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남편과 단 둘이 맥주집엘 갔다.
아이들도 없이 홀가분하게...
우린 홀 가운데에 가리를 잡고 앉았다.
써빙을 하는 여자가 하나 있었다.
젤 먼저 긴 생머리가 눈에 들어온다.
긴 머리를 묶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풀어헤치고 있는데
지저분하지 않고 오히려 아주 단아하게 느껴진다.
계란형의 얼굴에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어려보이지만 왠지 분위기 있는 얼굴이다.
어딘지 우수가 어린 듯도 하고 그늘이 있어 보이기도 하다.
왠만한 탈렌트 뺨치게 이쁘다.
그런데 그녀가 우리에게 유난히 호감을 보인다.
우리 외엔 손님이 없기도 했지만
어쩌다 우리 자리에 합석을 하게 됐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가는데
이 여자가 남편에게 노골적인 호감을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어떤 천박한 느낌이 아니고
글쎄, 뭐랄까...
딱 꼬집어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내가 화를 내거나 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일이 갈수록 가관이다.
자기는 맘에 드는 손님을 만나면
자기 머리카락을 직접 잘라서 보관하게 한다나?
그러면서 삼단같은 그 길고 윤이나는 머리카락을 한줌 자르라 하는 것이다.
나는 이상하게 화도 나지 않았다.
오히려 침착해 지는 것이다.
너무 황당해서 그런 지도 모른다.
마음 한쪽에서는 무언가가 치밀기도 하지만
그냥 너그러운 웃음만 짓고 있었다.
남편은 잠시 망설이더니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한 줌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가위를 든다.
여자는 아무 꺼리낌 없이 머리를 맡기고 있었다.
잘라진 머리카락을 여자는 흰 종이에 곱게 싸서 준다.
그렇게 머리카락을 가져간 남자들은
가끔씩 그 곳에 들른다 한다.
갑자기 내가 벌떡 일어섰다.
남편이 놀라며 나를 붙든다.
나를 꼭 안는다.
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
.
.
.
.
.
.
바쁜 농사철이 시작되면서 새벽에 저절로 눈이 떠진다는 남편이
나를 안고는 머리를 쓸어넘기고 있다.
나는 그 품에 안겨 졸음에 겨운 목소리로 묻는다.
"지금 몇시야?"
"엉, 6시 다 돼가."
"에휴~~"
"왠 한숨이야?"
"몰라! 당신, 그럴 수 있어?"
"뭘?"
"내가 보는 앞에서 그렇게 다른 여자랑 놀아날 수 있는 거냐구?"
"........."
"뭐. 머리카락을 잘라서 가져? 우띠!!!"
"ㅋㅋ. 꿈 꿨어?"
"그래. 꿈이지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어허, 어디 여자가 아침부터 투기를..."
"뭬야?'
"그것이 여자의 길이거늘..."
"어쭈, 갈수록..."
"남자가 큰일을 하다보면 여자도 따르고 그러는 거지,
뭘 그런 걸 가지고..."
이구,,,
그나마 꿈이길 망정이지.
근데 그 꿈이 어찌나 생생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