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부터 심하게 아팠다.
오랫동안 심하게 부려먹던 허리의 반란이 심하여,걷지도 ,서지도 ,안지도 못할만큼 심하게 아파, 오십이 다된 무늬만 젊어 보이는 딸년의
고통을 바라보는 노모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렸다.
다행히 수술을 하라는 것을 ,어찌어찌 수소문하여 침으로 치료를 받아
이젠 조금씩 걷는다.
나는 오랫동안 친정 어머니와 살고 있다.
올해 어머니의 나이는 68세 나는 48세의 무늬만 젊은 중년이다.
오랫동안 함께 살아 왔기에.
때론 엄마가 남편같고. 내인생의 중심을 보고계시는터라 나는 늘 엄마의 신세를 지고 산다.
일하는 여성이기에 ,나의 아침 밥상과 (언제나 일하는 사람은 잘먹어야 한다고 늘 새밥을 지어주신다.) 나의 세탁물 들을 처리 해주신다.
한때는 일부러 일감을 드려서 일하시는 몫을 드리곤 했는데.
요즈음 엄마의 건강 은 별로 좋으시지는 안는다.
올해 초 부터 병원에 입원을 하시기도 했으니,
못된 딸년이기에 노모의 도움을 받지 ,아마도 며느리 였다면 그럴수 있었을까? 나두 한때는 며느리 였으니까.
몇년전 부터 앞부분부터 나는 흰머리 때문에 ,
엄마와 나의 염색약은 공용이다.
이번 아픈중에 나는 정말 가슴이 메어질 정도로 엄마에게 진실로 미안했다.
통증때문에 움직이질 못해 세수도 열흘이상 못했다.
겨우 통증이 적어져서 거울을 보니 꼴이 가관이였다.
그래서 엄마에게 염색을 부탁하고 택시를 타고 동네 목욕탕으로 갔다.
목욕탕 화장실에서 벌거벗은체,
두 늙은 모녀의 염색작업이 시작 되었다.
서있을수 없기에 딸년은 작은 의자에 앉고 노모는 그 딸년의 머리를 염색하기위해 허리를 구부린체 진지하게 머리에 물을 드리고 있었다.
딸년의 시야에 들어온 노모의 자식낳은 주머니의 흔적을 늙어 허술해진 뱃살의 출렁거림과, 살이 빠져 가늘어진 노모의 넙적다리를 보면서 딸년은 눈물이 솟았다.
자식이 무엇이기에 벌써 48년동안을 지켜보시며.
이혼한 딸년을 위로 하시지만 편치 않았을 그 속마음. 감추시며.
다 못거두는 손자들 뒷바라지에. 아직도 사업한다고 전국을 적토마처럼 뛰어 다니는 딸년의 건강을 지켜주시는라고 그 늙으신 몸을 쉬지 못하는 어머니.
이젠 딸년의 흰머리염색을 공들여 한올한올 물들여 주시는 그 마음을
이제 오십이 다되어서야 , 정말로 엄마의 고마움에 눈믈을 흘리다니,
이 철??는 딸년의 속도 모른체 엄마에게 나는 늘 아기 였던가 보다.
이내 내 두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난 , 엄마의 절반에 절반도 못하고 자식을 키우건만 . . .
그래,
내가 지금 이렇게 험란한 사업의 길을 걷고 힘 들어하고는 있지만,
열심히 정말 이루어서
엄마를 호강 시켜 드려야 겠다는 각오가 새롭게 들었다.
어머니
현생에서 그 보답을 다 못해 드리면,
내생에 나의 딸로 다시 만나. 그대로 제가 다 해드릴께요.
하지만
이제야 진짜로 철이 드는 못난딸을 좀더 지켜주세요.
자식 노릇을 잘해 볼께요.당신이 해주신것을 꼭 보답할수 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