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오면
그래서 휴가철이 오면
내게는 잊을 수 없는 기억하나가 있다
스무살.....
걱정이 걱정같지가 않고 대신 고민이라는 말로 되뇌이곤 하던 시절...
나는 사회생활에 막 발을 디딘 상태였고
그래서 직장생활은 배우는 단계라 힘든일도 있었지만
무엇이든 재미있어서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보내던 그때에
친구 몇이서 미팅이라는 것을 했다
4대4로 우리는 이름도 가명으로 바꾸고서 말이다
상대는 모 전문대학생들이였는데 두사람은 군에서 막제대한 얼굴 시커먼 아저씨?들이였고 두사람은 인제 막 대학물을 먹은 풋내나는 청소년티나는 대학 신입생이였다
그리고
이름있는 레스토랑에서 우리는 커피를 마시고 쥬스를 마시고 하다가
각자가 눈이 서로 마주쳤나보다
짝짜꿍 텔레파시가 통했던거지.............
공원엘 갔다......우리 여자 넷은 앞에서 팔짱을 끼고 도로중간을
그네들 네사람은 저기 뒤에서 어슬렁 어슬렁 .........
저녁이 되어 술꾼들이 모이는 허술한 스레트지붕의 서민클럽?
옹기종기 다닥다닥 붙어있는 그곳에서는 지글지글거리며
술 안줏거리가 익고 있었고
우리는
못 마시는 술을
홀짝 홀짝 인상을 찌푸려 가며 쬐금씩 또 쬐금씩 입술을 적셔가며
분위기를 에워갔다.........................
이것이 나의 잊지못할 첫 번째 여름 휴가즈음의 기억이다
나의 두번째 휴가즈음의 얘기는
모닥불피우며 보낸
첫 미팅이자 마지막 미팅이 된 주인공과
그 어릴적 친구아홉명이다
울진을 가면 석류굴이 있고 그 곳에서 쭈욱 산길을 따라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불령계곡이라고 나온다
난 그곳의 새벽을 잊을수 없다
새벽
안개가 자욱한 그곳의 풍경과 바위사이로 빠져나가는 물소리
녹음으로 짙은 계곡가의 울창한 숲.........
아!지금도 그곳 그안에서 나는 신선이 된것 같은 기분이 된다
잠시..............................
눈을 감으면.......................
우리둘과 합이 열한명!!
그의 초등학교 동기들이다
여자동기 세명 남자동기 여섯명이렇게 말이다
1박 2일의 짧은 여정이 어찌 이리도 긴 여운으로 남아있는지........
우리는 남녀간의 사랑으로 만난게 아니라 풀꽃같은 기분과
새벽에 그 풀잎을 동그르르 흘러내리는 이슬같은 느낌의 만남이였다
이것이 나의 두 번째로 잊지 못할 휴가 즈음의 기억이다
그렇게 휴가를 갖다오고 우리는 한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인데도
거의 이틀에 한번을 만났다
그의 학교는 그의 집과 버스로 한시간 삼십분이 걸리고 그의 학교에서
우리가 만나곤 했던 시내와는 사십분정도의 거리였으면 내가 살고있는
자취방은 그의 집에서 그의 두시간이 넘는 거리였다
자주만나면서 쌓이는 그것이 바로 좋아하는 마음이라는것을
그가 군에 입대할적에 그의 집에서 그때 그 아홉명의 친구들과
함께 했던 그의 송별회에서
그가 마련한 작은 18k 꽈배기처럼 꼬인 그 반지를 줄때에 알았던
것이다
그의 친구가 말했다
"그 반지사려고 임마가 한 두달을 아르바이트한다고 뛰어다니더라"
라는 말을............
입대하기 일주일전 우리는 무박 2일로 서울행 야간열차를 탔다
난 그때까지 한번도 서울을 가본적이 없었고
3시정도의 새벽녘에 기차는 영등포역에를 도착했다
12월 크리스마스가 지난 며칠후이니까 아마 년말쯤이였나싶다
엄청 추웠고 서울엔 눈이 오고 있었다
역앞에를 가니 어떤 아주머니들이 나에게는 눈길한번 안주고
그에게만 귓속말로 뭔가를 중얼거렸다
나중에 들으니
"가까운 곳에 따뜻하고 작은 방이 있으니 쉬어가라는"
그런 얘기들을 하면서 우리는 웃었다.
진짜 웃겨서.....................
