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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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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늙어가는 방법 8


BY 녹차향기 2000-11-12

지금 우리집안은 암흑입니다.
모든 전깃불은 몽땅 끄고, 오로지 컴의 모니터만이 환하게 켜져있어요.
안방에선 시어머님께서, 저희 내외쓰는 침실엔 남편이 큰대자로, 아이들은 숙제와 일기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어요.
얼마나 조용한지 냉장고 모터소리가 윙윙하고 들린답니다.
이렇게 깜깜한 느낌이 참 좋아요.
마치 엄마의 뱃속에 들어있을 때 이랬을거 같다....하는 생각을 해 봐요.

오늘은 큰애 생일이라 미역국을 끓였어야 했지만 모학습지에서 하는 수학경시대회에 참가하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미역국을 끓이지 않았어요.
뭐, 그깐 미신을 믿느냐 하시겠지만 사실은 어제 아침에 콩나물국을 듬뿍 끓여놓았었는데 외숙모님 된장찌개 맛있게 새로 끓이느랴 그 국이 고대로 남아있어서....
아이에겐 미역국 먹고 시험보러 가면 안된대...하구선요.

일욜이라 한가해진 마음에 종이비행기를 자꾸 접었어요.
사내녀석 둘이 서로 이렇게해라, 저렇게해라 하며 비행기를 접더니 베란다로 가서는 창문을 열고 바깥으로 쌩~~~ 날렸는데,
저희집이 높은 편이라(17층) 비행기는 공기를 가르며 한참동안 비행하였어요.
아름다운 비행...
근처 상가를 지나고, 할인마트로 지나고, 행길을 건너더니
한빛은행옥상을 타고 또 갑작스런 추락을 하다가는 이윽고
사진관 옆 골목에 부딪치며 땅으로 내려앉는 것이 보였어요.
(사진관아저씨, 미화원아저씨께 정말 죄송...)

아이들이 탄성을 지르자, 시어머님께서 같이 종이비행기를 접으셨어요.
'이렇게 접으면 되지? 자, 봐라, 할머니께 더 잘 날을테니까..'
시어머님은
'자, 출발!! 와~~'
큰 소리를 내시며 아이처럼 좋아하셨어요.
'스트레스 푸는 데 이게 최곤거 같다.'
라는 감상도 잊지않으셨어요.
아마 그 날아가는 비행기 날개 위에 당신의 날고 싶은 童心을 함께 올려놓으신 모양이에요.
'앗! 얘들아, 경비아저씨한테 혼날라. 숨어, 숨어.'
하시며 아이들에게 스릴감을 주기위해 거짓말도 보태셨어요.
아이들은 진짜 경비아저씨가 쳐다보시고 야단을 치실 줄 알고
'으악!'
하며 난리를 쳤지요.

아마 오랜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종이비행기를 한참 가지고 놀지 않고, 또 종이비행기 접는 방법이 잘 떠오르지 않고,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다시 이 종이비행기를 접는 즈음에 함께 베란다에서 아래로 아래로 종이비행기를 함께 날려주시던 할머니를 생각하겠지요.....
'이구, 내 새끼들... 내 강아지들..'
하시며 볼을 마구마구 문질러 주시던 할머니의 손길이 사무치게 그립겠죠.

저희 시어머님은 아이들과 함께 잘 놀아주세요.
아이들이 총을 갖고 사격을 하면 총쏘는 법을 알려달라 하시고, 아이들이 디지몽(공룡키우는 작은 게임기)을 갖고 호들갑을 떨면 그 속에 변신하고 있는 공룡 흉내를 내시곤 하세요.
그럼, 아이들이 얼마나 깔깔거리고 웃는지...
같이 종이비행기도 접고, 엄마눈치 보느랴 오락이나 컴퓨터 게임을 하지 못하고 있을땐 저에게 눈짓을 하시며
'얘들, 공부 열심히 했으니깐 오락 좀 해두 되지?'
하십니다.
버릇없이 굴어 야단을 치려고 할 때두 안쓰러워서 어쩔 줄 몰라하시는 할머니의 따뜻한 다독임이 없었으면 어디서 그 마음을 위로받았겠어요?

귀찮다, 시끄럽다, 소란스럽다, 정신없다...
하시는 할머니들도 많으시다고 하던데.
그래서 오죽하면 이런 말이 있겠어요?
손주들이 오면 반갑고,
가면 고맙고!!

하지만 저희 시어머님은 너무나 가족이 없으셨고, 외아들만 키우셨기 때문인지 눈에 넣어도 안 아플만큼 아이들을 예뻐하세요.
우리 손주들이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잘 생겼고,
우리 손주들이 전교에서 수석이고,
우리 손주들이 뭐든 젤 잘 한다고 믿으시거든요.
손주사랑이 얼마나 끔찍한지는 이웃,친척분들이 다 아시죠.

저녁엔 아이 좋아하는 피자를 한판 시켜서 축하노래를 부르고 저녁으로 대신했는데, 기름지고 느끼한 음식이 잘 맞지 않으셨는지
'어째 소화가 잘 안되는갑다'
하시며 배를 문지르다 잠자리에 드셨어요.
얼마나 죄송한지...

늘 천진하신 모습으로 손주들을 끔찍히 아끼시고,
수고로움을 대신하시는 어머님께서
오래도록 건강하셨으면 좋겠어요.


주말은 평일보다도 더 빨리 시간이 지나가는 것 같아요.
그동안 시험에 대비해서 열심히 공부해 준 아들에게도
고마움의 말을 해 주고 싶어요.
한창 놀고 싶을 때인데 엄마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또 스스로 그 약속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준 형준에게
열심히 했으니깐 결과는 아무 상관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하루하루 아름답게 살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니깐요.

주말은 분명 주부들에게 일이 더 많은 날임에 틀림없어요.
하지만
내 소중한 가족을 위한 희생을 달게 감수하고
맛있는 것 하나 더 챙겨먹이고,
편안한 잠자리, 따슨 입을 거리 준비하느랴
이리 동동,저리 동동 하셨죠?
게다가 집안 대소사 해결하시느랴 힘드셨죠?

일욜밤입니다.
새로운 한 주를 위해 푹 쉬시고 좋은 꿈 꾸세요.

꿈 속에 아름다운 천사가 나타나면 그게 바로 저라고
생각해 주세요... *.^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