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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도 좋은 것들 3


BY hyesol 2001-05-17

집에서 큰길로 나가는 좁은 도로에는 항상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뒤엉켜 있는 차들
때문이었다. 종로 네거리인들 이보다 더 복잡할까. 눈비가 내리는 날이면 짜증스럽다
못해 배알이 뒤틀리기까지 한다. 이 길목을 끊임없이 드나드는 자가용들 때문에 이렇듯
사람과 차들이 똑같이 애를 먹고 있는 것이다. 차를 탄 사람들이 모두 걸어서 이 골목
을 드나들면 이곳은 얼마나 평화로워질까.
"자가용이 없는 게 이웃을 사랑하는 길도 될 수 있겠구나."
이런 어줍잖은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이 골목을 거닐면서였다. 자가용이 없으니 주차
문제로 골머리를 앓을 거 없고 기름 값 인상에 신경 쓸 거 없고 교통 위반으로 벌금
물 거 없고 요즘 같은 형편에 자동차 보험료를 못내 쩔쩔맬 거 없다. 자가용이 없으면
이웃을 사랑하는 일처럼 거창한 것 말고도 이런 일상적인 조그마한 즐거움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내가 이 골목에서 건져낸 가장 큰 즐거움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걸어다니자' 라는 생각이었다. 이제 몇 정거장 거리는 무조건 걷는다는 게 어느새 내
생활 속에서 축복처럼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
걸어다니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세상 구경하는 게 여간 재미있지 않았다.
남편과 내가 잘 가는 코스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고속 터미널까지 약 20키로 거리를 걸어가는 것이었다. 지난
해 나는 일요일 오후 같은 때 곧잘 남편과 함께 가을이 깊어 가는 이 거리를 걸었다.
신사동 사거리까지는 은행나무 거리이고 게서 영동시장 사거리까지는 플라타너스 거리란 것도 그때 알았다.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한참 걸어가면 장미꽃
향기 그윽한 지하 꽃상가가 나왔다. 우리의 산책 끝이었다. 우리는 언제 걸었느냐는 듯
이 가쁜해진 몸으로 그곳 지하상가에서 값싸고 좋은 물건을 찾아 즐거운 쇼핑을 했다.
영풍문고에 가서 신간 책을 읽기도 하고 길가에서 군밤을 사먹기도 하고 휴게실에서
커피를 뽑아 먹기도 했다. 좋은 영화가 눈에 띄면 시네마시티에서 영화를 보고 돌아왔
다. 처음엔 약간 고단했지만 거듭될수록 우리의 산책은 수월해졌다. 한 발짝 한 발짝
걸어가는 이 간단한 동작이 반복되면 아무리 먼 거리라도 갈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터무니없이 흥분하곤 했다. 개포동에서 대모산 회원들을 만난 후 양재 천에서 걸어온
적이 있었다. 새들이 모여 사는 탄 천을 지나고 청담대교와 영동대교 밑을 지나서 겔러
리아 백화점 뒤에 있는 한강 출구로 빠져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 식으로 집에 올
수 있다는 게 신통하기만 했다. 그렇다. 자가용이 없는 덕분에(?) 신기한 체험을 할 때
가 많았다. 축지법 하듯 경쾌하게 거리를 걸어가면 때론 이 도시의 주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하는 일에 자신감이 생겼다. 지난여름에는 거북이를 보러
매일 한강을 찾아갔다. 우리가 방생한 거북이 두 마리가 물가에서 부르면 어김없이 물
위로 고개를 내밀곤 했다. 이 신기한 사태를 놓치지 않기 위해 우리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한강을 찾아갔다. 셔틀랜드 쉽독인 베티를 데리고 로데오 거리를 지나 한강을 찾
아갈 때 이 꽤나 먼 거리를 우리는 늘 걸어갔다. 그러자니까 자신도 모르게 몸에 생기
가 돌고 건강해졌다. 이렇게 매일 걷노라면 새로운 감각과 다채로운 소재에 끊임없이
접하게 된다. 동인문학상 시상식이 있던 날 행사가 끝나고 조선일보사 화랑에서 혜화동
로터리까지 걸어왔던 일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남편의 손을 잡고 옛 향취에 흠뻑 젖
은 채 달빛이 출렁이는 창경궁 돌담길을 걸었다. 약속 장소인 보헤미안 커피숍에 도착
했을 때 차를 타고 미리 와 있던 다른 일행들이 기쁨으로 빛나는 우리 부부의 얼굴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그것은 차가 없어서 좋았던 일 중에서 단연 으뜸이었다. 세월아 가
거라 하는 식으로 무턱대고 거리를 걸었던 것은 아니다. 거리를 거닐면서도 우리는 참
으로 부지런했다. 거리문화 등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궁구(窮究)했다. 갖가지 건물
형태를 보고 외국의 그것과 비교하면서 실망하기도 하고 조잡하기 짝이 없는 건물 간
판들을 보고 짜증을 내기도 하고 한국의 환경지수가 122개국 중에서 95위라는 수치를
읽고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우리의 관광문화와 문화유산에 대해 자못 심각하게 연구해
보기도 했는데 한결같이 보람있는 일들이었다. 우리는 항상 새로운 길과 더 많을 길을
걷기를 원하고 있다. 언젠가는 걸어서 한강을 건너 강북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걸
어서 강을 건너가는 길이 곳곳에 막혀 있는 것에 경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걸어서
강을 건널 수 없다니, 참으로 한심할 노릇이었다. 유난히 올 겨울은 추웠다. 날씨는 계
속 불연속선이었다. 한겨울 동안 추위에 꼼짝없이 갇혀있을 수밖에 없었다. 무척 안달
이 났지만 하는 수 없었다. 한때 남편은 기사가 모는 자가용을
타고 종횡으로 서울을 쏘다녔고 나도 앙증맞은 자가용을 몰고 서울을 누비고
다닌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행복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우리는 거리로 나가
끝없이 인생과 문학을 얘기하며 이 행복을 확인해 볼 것이다. 그리고 자가용이 없어서
좋은 일들이 우리에게 주는 기쁨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 줄 것이다. 세상에 이보다
더한 축복이 어디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