰아이는 짐짓 알았다는 태도다.

실은 나도 왜 국기를 빨지 않고 태우는지 모른다.
(사실 좀 아까웠다.)

하지만 그렇게 배우며 자랐다.

광복절..

광복의 의미도 모르며 자라는 아이들이 태반이고

실은 우리도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역사는 외면하며 살아온 게

사실이다.

올해 광복절은 아침일찍 아이들과 함께 태극기를 알아보고

다는 법도 일러 주며 조금은 색다른 광복절 아침을 맞이 하는 건

어떨까?

아직도 떠오른다.

비가 오면 빨래 걱정보다 장독의 된장뚜껑보다

태극기를 먼저 걷으라고 했던 유별스런 엄마의 애국심 교육을..

나도 엄마처럼 될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