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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42

월드컵 날에..


BY wynyungsoo 2002-05-31

蹴球(축구)

蹴(축)은 足(발 족)과 就(나아갈 취)의 결합으로 "발로 나아가게 하는 것", 곧 "차다"는 뜻이다. 흔히 "一蹴(일축)시켰다."는 말을 하는데 "발로 단숨에 차버렸다"는 뜻이다.

또 球의 王은 본디 玉(옥돌), 求(구)는 "구하다", "찾다"는 뜻이다. 옥돌을 둥글게 깎아 만들었기 때문에 이리저리 굴러다녔으므로 늘 찾아야 했던 데서 나온 말이다.

그러니까 둥글게 깎아 만든 "옥구슬"인 셈이다. 그런데 이놈의 모습이 공과 같았으므로 후에는 "공"을 뜻하게 된다. 球技(구기) 籠球(농구) 排球(배구) 地球(지구)가 있다.

옛날 중국에는 蹴鞠(축국·蹴 )이라는 경기가 있었다. 일명 托毬(타구)라고도 했는데 黃帝(황제)시대부터 있었다고 하니까 4000년이 넘는다. 쇠가죽 속에 털이나 겨를 넣어 공처럼 만들아 찾던 일종의 軍中(군중)놀이였다.

한두 사람이 제기차기를 하듯 두 발로 찾는데 武藝(무예)의 일환으로 익혔다. 그것이 唐(당)나라에 오면서 현재의 蹴球와 비슷한 요령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 蹴鞠은 우리 나라에도 전해져 三國時代에 성행했다.

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弄珠(농주), 또는 氣毬(기구)라고 불렀다. 三國遺事(삼국유사)에 의하면 金庾信(김유신)이 젊었을 때 金春秋(김춘추)와 蹴鞠을 하다가 그만 잘못하여 그의 옷자락을 밟아 옷고름을 찢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또 중국 舊唐書(구당서)에는 高句麗(고구려) 사람들이 蹴鞠에 뛰어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우리 조상들은 일찍부터 공차기에 능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조선시대에 오면 兩班(양반) 이 공을 찬다는 것은 輕擧妄動(경거망동)으로 비춰졌으므로 일부 젊은이나 군대에서 鍊武(연무)의 방편으로 행해졌을 뿐이다.

근세에 들어와 공차기는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서 널리 행해졌다. 다만 지금처럼 공이 흔하지 않았으므로 그저 새끼줄을 둥글게 말아서 차기도 했으며 돼지의 오줌통에 바람을 불어넣어 차기도 했다. 그래서 혹 명절이 가까워 돼지라도 잡을 때면 동네 어린이들이 몰려든다. 그 "오줌통"을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지금과 같이 서양식 축구가 전래된 것은 불과 100여 년 전의 일이다. 선 조들의 재능과 후손들의 노력으로 이제 한국 축구는 세계수준으로 발전했다. 여기에다 최근 국가대표팀의 전력이 日就月將(일취월장)하니 蹴球 中興(중흥)이 도래한 느낌이다. 오늘 세계 蹴球의 대 축제인 월드컵이 개막된다.

이상은 "월드컵이 열리는 아침에.. 신문기사에서 참조한 말씀"입니다.

한국의 땅, 대한민국을 방문하여..
경기에 참여하기 위해 몸 담도 있는 기라성 같은 모든 선수들이여! "파이팅!!" 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