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비만 치료제의 건강보험 적용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91

들녁 일기(1)


BY my꽃뜨락 2001-04-28


토요일, 오늘은 행복한 날입니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우리 아들놈이 주말이면 집으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버스 타고 올 수도 있지만, 오며 가며 아들 놈 옆에 앉히고 한주간의 학교 생활을 엿보는 재미가 만만치 않은지라 나는 꼭 차를 끌고 마중을 갑니다.

가뭄 끝에 단비가 오려나? 구름 덮힌 하늘은 낮고, 황토빛 들녁에 부는 바람이 살갗에 휘휘 감깁니다. 운전실력이 조금 늘었다고 턱없이 교만해져 후딱하면 속력이 냈더니 벌금 딱지가 세장이나 날아와 잘못하면 남편에게 쫓겨날 판이라 요즘은 규정 속도에 맞춰 살금살금 운전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전에는 보지 못했던 농촌 들녁의 아기자기한 풍경이 내 시야를 즐겁게 해주는군요.

4월말, 지금의 농촌 들녁은 못자리가 한창입니다. 길쭉한 못판에 황토를 깔고 소독한 볍씨를 골고루 뿌려 논바닥에 남실남실 물을 채우고 못판을 나란히 앉힙니다. 그런 다음 비닐 덮개를 씌우면 온실 속에서 봄기운 함뿍 받은 볍씨가 곧 싹을 틔워 파릇파릇한 모가 자라나겠지요?

부지런한 농부들이 갈아 엎은 논바닥엔 싱그런 흙더미가 건강미를 한껏 뽐내고, 사이사이 쟁기질 못미친 논바닥엔 자운영 꽃밭이 황홀경을 더해 주고 있습니다. 자운영 꽃이 어떻게 생겼냐고요? 아하! 그 귀여운 자태를 아직 못보셨군요. 볍씨를 뿌릴 때쯤, 논바닥을 화려하게 물들이는 꽃, 자운영은 토끼풀 꽃과 아주 흡사하게 생겼답니다.

생긴 것만 이쁜 것이 아니라 거름하기에 아주 좋아 농부들은 일부러 자운영 씨를 파종하기도 한다니 우리에겐 아주 유익한 풀꽃이지요. 색깔은 먼 곳에서 바라보면 보라색 들꽃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새색시 볼연지 같은 다홍색 같기도 하고...

자운영에 홀려 봄이면 논바닥을 헤멘지 몇 해가 되었건만, 난 자운영 꽃 색깔을 말 할 때면 꼭 색맹이 된 것 같은 답답함을 느낍니다. 꼭 집어서 그 색이야, 할 수 없는, 자운영에게는 그런 오묘함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해서 오늘은 맘 먹고 자운영 꽃 사이로 퍼질러 앉아 코박고 꽃잎을 들여다 봤지요.

가느다란 꽃잎 아랫 부분은 흰색으로 곱게 색칠 돼 있었고, 윗 부분은 진 다홍색으로 감싸 있더군요. 이렇게 복합색의 아름다움이 내게 는,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함으로 다가 왔나 봅니다. 만화방창이라고, 옹기 종기 모여 앉은 야트마한 촌락 곳곳에는 철쭉과 영산홍, 그리고 뒤늦게 피는 왕벗꽃의 화려한 꽃송이가 춤을 추고. 뒷 산 곳곳에 흰 싸리꽃 같은 이팝꽃이 눈부시게 피어 있습니다.

아, 그리고 하마트면 빠뜨릴 번 했군요. 농가 텃밭에는 지난 겨울, 모진 삭풍을 견뎌 온 완두콩의 푸른 줄기가 서리서리 뻗어 있답니다. 하얗게 핀 완두콩 꽃이 떨어지면, 오래지 않아 푸른 꼬다리의 완두콩이 주렁주렁 달리겠지요? 그리고 지금 농촌 울타리엔 하얗고 향기로운 탱자꽃이 져가고 있답니다.

꽃뜨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