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비둘기에 먹이를 주면 과태료 부과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309

맨발로 뛰쳐나온 예비신랑


BY sintong 2002-06-01

내 나이 23살이 되던해.
부산에 직장을 두고 있던 나는, 이미 내 삶에 찾아든 봄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고, 그 나이 또래가 다 그랬듯이 그저 직장생활 잘 해나가고 그러다가 좋은 남자 만나서 시집가면 되겠지하는 막연한 기대 속에서 젊음을 뽐내던, 어찌보면 꽃피는 봄동산을 뛰노는 한 마리 순진한 청노루였다. 그러면서도 사실은 그 미래의 꽃밭을 나와 함께 잘 가꿔줄것만 같은 한 남자를 이미 부모님 몰래 선택해 놓고 만나는 그런 평범한 처녀이기도 하였다.
허지만 그 때의 난 아직 결혼이라는게 뭔지 그 의미나 중요성 가치관이 성립되기도 전인 어린 나이였다. 그래서 결혼은 나한테는 머나먼 일이라 여기고 전혀 생각도 해보질 않었었다.

그러나 그 남자는 --장남이었고, 나보다 4살 위이고, 오래 못사실 것 같은 아버님을 모시고 있는 대학 재학생이었고, 멋있다기 보다는 착실하게 보이는--만남의 횟수가 쌓일수록 주위의 다른 남자들의 속성과는 무언가 다르다는 깊은 인상을 내게 주었다.

만난지 6개월 동안에 그는, 내 앞에서 항상 신중하였고, 남자의 관대함과 이해심이 여자를 얼마나 아늑하고 편안하게 하는가를 가끔씩 보여주기도하는, 신비한 힘의 소유자였다. 만나고 사귀면서 그는 점점 내 영혼 위에 큰 몸체로 압도해오기 시작했고 나는 반대로 왜소하게 느껴졌다. 내 연약하고 작은 가슴은 점차 그에게 기대게 되었고 그에게 무작정 믿음이 갔다. 그런 그가 어느날 내 자취집 앞에서 헤어지려 할 때 잠시 머뭇거렸다. 평소에 별로 말이 많지 않은 그였는데 가볍게 떨고 있는 듯한 그의 한 손을 내 어깨에 살포시 올려 놓고선
"결혼하고 싶다, 살면서 한번 스스로 정했던 결심을 꺾은 적이 없다, 내 삶이 너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느끼는 순간 난 남자로써 태어난데 대해 처음으로 행복을 느꼈다." 라고 속삭이며 뜨거운 입김으로 내 귓가에 닥아 왔다.

그건 내가 여자로 태어나 이미 한 남자의 <여자>가 되어 있음을, 그리고 그 남자의 "영혼"의 포로가 되어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는 그 <사랑의 오묘함>을 확인케하는 가장 황홀한 순간이었다. 또한 지난 6개월간 손 끝 하나 건드리지 않었던 그가 내게 시도한< 최초의 접촉>이기도 하였다.
솔직히 남자라든가 연애라든가 그런거 알면 무조건 큰일 나는 것으로만 인식하고있던 순박한 시골처녀로서 고교 졸업후 도시로 나온 뒤 형부 집에 얹혀서 직장생활하고 있던 내게, 처녀의 솜털처럼 부드러운 가슴을 뒤숭뒤숭 흔들어 놓은 그는 나의<첫남자>이었다.
그런 그가 밤의 어둠을 이용하여 내게 그런 말을 들려 주었을 때, 난 그 순간만큼은 사랑이고 결혼이고 하는 그런건 전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저 가슴속에서 방망이질 하듯 쿵쿵 뛰어대는 소리만 들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불칼에 데이기라도 한듯 환희의 뜨거운 전율이 파고들자 난 갑자기 기운이 빠져버려 그만 그에게 돌아서서 안기고 말었다. 그리곤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 속에서 자꾸만 사랑이..... 행복이.....바로 이런 건가 하는 혼잣말만을 되뇌이고 있었다.

그 날은 부산에 사는 그이가 우리 집에 인사를 드리러 가야겠다며, 날더러 시골 집에 먼저 올라가서 부모님께 잘 말씀드리고 내가 도착할 시간에 맞춰서 상주 버스터미날에 나와 기다리라 했던 2월 구정이 지난 중순 경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때 이미 그는 봄이 오면 날을 잡아 결혼을 하려 작정을 하고 있었던 때문이었다.

바깥 기온이 아직은 차고 바람이 드세어 난 일단 대합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부산에서 올라온 버스가 정차하였을 때, 가장 잘 보이는 창쪽에다 자리를 잡고 서서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주의해서 살피면 될거라고 생각했다. 창 밖으로는 구정이 지났어도 아직 다 녹지않은 앞산 잔설이 겨울의 끄트머리를 히끗히끗 붙들고 있는 모습으로 간간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지금이야 핸드폰이 있어서 그런 일이 생길 수가 없지만서도 그때는 일이 꼬일려고 해선지 도무지 버스에서 내려오는 신랑감의 모습은 끝내 내 눈에 보이지를 않었고 또 연락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는 한편 버스에서 내린 신랑감은, 대합실 안에서 내가 기다릴지도 모른다는 추측은 전혀 안하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내가 보이질 않으므로, 보수적이고 완고하신 편인 시골의 부모님께서 딸을 일부러 안 내보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고선 터미날 앞에 정차하고 있던 택시를 한대 잡아 타고 막바로 상주에서도 1시간 이상이 걸리는 거리의 시골 우리 집으로 홀로 찾아 간거였다.

