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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세에 전재산 2000만 원에 사회생활도 많이 해보지 않은 백수 며느리 또는 사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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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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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늙어가는 방법 10


BY 녹차향기 2000-11-14

오래 은행에 근무했다가 결혼과 동시에 전업주부가 되었고
그러고도 12년이란 세월이 지났건만
지금도 자주 은행에서 일하는 꿈을 꾸곤해요.
요즘이야 돈도 기계가 세어주고, 입,출금도 컴퓨터로
완벽하게 처리하지만,
제가 은행다니던 시절엔 돈도 무척 잘 세어야했고
(돈을 몇백만원이나, 몇천만원 현금으로 가져오시는
손님이 젤 힘들었지요... 돈 세느랴...)
계산도 빨라야했어요.

전자계산기보다는 주판으로 계산을 하던 시절..
그 시절을 아시나요?

엊저녁 꿈에는 은행에 다시 일하게 되어 무척 기뻐하다가
잠에서 깨었는데 아주 선명하게 제가 다시 일하도록
주선해주신 여자대리님이 어찌나 고마운지
실제와 같은 느낌이 들더라구여.

전업주부이면서도 아직도 은행에서 다시 일하고 싶어지나봐요.
좋은 꿈이다....
어쨌든 누군가 나를 다시 인정해주고, 불러주었다는 것이 너무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예요.

오늘 아침 조선일보에 이런 글이 실려 있었어요.
'며느리, 시어미되니..'
洪思重 문학평론가님께서 지금 현재 우리 정치에서 일어나는 일을 고부간의 갈등에 빗대어 말씀을 해 주셨는데,
사이가 무척 나쁜 고부간이 있었대요.
사사건건 며느리를 들볶고 괴롭히자 며느리도 참지 못하고 시어머니께 대들었고, 견디다 못한 시어머니가 절에 가서 스님에게 며느리 욕을 늘어놓았다지요?

꿀먹은 벙어리처럼 듣고만 있던 스님...
겨우 한마디 하셨는데,
'시어머니도 예전엔 며느리였느니라...'

이번엔 며느리도 답답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스님에게 찾아가 시어머니 흉을 보았지요.
한참 말을 들어주신 스님
겨우 한마디 하셨는데,
'언젠가 며느리도 시어미가 되느니라'

제가 언젠가 얘기했던 것처럼 사실 우리 고부간도 만만치 않았었어요. 홀어머님에 외아들에게 시집을 오다보니 사사건건 사소한 일로 오해가 생기고, 불미스런 일이 생길 수 밖에 없었어요.

지금이야 다 과거라는 이름으로 옷을 갈아입었지만 그 당시엔 정말 괴로워서 내가 선택한 길이 과연 옳았는지, 다시 뒤집을 수는 없는지 숱한 갈등과 고민으로 밤을 세우고, 몸은 야윌대로 야위여만 갔었어요.

그러다가 아이가 생기고, 그 아이가 무럭무럭 잘 자라나고, 아이때문에 또 참고....
하다보니 비로소 시어머님이 시어머님으로 보이는게 아니라
시어머님이 '여자'로 보였어요.
또래 나이보다 의젓하고 씩씩하게 무럭무럭 잘 크는 아이에게 갖은 정성을 쏟으면서 문득 이 아이도 자라 내 곁을 떠날 때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나도 시어머니가 되겠구나...'
하는 현실감으로 다가왔지요.

그러면서 시어머님이 그렇게 측은하고 불쌍하게 보일 수가 없었어요.....
남편과 해로하며 따슨 정을 나눠보지도 못하신 것이 제일 가슴 아팠고,
아이가 둘,셋이라도 되어 이런 맛, 저런 맛, 키우는 맛을 보신 것도 아니었지요.
부잣집이라 호위호식하시며 편안한 생활을 하신 것도 아니고 많이 배우셔서 누구 앞에서라도 당당하고 기품있게 살아오신 것도 아니었어요.

온갖 설움을 끌어안으시고 갖은 풍파를 맨몸으로 겪으시며 아들에만 의지하고 살아오신 나날들이 어떻게 보상이 되겠어요....
전, 아이들이 상을 타 오거나 아주 즐거운 일이 생길 때
젤 먼저 어머님이 떠 올라요.
저희들을 위해 늘 고생하시고, 잠 못 주무시고 십여년 넘게 숙박업 일을 해 오셨었어요.
제가 결혼하기 수년전부터 그 일을 하셨으니 도대체 밤에 편안히 주무셔 본지가 얼마나 오래되었겠어요?
제 남편 또한 마찬가지.....

어머님도 많이 연로하셨어요.
예전보다 목소리도 작아지시고, 급하셨던 성격도 많이 바뀌셨어요.
그래요...
신문에 났던 얘기처럼
제가 했던 방법은
바로 상대방과 입장을 바꿔보는 거예요.
시어머님의 입장이 되어 세상을 바라보니,
모든 게 다 이해가 되었어요....

갈등을 겪고 계시는 분들에게 드릴 수 있는 제 경험에서
나온 말이예요.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다시 문제가 되었던 그 일을 바라보세요.
분명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

전, 어머님께서 오래오래 살으셨으면 좋겠어요.
아들들이 장가가고, 또 그 손주들이 건장하게 자라나는 모습까지 다 보셨으면 좋겠어요.
저희대신 집안의 대소사를 다 처리해 주시고,
저희를 위해 오래도록 큰 목소리로 씩씩하게 말씀하시길
바래요.

제가 이렇게 시어머님을 위해 글을 계속 쓰는 것 또한
제가 예전에 시어머님을 미워하고, 흉을 보고,
속상하게 해드렸던 것의
일종의 참회록인지도 모르지요...

어머님.
건강하셔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