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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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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럴수 있을까?


BY 쟈스민 2002-06-03

여느날 같았으면 약간의 늦잠을 즐기고 나서 늦은 아침을 먹고는
집안 곳곳을 쓸고 닦으며 나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었을텐데
유월의 문턱을 열고 들어선 첫 일요일인 어제...

난 어디론가 떠나 누군가와 만날 약속이 있었기에
무척이나 설레이는 맘으로 아침을 열어 본다.

토요일 늦은 밤까지 집안 정리정돈을 어김없이 마쳐 놓았으니
오늘 하루만큼은 그저 즐겁게 일요일을 보내면 되는 거였다.

아이들에게도 산뜻한 옷을 입혀 주니
엄마랑 어딘가를 간다는 사실하나만으로도 아이들은 마냥 신나는 눈치이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에 나도 덩달아 명랑해지고,
그럴수 있는 지금이 참 행복이려니 내심 흐믓했다.

불과 일주일전에 처음 만난 이들이지만 아주 오래전에 알고 지낸 이들처럼
일주일만에 다시 만나기로 한 것이다.
같은 지역권내에 살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우린 말로 다 할수 없는 친밀감을 느꼈다.

좀체 어디를 잘 돌아다닐 시간도 없고,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지도 않는 나였기에
같은 도시에서 그리 오랜 시간을 살면서도 골목 골목 길을 잘 모른다.
몇번이나 남편에게 재차 물어두고는 머리속에 길을 그려두고는 핸들을 잡는다.

물어 물어 찾아간 곳에서 코시 형님과 이화를 태우고, 우린 신나게 달린다.

공주가는 길은 도로가 참 시원하다.

잔치국수를 좋아하신다는 코시님의 구수한 입담에 나도 모르게 흥이나서
점점더 가속페달을 밟게 되었다는 사실을 코시님은 아실까?

설리님의 차를 졸졸 쫓아서 간 곳은 ...
그야말로 그림같은 집... 자연이 살아 숨쉬는 집이었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둥글게 만들어진 거실에 앉아 한참 물오른 신록의 잔치에
초대받은 손님이 되어 본다.
너무나 아름다웠기에 잠시 마음을 빼앗긴 탓인지 혼미함마저 감도는 시간이었다.

다같은 상추라도 왜 시골 상추는 더 맛이 있는걸까?
자잘한 상추잎을 포개어 부지런히 고기쌈을 싸서 입으로 날라대면서도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라도 된양 달떠 있다.

아...
그곳은 4계절이 아름다울 것 같은 집이다.
언젠가 내가 꿈꾸던 그런 집에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잠시이지만
그렇게 한가롭게 앉아볼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풍요롭게 느껴지던지
통유리로 비춰드는 햇살 받은 감나무 잎새의 반짝임에 탄성이 절로 났다.

산 중턱에라도 앉아 있는듯 하늘이 바로 저만치에 걸려 있다.

비가 오는 날엔 따뜻한 차한잔 감싸쥐고 언제까지라도 하염없이 그곳에 앉아서
누군가를 실컷 그리워하여도 좋을 바로 그런 공간인듯 했다.

든든한 배를 움켜쥐고는 넓은 거실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눌수 있었음에
아이들의 올망졸망한 움직임으로 인해 이마에 흐르는 땀도 애써 모르는척
그날 하루만큼은 좀 게으른 엄마여도 마냥 좋기만 하다.

한낮의 햇살이 비켜간 오후에는
넓은 텃밭에 나가 요것 조것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고,
뽀리수라고 하는 빨갛게 생긴 나무열매가 한가득 열려 휘청한 나뭇가지를 부여잡고
저마다 뽀리수를 따먹으며 아이나, 어른이나 매 한가지로
잠시 어린아이가 된다.

커다란 돌무더기를 쌓아서 만든 연못에는
올챙이들의 움직임이 부산하고, 아이들의 눈은 올챙이를 따라가느라
잠시도 가만히 있질 못한다.

아이들의 자연공부를 위하여 기꺼이 물뿌리개로 올챙이를 떠서 담아주시던 설리님을
아이들은 마치 자기네 고모 같다고 한다.

정성들여 가꾼 터에 바지런함으로 일구어낸 삶의 터전
거기에는 그분께서 살아오신 마음의 흔적, 사랑이 담겨져 있어서
그래서 잔잔한 감동의 물결을 불러 일으키는 듯 하다.

그렇게 넓은 대지에서 풀한포기를 뽑아 주더라도 다 사랑이 있어서
가능한 일일꺼라고
기꺼이 아픈 허리 잊으시고 몸소 돌아보시며 흐믓해 하시는 모습에서
난 10년후의 내 삶을 잠시 엿본다.

삭막한 도심의 아파트에서 풀포기 같은 화초들이라도 키워보려는게 평소의 내 모습이었기에
내게도 땅이 주어진다면 나는 거기다 무얼 할 수 있을까?
잠시 즐거운 고민도 해 본다.

아마도 난 내가 좋아하는 나무들을 골고루 심고, 채마밭을 일구며,
들꽃들과 대화를 나누겠지 ...

막연한 꿈처럼 쉬운 일이 아닌 전원생활은 다분히 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야 하는 것임을 다는 모르지만 조금쯤은 알 것 같다.
하지만 좋아서 하는 일이라면 힘든지 모르고 즐거운 맘으로 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머지 않아 가을이 오면
뺑둘러 심어진 감나무에 감이 열리겠지
그리고 가을이 익어가겠지 ...

4계절이 살아 숨쉬는 집
그것은 바로 우리 모두가 살고 싶어하는 집일 것이다.

아직은 나무들이 어리지만 5년, 혹은 10년후면 얼마나 우거진 숲이 근사할까?

세월이 흘러 한층 아름답게 변해가고 있을 그 집의 풍경을 그려보며
살아있는 동안 정말 행복하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일까 잠시 상념에 잠겨본다.

물질의 풍요로움만이 결코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을꺼라는
너무도 이론적이고,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를 다시금 떠올려 줄만큼
땅에는 그 모든 소중함이 뭍혀져 있나 보다.

여름날의 하루해가 결코 짧지 않았음에도
하루가 왜 그리도 짧게만 느껴지던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소중한 추억의 노트 한 페이지를
그렇게 만들어 돌아오는 길목에서

10년후쯤이면 나도 그럴수 있을까?
사랑이 담긴 손길로 풀한포기에도, 나무 한그루에도 정성을 가득담아
보살필 수 있을까?

지금보다는 늘어난 주름살 사이 사이로 햇살 닮은 웃음 여유롭게 웃어볼 수 있는
내가 되어볼 수 있을까?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어 연신 묻고 대답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