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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바가지


BY 들꽃편지 2002-07-23

똥바가지.

이건 무슨 밥 맛없는 소린가 하겠지만
이건 내 남동생 부르는 소리가 분명하다.

몇살때부터인지 정확하진 않지만 어느날 갑자기 동생 별명이 똥바가지가 되어 버렸다.
어릴적엔 똥바가지라 놀리면 두 눈을 부릅뜨고 얼굴색이 변하다가 온 동네가 들썩거리도록 울어버리더니
성인이 되어서부터는 같이 퍼질러 앉아 똥이야기를 시작하고 흐드러지게 웃곤한다.

웃기고 더럽고 몰상식한 똥바가지란 별명 속엔 슬프고 안타깝고 아픈 사연이
똥바가지속의 똥처럼 출렁출렁 출렁거린다.

아버지가 지병으로 돌아가시던 여름 이맘때쯤 막내 남동생은 두살이였다.
태어날때부터 두눈이 유난스레 빛나고 초롱거렸다고 어른들도 말씀하셨고
백일 사진을 봐도 두 눈이 부리부리한게 다부지고 강렬하게 빛을내고 있다.
막내 아들을 낳으시고 기쁨도 잠시, 아버진 이리저리 아프기 시작했다.
그래서 대구에서 살다가 사형선고를 받으시고 어머니의 고향인 강원도로 들어오게 된거였다.
어머닌 막내를 업고 나와 바로 아래 남동생을 옆에 걸리고,
아버진 죽음을 앞에 걸리고 산을 하나 넘어 처갓댁으로 처첨하게 오셨을것이다.

그 해 여름에 아버진 내 손을 꼭 잡으시면서 엄마 말 잘 듣고 동생들 잘 돌보라고 하시면서 돌아가셨다.
난 그 말이 뭔 뜻인지는 알았겠지만 뭘 어떻게 해야 잘 하는건지 그걸 알았을까?
8살인 내가 죽음이 뭔일인지,삶이 뭔말인지,이별이 뭔지 알았으면 뭘 알았겠는가?

아버진 그리 모질고 냉정하게 28살인 아내와 딸하나와 두 아들을 두고 밭두렁을 지나
냇가를 건너 산으로 산으로 두둥실 떠나가셨다.

어머닌 아버지를 보낸 그 다음해부터 우리 삼남매를 외할머니와 이모댁에 맡겨 놓고
돈 벌면 우리들을 데리러 오신다며 서울로 가는 산고개를 훌쩍 넘어가셨다.

우리 삼남매는 그때부터 호박 넝쿨처럼 얼기설기 헤어지며 엉켜가며 살았다.
어느해는 나와 바로밑 남동생과 살았고
어느해는 나와 막내동생이 내 옆에 있고
어느해는 나 혼자 저녁 노을이 벌겋게 물든걸 바라보곤 했었다.

물론 난 고생은 했다.
그러나 막내 동생만큼은 아니라고 말해야한다.
큰 남동생은 맏이라해서 그나마 귀하게 여겼고
난 맏딸이고 그나마 제일 나이가 먹었다고 함부로 하지 못했지만
막내 동생은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는 천덕꾸러기였다.
급기야는 아기인 막내동생을 키우기 어렵다고 남의집에 보내려고 날짜까지 받아놓았는데
큰이모가 아들처럼 키우겠다고 못보내게 해서 다행인지 불행인지 큰이모집에 머물게 되었다.
그러나 큰이모는 폐암으로 갑자기 돌아가시고 말았다.
이모네집 앞뜰에 보라색으로 피어있던 무궁화꽃이 푸른종이꽃처럼 힘없이 지던 계절이
착한 큰이모가 세상을 등진날이였다.
그 뒤부터 막내동생은 이곳저곳을 떠돌아야만 했다.
나와 큰동생은 엄마가 살고 계신 서울로 올라와 합치게 되었지만
막내동생은 큰이모네 있다가 외갓집에 있다가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게 되었다.
방학때 내가 외갓집으로 내려가면 때가 줄줄 흐르는 시꺼먼 얼굴로 날 반기던 커다란 눈.
그래도 동생의 눈빛은 강하고 따스하게 살아 있었다.

똥바가지란 별명은 그맘때쯤 생긴거였다.
아빠 엄마 없는 아이라고 친구들이 놀리면 동생은 힘으로도 말로도 못하겠으니까
뒷간에 있는 똥푸는 바가지를 들고서 휘둘렀다고 한다.
그러면 친구들이 더러워서 도망을 갔고 똥바가지가 무서워 놀리지를 않았다고 한다.
그 뒤 똥바가지란 더러운 별명이 따라다녔고 동생의 손엔 똥바가지가 자주 들려졌겠지만
더럽고 냄새나는 똥바가지가 동생을 지키고 동생의 서러움을 보살펴 준 고마운것임이 분명하다.

막내 동생은 잘 컸다.
항상 똥바가지란 별명이 씻을 수 없는 과거로 따라 붙지만 잘 커줘서 기특하고 대견하다.

5년전엔 이쁜 색시 얻어 4살짜리 깜찍하고 끔찍한 딸도 얻었다.
집도 사고 안정된 직장에서 성실하게 알록달록 이쁘게 살아가고 있다.
똥냄새..아니 깨냄새가 꼬습게 날 정도로 잘 살고 있다.

근데 동생 딸 예현이가 아빠를 똑 닮았다.
고집이 쎄고 눈빛이 초롱초롱하고 남한테 지기를 싫어한다.
"예현아? 다른건 다 닮아도 똥바가지는 흔들지 말아라."

막내동생의 똥바가지에 붙어있는 사연을 쓰고나니 가슴이 쓰리고 아리다.
님들? 똥바가지 더럽거나 밥맛없지 않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