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다 합하면 나의 눈물만큼 되나요?
무슨말을 할까요? 정말 뭐라고 말을 할까요? 당신에게 뭐라고 혼자말
을 할까요? 당신의 이름만 떠올려도 가슴이 뭉그러지는데, 나는 당신
께 뭐라고 말을 걸어야 하나요? 사랑한다고요? 그렇게 밤새도록 주문
처럼 말 하면 되는 건가요? 나는 당신의 이름만 생각하여도 가슴 한
귀퉁이가 온통 무너져 내립니다. 잠시후 눈자위가 붉어지고 스스로
참 못났다고 생각도 합니다. 어린시절부터 배워온 사내대장부라는 말
을 힘주어 다섯번쯤 말하고 그리고 또 말합니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흘러도 나는 그자리입니다. 곧고 불쑥한 숲사이를 걷고 새벽안개의
읊조림으로 제법 같은, 그런 지혜를 얻고 어리석은 사랑으로 부터의
휘청거림에서 드디어 그 매듭의 미로에서 빠져나온 알렉산드로스 대
왕의 무지한 칼부림으로 씩씩함을 얻었다고 하여도 그렇게 하였노라
고 주문같이 하여도 나는 늘 그자리 입니다.
비겁하고 또 더더욱 비겁하게 사랑하고 있는, 그렇게 사랑이라고 입
술 밖에 말이 떠나기만 하여도, 벗꽃이 흩 날리던 테라스의 점심과
자동차들이 떠다니던 한남대교 아래의 출렁이던 강물과 바람에 더욱
그림같던 당신의 머릿단이 저녁 나절의 손 앞에 이리저리 움직입니
다. 나는 당근을 이마에 매어 달은 당나귀같이 고집스럽고 또 고집
스럽습니다. 나도 언젠가는 당신을 훌훌털며 그렇게 당연히! 거부 하
고 싶답니다. 도대체 당신따위가 뭔데! 당신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사
람이기에 이렇게 나는 늘 뜬눈으로 번민하고 괴로운가요. 타고 또 타
고 재만 남은 가슴에도 때로 생각도 없이 파란 불꽃을 피우나요. 제
기랄….
지난 몇 년간은 늘 그자리에서 이리저리 생각을 돌리고 또 결심하고,
결심하던 칠판을 긁는 소리 같은 시간들 이었답니다. 당신의 코와 당
신의 입술과 그리고 아무리 생각하여도 호수를 담은 아름다운 그 두
눈동자에 트집을 잡고 잡던 시간 이었습니다. 나는 어린애 같은 투덜
거림만 되풀이 하고 또 되풀이 하다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흘렀슴을 알았습니다. 어리석다고 책망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
자는 그런 것이야! 하는 지혜로운 충고를 들었습니다. 나도 당신을
잘 사랑할수 있어요. 하는 유혹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랑 따위에 귀를 기우리니까 늘 그 모양이지. 하는 책망도 들었습니
다. 나를 영원히 등진 당신은 무슨 소리를 들었나요? 그래 잘했어!
그렇게 사랑은 잠깐이고 인생은 현실이라니까 하는 소리를 들었나요?
나는 나직한 흐느낌을 들었고, 깊은 밤 꿈에서 깨어나는 절규를 들었
고, 창밖에 바람이 일고 나뭇가지가 일렁이는 춤을 추는 것을 들었고,
냉장고의 문이 외로히 열리는 소리를 들었답니다. 소주잔이 탁! 하고
상위에 착륙하는 소리를 들었네요. 사랑해요… 어쩌지요? 하는 조용
한 읊조림을 들었고 비탄에 빠진 사나이의 입술을 깨무는 소리를 들
었네요. 그런 복잡한 소리속에서 얼마나 살았고 또 얼마나 살아내야 하는것
인지...