그 새벽에 우리는
대합실에 좀 앉았다가.........
2층인가를 올라가니 영화관이 있었지만 아직 시간이 안되어
영화관앞 의자에 좀 앉았다가..........
그러다 날이 밝았다
얼마를 걸어가니 덕수궁이던가(확실히 기억이 안난다)
아뭏든 무슨 궁인거는 확실한데............
그곳을 가보니 그곳도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우리는 막 웃었고 무조건 기분은 좋았다
그리고 도로는 새벽녘의 눈으로 인한 얼음이 무슨 스케이트장을
만들고 있었고 나는 꼴에 힐을 신고 갔기에 엉덩방아를 찧고 그는
나를 잡느라고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그래도 웃었다 무조건 기분이 좋았다
그러다
정말 날이 환하게 밝았고
우리는
시골 촌놈의 기분으로 남산엘 갔다
남산오르는 계단마다마다에도 얼음이 디자인해놓고 우리의 발걸음을
더디게 꼭 부여잡고 가게 만들어놨었다
사진을 몇장 찍고 타워를 올라가고............
아직도
그 때 그 촌스런 모습으로 찍은 사진 몇장이 있다
그리고 군엘 갔다
편지를 뛰우다
나는 다른 직장으로 옮기다
중간에 한번 면회를 가주다
그리고 연락을 끊었다
그러니까
나는 고무신을 거꾸로 신은것이다
그리고
제대를 한 그는 어디에서 알게되었는지
다른 지방으로 옮겨있는 나를 찾아내었다
하지만
외면한 나..........
그리고 몇년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다시 예전의 내가 있던 사회생활의 첫 터전으로 돌아왔다
어느날,
우연히 그와 마주쳤다
그리고
다시 만났다 예전처럼 집은 멀었고 예전처럼 이틀에 한번꼴로
우리는 만났다
변한것은 서로의 마음이 전보다 성숙했다는 거였다
이제 나의 세번째로 잊지못할 휴가즈음의 기억이다
우리는 각자의 직장휴가를 맞추어 여행을 떠났다
그의 코란도구형을 타고서 말이다
동해안으로 동해안으로
몇년전
친구들과 함께 했던 그곳 불영계곡도 찾았다
그때와 달라진점이 있다면
좀더 커 버린 우리 두사람과 우리의 성숙된 마음이였다
너무나 좋았다
우리는 웃었다 그때의 기분으로 무조건 웃었다
이박삼일의 여행이였는데
시간이 어찌가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정말 내가 그 때부터 믿은것이 한가지 있다
물론 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남녀가 함께
두사람만 어디 여행을 간다거나 밀폐된 공간에 있다하여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우리들의 상식
(아니,어쩌면 나만 가지고 있던 상식일수도 있지)
우린
아무일도 없었다
같은 방 같은 침대 나란히 이박 삼일을 잤지만
우린 정말 남매가 된듯이 아무일도 없이 이박삼일을 잘? 보내다가
돌아왔다
그래서
그에게
사랑을 느꼈는지도.............
그러나,
우리에게 시련은 있었다
휴가여행을 다녀오고
우리는 서로를 확신했고 그의 집에 인사를 갔다
상상도 못한 우리들의 이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그의 외할머님이 점을 보시는분인데 우린 동갑이고 또 그와 나의
사주는 영~~~~~영 아니라고 하셨단다
그는 장남이였다
그래서 우리는 끝이라는 말도 없이 그냥 멀어져 갔다
어떤 시 한장을 남겨주고서 그는 부모님을 택했다
자작시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번도 듣도 읽어보지도 못한 그 슬픈시말이다
갖고 싶은거 못가져서 하고 싶은거 못하여서
뛰우는 배이고
날리는 종이비행기이며
물에 뛰우는 예쁜꽃들이라고 표현한 그 시말이다
지금은
나 행복하다
지지고 볶고 해도 내 아이의 아빠인 내 남편을 사랑한다
내 가정을 중요시 하고
내게 주어진 지금을 중요시한다
그러면 된거지뭐
추억은 추억인게고
기억은 기억인게지.................
그러나, 여름 휴가즈음이 되면 생각나는
이 아련함은 어찌할수 없는 내 기억의 뇌인것을............
님 여러분!!!!!!!!
쓰다보니 너무 길어졌고
에세이가 아닌 무슨 경험담같이 되버렸는데
용서해 주실거죠?
고맙습니다
다 읽어주셔서요..........
늘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