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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서야 통일이 됐네


BY dansaem 2002-07-28

얼마 전 친정에 다녀왔다.
어버이날 가고 첨이니
두달이 훨씬 넘은 셈이다.

친정이 먼 것도 아니고
우리 집 마당에서 고향집 마당까지
서툰 내 운전으로도 50분이면 닿는 거리건만
한번 가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다.

며칠 놀다 오리라 맘 먹고 간 길이라
딱히 며칠이라 정하지도 않고
집에 가고 싶을 때까지 있을 작정이었다.

하루는 동생들도 오고해서
여러가지 먹을거리를 주섬주섬 챙겨
물가로 놀러갔다.
차로 15분 정도 걸리는 곳인데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물길이다.
봉화 내성천에서 이어져
영주 평은을 거쳐 
예천의 미호천으로 이어져
문경인지 상주인지에서 낙동강으로 합류하는 물.

어른 무릎 아래, 좀 깊어야 무릎을 넘어서는 깊이,
비가 온 뒤라 물살이 약간 세긴 하지만
아이들 놀기에 그만이었다.

전날, 처음으로 사준 튜브를 하나씩 끼고
팬티바람으로 물 속에 뛰어든다.
고무다라이 밖에서 하는 진짜 멱감기는 처음이라
조금은 겁내는 듯 하더니
금새 익숙하게 물놀이를 한다.

조금 빠른 물살이 걱정된 남동생이
아이들에게 일일 구조요원을 자청한다.
아래쪽에서, 튜브를 타고 내려오는 아이를 받아서
다시 위쪽까지 데려다 주고 내려와서 또 다시 기다려주는.

아이들은 튜브를 끌고 물을 거슬러 올라가지 못한다.
튜브가 무겁다 한다.
센 물살이 튜브를 끌고 내려가려하니
어찌 무겁지 않을까.
들고 가라 일러준다.
"어, 엄마! 정말 가벼워졌어요."

외할아버지랑 물장난을 한다.
서로 물을 튕기고 옷을 적신다.

우리가 어렸을 적엔
무서워서 말도 못 붙였는데...

이젠 아부지도 많이 늙으셨다.
바지단을 둥둥 걷고 
어린 손주들과 물을 튀기는 
머리 허연 울 아부지.
이젠 어딜가도 할아버지라 불리울만한...

숯탄에 불을 붙이고
삼겹살과 닭불고기를 굽는다.
집뒷곁에서 뜯은 상추와 쑥갓으로 쌈을 싸서 
입이 미어터지게 밀어넣는다.
소주 한잔이 빠질소냐.

평일이라 그런지 우리외엔 사람이 없다.
그 넓은 모래밭과 물이 다 우리 차지다.
망설이다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물에 들어간 여동생은
남동생 웃도리를 뺏어입고
젖은 옷을 짜서 햇볕에 말린다.
따가운 햇볕과 적당한 바람이 얇은 여름 옷을 말린다.

먹고 나서 다시 물속으로.

이번엔 아들아이의 손을 잡고
제법 멀리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오로지 다시 내려오기 위해서.

아들아이가 튜브에 엉덩이를 걸치고 물에 떠내려간다.
갑자기 물 중간에서 멈춘다.
엉덩이가 모래바닥에 걸린 것이다.
배라면 좌초하고 하나?
다시 물이 깊은 쪽으로 밀어보내준다.

그렇게 하루는 금새 갔다.


며칠 후,
아쉬운 인사를 남기고 차에 오른다.
아이들과 친정부모님은
몇번의 인사와 빠빠이를 하고서는 출발했다.

"야들아, 집에 가니까 좋나?"
"응, 좋아."
딸아이다.
"근데 좀 아쉬워."
아들아이다.

한살 더 많은 오빠라고 감정이 더 섬세하다.
아쉬운 게 뭔지나 알까?

"그래? 그럼 다시 돌아갈까?"

딸아이가 냉큼 말을 받는다.

"그럼 우리가 불쌍하잖아."
"엉? 무슨 소리야?"
"돌아가면 우리가 불쌍하다고."
"왜? 집에 못 가니까? 아빠가 보고싶어서 그래?"
"아니. 돌아가면 우리가 불쌍하잖아."

여섯살인 아들래미와는 그럭저럭 대화가 되는데
다섯살인 딸래미와는 가끔 대화가 안 통할 때가 있어서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기 일쑤다.
그 때도 어물쩍 넘어가려 하는데
딸아이가 힘주어 또박또박 다시 말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돌아가니까... 불,쌍,하,다,고."

아~
아이는 '돌아간다'는 말을 '죽는다'는 말로 알아들었구나.

힘겹게 아이와 의사소통을 한다.

지켜보던 아들녀석이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거든다

"이제서야 통일이 됐네." 흐뭇흐뭇-.-;;



단샘집에 놀러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