밤은 날마다 깊어 집니다. 봄은 날마다 더 사랑스러워 집니다. 하얗
게 입술이 마른 사내는 더욱 깊은 고독의 계곡을 걷습니다. 당신이
이게 뭐예요? 자 이것 바르세요. 그렇게 당신이 세상의 감각이 아닌
부드러운 키스를 매일 발라주던 척박한 사내의 입술은 아니 가슴은
하루가 다르게 메말라 갑니다. 차라리 밤이 없었으면 하네요. 밤은
사정을 보아주지 않고 달은 푸르름을 더해 갑니다. 안개가 짙은 오늘
밤에는 달무리가 춤추는 그 테두리에 외로움이 함께 기웃거리고 있
습니다. 늘어진 버드나무의 가지끝에 달이 흐느적거리며 걸려있고,
길손을 떠나 보낸 우울한 몰골의 손가락엔 새로운 소주잔이 달빛을
둥둥거리며 띄우고 있습니다. 참 어쩌면 좋지요. 사랑하는 당신을 매
일 잊고 매일 떠올리고, 매일 원망하고 매일 그리워 하고, 매일 결심
하고 매일 무너지고, 언제나 잠자리에 들기전에 그리워 하고 그리워
하고 보구싶어 하고, 못난이가 되어버린 스스로에게 미안한 표정으로
침대 끝에 무너지고 부서져 내리구…
어느 순간 소주잔을 잡은 손끝이 흐릿하게 느껴지자, 세상이 천천히
별이 천천히 회전을 시작합니다, 웃는 소리가 천천히 회전하고 권하
는 술병이 천천히 회전합니다. Jazz가 더욱 부드럽게 회전하고 나는
고요히 앉은 자리에서 회전함을 문득 알아 차랍니다. 머리를 털고 위
를 보니, 아하 카시오페이아가 회전을 하기 시작합니다. 지구라는 이
행성이 자전을 하는 것을 느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잠깐사이에 As Time Goes By 가 느릿거리며 어깨 주변을 회전하고
빙글거리는 소주잔은 백도, 그러니까 루나의 여신이 걷는 그 꿈길을
따라 빛을 발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당신이 내게 말한대로 당신을 영원히 사랑할까요? 이
젠 그만해야 해요. 어쩔 수 없어요.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는 당신이 더 잘 알거예요. 하지만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눈물 흘리는 것을 볼 수 없어요. 이미 너무 많은 눈물이 흘렀어
요. 그래요 그렇게 이야기 하였네요. 네 기억하고 있어요. 단 한마디
도 잊지 않고… 아니 중간에 잠시 말을 끊고 굵게 방울져 흐르던 눈
물을 닦고 어깨를 떨던 그 모습까지도… 아직도 당신을 사랑하는 사
람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나요? 모두 다 합하면 나의 눈물만큼 되나
요? 이렇게 잘 울지 못하는 척박한 남자의 눈물 한방울은 너무 적은
가요? 정말 인가요? 정말인가요? 나를 사랑한 것이 정말 정말인가요?
나의 이 외침을 절대로 듣지 못할 당신께 나는 밤이 slategray로 늙어
새벽이 다가오도록 공허한 질문을 하고 그리고, 늘 새로운 소주잔이
끓어 오르는 가슴에 부어지고 부어지고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당신도
나도 누구도 시작을 몰랐건만 끝은 영원히 기억의 이편저편을 기어
다니며 이밤도 뒤척히는 잠자리에 함께 합니다. 이렇게 분명하게 시
간이 무지하게 흘렀는데도, 새파랗게 타오르는 일초도 참을 수 없는
외로움입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그리움입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말
하지 못하고 끙끙거리는 사랑입니다. 아마도 짐작보다 훨씬 영원히
일지도 모릅니다. 이 사랑이 갈 곳을 잃은지는 제법 오래 되었습니다.
가슴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다시 타오르던 이밤, 선배님과의 대화
를 소주잔에 녹여 내던 중에 사막보다도 견디어 내기 어려운 곳이
서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가리키며 쟤를 보면 알지!
그렇게 덧 붙이셨습니다. 하하하 정말 그러네요. 사우디 아라비아의
와디에서 멋지게 사내의 냄새를 풍기던 내가 진짜로 서울에서 편안
히 살아내지를 못하였네요. 그러니까 서울시민들은 존경을 받아야 한
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척박한 삶을 받아 들이고, 네온등으로 광합
성을 하며 살아가니까요.
적막한 공간에는 Blues 음악이 피부에 닿아 부드럽게 스칩니다. 슬픔
이 잠든 고독보다는 덜한 모양입니다. 사랑해요. 이 짧고 단순한 말
이 어쩌면 이렇게 까지나 깊은 상처인지…
사랑합니다. 참 오랜만에 그렇게 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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