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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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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댁의 팔자늘어진 개에 대하여


BY 김정아 2000-08-28

시댁에는 늙은 노총각 개가 한 마리 있다.
올해로 10살,사람 나이로 치면 환갑도 더 된 노땅이다.
그치만 이제껏 교미 한 번 해본 적 없는 순수한 노총각이다.
사실 안한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이다.
다른 놈에게 주둥이를 물려 이빨이 몇개 빠진 이후로는 개란 족속을 다 못미더워하니까.
조그만 강아지도 무서워 벌벌 떠는 놈의 유일한 낙은, 그저 배부르게 먹고 성가신 사람이 안 보이는 곳에서 늘어지게 자는 것 뿐이다.덕분에 놈의 몸매는 종종 임신한 암컷으로 오해를 받을만큼 풍만하다.
자다가도 부스럭 소리만 나면 어디에선가 나타나는 얄미운 놈.
식성도 거의 돼지 수준이라 가리는 것이 없다.
농수축산물을 두루 섭렵하고 과일과 과자류,빙과류 가리지 않는다.
뭐 좀 먹을라치면 빤히 입만 쳐다보며 침 흘리는 놈 때문에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다.싹 무시하고 혼자 먹으면 몰인정하다고 눈총받고,또 주기 시작하면 끝장을 보려는 놈 때문에 입맛만 버리기 일쑤다.
재주라고는 그저 밥먹으라는 소리와 저리 가라는 두 마디 알아듣는 게 다인 놈을 시댁 식구들은 끔찍이도 위한다.늙어서 이빨도 다 빠져 고기도 씹어줘야 하고 매사가 다 사람 손이 가는 성가신 놈 때문에 하나뿐인 우리 딸은 찬 밥이 되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첫 아이를 가지면 매사가 조심스럽고 안좋다는 것은 절대 하고 싶지 않은 법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안 좋으니 개를 치우자고 했다.그러나 씨도 안 먹혔다.불쌍한 놈을 누굴 주느냐는 거다.
손주보다 개가 중요하다는 건가.
아무튼 그 놈의 개랑 같이 산 덕에 우리 딸은 지금도 개라면 사죽을 못쓴다.소원이 개 키우는 것인데 남편이 천식이라 실현은 불가능하다.
주인 잘만난 그 놈은 올해도 다른 개들이 신변의 안전을 위협받는 복날,태연히 삼계탕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시어머니의 당뇨약 5알과 소화제 5알을 꿀꺽하고는 시치미를 떼고 앉아 있다.
가끔씩 소리도 없이 방귀를 뀌고는 사라져서 남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놈의 특기를 알기에 은근히 걱정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