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전 즈음에 아이네 학교에 \'식물관찰기록\'이란 숙제가
있었다. 학교에서 오자마자 화분에 꽃씨를 심어야 한다며
바쁜 나를 조를땐 그냥 귀찮은 일이 하나 생겼구나,,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와 손을 잡고 오월의 햇살속을 걸어서 꽃집엘 갔다.
손바닥만한 화분에 채송화 꽃씨를 살살 뿌리고 배양토를 덮은
화분을 일부러 아이손에 들려 집으로 왔다.
오면서 내내 저 아이손에 들린 꽃씨가 괜찮을 려나,걱정을
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집에 와서 보니 배양토가 화분옆으로
흘러서 비닐봉지에 반쯤이나 쏟아져 있는 거였다.
그럴수도 있겠거니,
애초에 아이손에 들려준게 아닌데.. 하는 뒤늦은 후회가 일었다.
그래도 대강 손을 보고 물을 주고서 채송화 씨앗이 나오길
기다렸다. 아이는 미리 선생님께서 나눠준 식물관찰기록표에
채송화가 어떤 꽃이고 어떤색으로 꽃이피며 어떤 환경에서
잘자라는가를 꽃씨를 담았던 봉투를 보며 열심히 적고 있었다.
그런데, 주변의 아이들은 이미 꽃씨에서 여린 싹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는데 우리 화분은 소식이 감감한 것이었다.
대부분 봉숭아를 심었더니 싹이 잘 나오더라고는 했지만
난 꽃집주인의 \'채송화도 잘 자라요\'라는 말을 믿어보기로 하고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한참 후에야 작은 싹이 두개가 나왔다.
그런데 그 싹이 아무래도 채송화씨앗에서 발아된 싹이
아닌듯 싶더니 그마저도 결국엔 더이상 자라지 않고 시들어 버렸다.
그냥 길러볼 심산이었으면 덜 초초했을텐데
이건 아이의 숙제고 보면 그냥 둘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동네의 꽃집을 돌아다니면서 혹시 채송화 어린싹을 살 수 있는지를 물어 보았다.
그게 시골의 농원이 아닌 다음에야 그런걸 살수 없다고들
했다. 다시 심으면 될테지만 한참 시간이 지난 뒤였기에
다시 시작하기엔 너무 시간이 지나 버려서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었다.
그런데 마침 아이친구 엄마가 봉숭아가 싹이 많이 올라왔다며
봉숭아 싹을 솎은걸 다른 화분에 옮겨 심어서 가져다 주었다.
채송화가 그리 되었으니 이젠 봉숭아다,하면서 내심 안심이 되었다.
봉숭아는 키가 많이 자라 있었다.
흔히 집안에서 자라 멀쑥하게 키가 큰 다른 싹처럼
그 봉숭아도 줄기가 휠듯 키만 멀쑥히 큰 그런 상태였다.
그게 좀 불안해 보인다라고 생각은 했지만 행여 무슨일이
일어 나진 않겠지, 생각하고 그날 밤도 여느때처럼 이웃집 엄마랑 밤운동을 나갔다 왔다.
아뿔싸, 집에 돌아와 보니 봉숭아가 싹똑 줄기가
부러져 있는 것이었다. 잔뜩 겁먹은 아이의 표정으로 봐서
이 모든 일들이 이해가 가고도 남았지만
왜 이리 되었느냐 물었다. 아이가 울먹이며 하는말인즉
동생과 그 싹을 서로 가까이서 들여다 볼려고 다투다
동생이 자기를 밀치는 바람도 화분에 주저 앉았다는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 집에 온 그 봉숭아가 그리
허무하게 잘려 나가서 내가 다 허무해졌다.
두 녀석들을 단단히 혼내주고 손을 들고 있으라고
벌을 내리고 혹시나 하면서 부러진 봉숭아(이미 뿌리는 간데 없는) 를 그대로 흙에 묻어 두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 봉숭아가 시들지 않고 꿋꿋하게 다시 뿌리를 내린 것이었다.
예전보다 훨씬 튼실한 모습으로
연한 살색을 띄던 가느다란 줄기가 자신의 꽃잎색깔인 선홍색을 띤 굵은 줄기로 다시 태어난 것이었다.
지금 키는 많이 자라지 않지만 대신 줄기가 건강하게
커가는 봉숭아는 날마다 조금씩 꽃을 피우기 위해 물기를 머금고 있다.
그건 봉숭아 줄기를 부러뜨린 아이에게나 그 줄기를
별 희망없이 심어본 내게나 신비로운 너무나 신비로운 일이었다.
별탈없이 잘 자라는 봉숭아 화분을 볼때마다 난 하나의
진리를 다시 한번 되내이곤 한다.
실패나 역경을 딛고 일어나는 일은 그와도 같이
새로이 태어나는 어쩌면 그 자신을 더욱 튼실히 하는 일일 것이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