나는 그때 주머니에 10원 짜리 하나 없는 빈털털이 였다. 신랑감이 오면 그와 같이 묻어가면 될거라는 계산에서 달랑 상주까지 오는 차비만 들고 나왔던 거였다. 그래서 전화도 못하고 마냥 기다리기만 했던거다.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에서 내리는 신랑을 발견 못하고 결국 그러는 사이에 1시간이 지나가버렸다. 게다가 난 차비마저 없어서 그 100리가 넘는 우리 시골집을 걸어가야만 하는가 하는 막막한 생각과, 나와 함께 차를 타고 가야 할 그러나 끝내 내 눈 앞에 나타나지 않은 신랑감을 원망도 해보는 그러는 사이에 또 터미날에서 1시간을 허비하였다.

마침내 날은 어둑해지고 이제 우리 집쪽으로 가는 버스편도 10분만 있으면 떠나게되는 막차일 뿐이었다.
무슨 사고라도 만난걸까? 집에서는 우리를 얼마나 기다리고 있을까?........ 갑자기 엄습한 불안의 무게가 내 작은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또 나는 기다림에 지친데다 배도 고프고 피로하다보니 나도 모르는 새에 그만 눈물을 줄줄흘리고 있었던가 보다.

그런 와중에 매표원 아가씨가 퇴근 차림의 옷을 갈아 입은 채 나한테 오더니
"무슨 일인데 몇시간 전부터 여기서 사람을 기다리느냐, 그리구 지금은 왜 우시는거냐"
며 말을 걸어왔다.

난 울먹거리며 사정 이야기를 대충해주었다.
"다음에 상주 나오면 차비를 갚겠다, 차표를 한장 끊어줄 수 없겠느냐?"

그녀는 이내 차표 한장을 들고 나왔다. 그렇게 하여 난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시골길을 뚫고 달리는 막차에 몸을 싣고 초조 불안한 마음으로 집으로 갔다. 내가 집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날은 깜깜해졌고 길바닥은 녹았던 눈과 진흙이 다시 살짝 얼어 신발에 두껍게 달라붙어 걸음 떼기가 어려울정도 였다.
집 앞에 도착한 난 눈물로 부어 오른 얼굴을 두손 으로 가린채 한 발로 대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문안으로 들어선 순간 내 눈에 맨 먼저 들어온 사람의 형체는 무려 6시간 전부터 그렇게 기다렸던 신랑감 바로 그이가 아니었던가! 난 깜짝 놀랐다.
그런데 그보다 더 날 그리고 우리 어머니를 놀라게 한 사건은, 그이가 방에 있으면서도 귀는 내내 대문쪽을 향해 열어 두고 있었던지,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마자 방문을 박차고 나와선, 눈이 빠지게 기다렸던 나임을 확인하는 순간 그냥 신발도 찾아 신질 않은채 낮에 녹았다가 다시 살짝 얼어붙은 질척한 마당을 양말발로 그냥 내딛으며 뛰쳐나왔다는 사실이었다.

집안의 신분 차이가 너무난다며 처음엔 반대를 표명하셨던 친정어머님이셨지만 먼저 와있던 신랑감과 나누셨던 대화의 분위기에서 맘이 끌리셨던데다가 딸이 돌아온 걸 알자 그냥 그
"맨발" 로 뛰쳐나가던 예비 신랑감의 진흙이 잔뜩 달라붙은 발을 보시고선 신랑감(사윗감)의 정신상태가 되었다며 이내 흔쾌히 결혼을 허락 해주셨고 그이를 보겠다고 멀리서 일부러 오셨던 오빠 언니들도 착하고 기품이 있어 보인다며 그이와의 결혼을 찬성 쪽으로 거들어 주셨다.

어린 나이에 이 남자 저 남자 맘 떠보며 저울질 한번 해보지 못하고
그 흔한 미팅도 못해본 나였지만, 그이는 나의 첫 남자, 첫사랑이었다. 그리고 난 지금 그이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진정 존경한다.
부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빠듯한 생활도 아닌 중산층의 내 가정은 늘 평화로움과 소박한 즐거움으로 변하지 않는 일상을 꿰어 가고 있다. 거기다 결혼 한지 10년이 지났건만 아이를 못낳는 장남 며느리인 나를 두고 나의 시어머님은 오히려
"아이가 없어도 작은 아들한테 손주가 둘이나 있으니 신경쓰지 말고 그럴수록 부부밖에 없는 너희는 서로 위로를 주고 받으며 살아야 한다" 라고 충고를 해주시곤 한다. 또 거기다 신랑은 언제나 누가 물어도 "아이가 없는 진아의 사랑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나 뿐이다. 열번을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도 난 진아하고만 또 결혼할꺼다" 라고 큰소리로 당당히 남 앞에서 말을 한다.

그리 예쁜 얼굴도 아닌, 많이 배우지도 못한, 그렇다고 친정 집안이 내노라 할것도 없는 오히려 드메산골 한 가난한 농민의 딸을 데려다가 아직껏 부부싸움으로 눈물 한번 흘리지 않게 한 그이를 생각하면 난 고마움은 물론 대통령 부인도 재벌의 부인도 부럽지가 않다.

"내게 있어서 결혼은 여자가 해야 할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난 가끔 나의 이런 행복을 하늘의 천사마저 시샘을 해 빼앗아 갈른지도 모른다는 쓸데 없는 기우를 갖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