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것같은 집안..
6학년짜리 큰애가 학교에서 수련회를 떠났어요.
감기로 편도선이 부어서 그제부터 열이 펄펄 나서 조퇴하고 오고,
어제는 병원에 가서 주사도 맞고 돌아왔지만 밤새 39도를 오르내리는 열을 식히느랴 둘 다 잠을 설쳤지요.
이래가지고서 어떻게 수련회를 갈까 싶어 무척 고심을 했는데,
다행히 아침나절엔 열이 많이 내려 3일간 먹을 약과 비상해열제등을
챙겨서 출발했답니다.
밤에 물수건을 머리에 얹어주고 약을 먹이고, 잠을 못자고 제 옆에서 오가는 엄마를 보던 아이가 열이 나 벌건 얼굴을 하고
"그러다가 엄마도 아프겠다...."
고 말하는 거예요.
"니네 엄마 괜찮아. 너나 얼른 나아라."
이젠 제법 컸다고 제 병간호를 해주는 엄마걱정 하고 누워있는 아이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지요.
아이를 위해 아침 일찍 김밥을 싸서 가방에 넣어 보내면서 2박3일간 아프지 말고, 즐겁게 지내며 좋은 추억 많이많이 만들어 오라고, 손 흔들어 보냈지요.
얼마나 좋은 시절인가요?
저희 어렸을 때 소풍은 마치 무슨 잔칫날 같았잖아요.
어느 집에선 소풍에 맞춰 새 옷들을 사입히고, 그때도 선생님께 특별 도시락 같은 것을 보내는 학부형들도 많았어요.
줄줄이 어린 다섯남매를 키우고 계시던 부모님으로선 소풍날 새 옷을 입히는 것은 고사하고, 김밥싸는 것에도 어려움을 느껴야 했었던 시절이 있었어요.
제가 국민학교 1학년때의 일이었지요.
얼마나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일인지 아직도 그 일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르곤 해요.
새 옷을 사입히지도 못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첫 소풍을 그렇게 보내고 싶지 않으셨던 엄마께서는 그냥 소풍가지 말고 집에서 하루 쉬라고 하셨지요.
얼마나 가고 싶었겠어요?
하지만, 엄마의 쓸쓸한 표정으로 보아 당연히 하루쯤 소풍 안가고 나름대로 열심히 노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종일 텅 빈 공터에서 줄넘기도 하고, 땅따먹기도 하면서 혼자 시간을 보냈어요.
다음날, 소풍관계로 오후,오전반이 변경된 사실을 모르는 저는 의례 그렇듯이 오후반이지만 일찌감치 학교로 향했지요.
하지만 운동장에 들어선 순간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어요.
시끌벅적해야 할 운동장이 개미 한마리 없이 싸늘할 정도로 고요한 것이 온 학교가 수업중이라는 것이 단박에 느껴졌지요.
허둥지둥 우리교실로 찾아가니 이미 고학년 다른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있다고 다른 분이 알려주시더군요.
고학년이 소풍을 갔기 때문에 오후반 수업이여야 할 우리반이 거기서 아침부터 공부를 한 거지요.
교실문을 스르륵 열고 들어갔어요.
"선생님...."
나만 빼놓고 그렇게도 공부를 할 수 있다는 황당한 마음, 수업이 진행되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는 소외감으로 가슴이 쿵덕거리고 있었지요.
참 쓸쓸한 느낌이었는데, 선생님께서
"너 왜 인제 와? 누가 수업 시간에 앞문으로 함부로 들어오래? 엉?"
하시며 다짜고짜 뺨을 한 대 때리시는 거예요.
무척 말랐고 왜소했던 저는 선생님의 손찌검에 바닥에 저만치 쿵 나가 떨어지며 쓰러졌어요.
이상하게 눈물도 안 나더군요.
억울하지도 않고, 그저 혼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감히 수업중에 앞 문으로 들어오고, 감히 수업에 지각을 하고,
감히 소풍을 안 간 주제라는 생각에 묵묵히 제 할일만 열심히 하고 집에 돌아왔어요.
어딘가 틀린 모습이 있었던지, 엄마는 제 얼굴을 살피시며
"은미야, 너 얼굴이 왜 그래?"
아마 손도장이 남아있던 모양이었지요.
연약한 살이었을테니까요.
제 얘기를 대충 들은 엄마의 얼굴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있어요.
그후로 사는 형편이 나아졌는 지, 어쨌는지 아무튼 한번도 소풍에 빠진 일은 없지만 나쁜 선생님의 표본으로 제 기억에 자리하고 있거든요.
당시 우린 모두 힘들고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있었잖아요.
말수가 적고, 늘 제 자리만 지키고 있던 아이에서 활달하고 씩씩한 아이로 한 반 아이들의 인기를 얻기 시작하게 된 것은 4학년 때부터였지요.
그 또한 선생님께서 저를 그렇게 만들어 주셨거든요.
어떤 선생님을 만나냐에 따라서 한 인격체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그것은 놀라운 체험이거든요.
소풍....
소풍때만 되면 꼭 그때 일이 한번 제 기억에서 되살아나 씁쓸하게 웃게 만들지요.
지금 우리 아이는 즐거운 저녁시간을 갖고 있겠지요?
무얼 먹어도 맛있고, 어떤 얘기를 들어도 즐겁고, 늦은 밤 촛불 한자루에 눈물을 흘리며 부모님과 조국애를 떠올리겠지요?
정말 좋은 시간이 되었음 좋겠네요.
아프지 말고요.
그때 그 선생님께 야속한 마음은 여전히 들지않아요.
그리고 이미 지난 과거의 일인걸요.
지난 과거에 있었던 좋지 않은 일들에 대해선 조금 더 관대한 마음이 들잖아요.
할 수 없었지 뭐...하는 체념처럼요.
요즘 일교차가 심해 아이들이 많이 아픈 가봐요.
집안 습도 조절도 좀 더 신경쓰고, 저녁이 되면 방도 따스하게 만들어야겠어요.
목이 칼칼해서 자주 물을 마시고 있거든요.
여러분도 따끈한 물 자주 드세요.
단란하게 둘러앉아 과일도 많이 드시고요.
행복한 웃음이 피어나는 저녁시간을 만드시길 바라며,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