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여성 손님에게만 수건 이용요금을 부과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45

어떻게 살것인가


BY 나예 2001-05-09

그분의 눈빛은 참 맑아 보였고 표정에선 수줍음이 많은 천진스런 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마흔하나 그 나이가 되도록 술과 방황으로 세상을 산사람의 얼굴이 어쩜 저럴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기찻길위 육교에 앉아서 얼마나 외로운지 아느냐며 눈물지을땐 깊은 슬픔과 고독이 보이기도 했다.


지난달 텔레비젼의 인간극장이란 프로에서 나온 분의 얼굴이다.
그분의 모습이 왜이다지도 깊게 기억에 남는지 밥을할때도 청소를 할때도 아이와 노는 순간에도 좀처럼 지워지지가 아니 잊혀지지가 않고 어른거린다.

5회를 하는 프로중 내가 본것은 마지막 두날이 전부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보게된 그분과 그분의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분과 친구들은 집도없이 떠돌며 밤엔 잠실역에서 자고 낮엔 그 주위를 배회하는 행려병자 즉 노숙자들이었다.

그분은 마흔한살로 이름은 김석훈 백령도에서 태어났으나 호적에 올라가지 않아 신분증도 없는 살아있으되 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분의 부모가 어떤연고로 그분을 그렇게 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여려서 부터 떠돌아 다녀 마흔이 넘은 그때까지 그런생활을 하고 계셨다.

사람들은 그럴지 모른다. 왜 그렇게 밖에 못살았냐고 열심히 일해서 없는 호적은 만들면 되고 일가를 이루어 따뜻한 가족의 사랑도 느껴보고 하지
어쩌면 일하기 싫고 게을러서 그렇다고 할 사람들도 있을것이다.
나도 예전엔 그랬다. 세상이 인정하는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틀에서 본다면 분명 그사람은 낙오자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인생이란것이 4천만의 사람이 모두 세상의 기준으로 정해진삶을 살수는 없지않은가.

나는 그 두가지 삶을 모두 살아오신 부모님을 두고 있다.
아버지 그분은 세상의 잣대로 보면 낙오자이셨다.
물려받은 재산으로 노름과 술을 좋아하고 일하기를 싫어하셨으며 모든 것을 본인의 생각대로만 하고 사셨다.
반면 어머니는 그러한 아버지 그늘에서 갈수록 어려워지는 가정의 생계를 꾸리시며 자식들 바르게 기르기 위해 혼신을 다하셨다.

자식인 우리가 다자란 지금 두분의 삶은 어떠한가.
아버지는 모든 재산을 다 탕진하시고 가족들에게도 환대받지 못하시며 외로히 홀로 사신다.
반면 어머니는 어디를 가든 환대 받으시며 가고 싶으신곳 외국까지 다니시며 즐겁게 살고 계신다.

어머닌 아버질 보시며 노년이 저리될줄 모르고 젊어서 그렇게 살았느냐 하신다.
반면 아버진 너네가 내 상황이 되어봐라 너희인들 별수 있었겠냐 하신다.

어머니의 말씀도 옳다. 반면 아버지의 말씀도 이해할수 있다.
하지만 두분의 말씀이 내인생의 정확한 해답은 되지 못한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어떠한 인생의 고난이 닥쳐 좌절하게 될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아저씨 그분도 나름대로 그곳에서 헤어나오려고 노력하셨을 것이다. 다만 그노력이라는 것이 세상의 잣대가 아닌 그분의 잣대이기에 한계또한 짧았으리라

촬영마지막 한달동안 아저씨는 눈에 띄게 변해가셨다. 더부룩한 머리도 깨끗이 이발하시고 그리던 고향도 가보고 많은것에 감사하는 말씀도 하시고 친구가 해준 따뜻한 밥에 지금까지 내가 이런 밥상을 받아본적이 언제 있었느냐며 눈물지으시고
그분의 그런모습을 보면서 많은사람들은 이미 그분의 마지막을 예견했을 것이다.
나또한 그러했다. 저렇게 좋아하실때도 있는데 제발 아저씨 이대로 가지 말고 마지막 기운이라도 내어서 한번 살아보세요 제발 ............정말 간절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삶은 이미 정해져 있었는지 자신의 죽음을 알기라도 하신듯이 마지막에 연안부두에서 그리운 고향을 품에 앉고 그분은 숨을 거두었다.
아무런 신분적 증명이 없어 죽어서도 천대받는 그분의 마지막길 돌맹이 투성이 자갈밭 오십센티미터 깊이로 묻히면서 비석도 아닌 펫말에 이름석자 달랑

세상의 삶은 비록 실패했지만 그래도 그분은 마지막 가는때는 아셨다. 열심히 살았더라도 마지막때에 더살고 싶어 아둥바둥 거리다 존재의 존엄성도 인정받지 못하고 떠나는 다른 많은 사람들에 비해서 그래도 그길만은 미리 준비할수 있었으니 말이다.
어떻게 갈것인가 그것도 어떻게 살것인가처럼 중요 할것이다.
하지만 난 어떻게 살것인가도 아직 모르겠다. 이젠 갈때를 생각하며 베푸는 덕의 깊이를 채워야 할텐데 말이다.

인천시립묘지 무연고자 묘역에 안장되신 김석훈 님의 명복을 삼가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