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전 추석을 얼마남겨두고 내 생애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줄 사건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엄마가 돌아가신것이다.
슈퍼와 부식가게를 겸해서 하시던 엄마는 물건을 하기위해 새벽길을 달려가던 길이었다.
안개가 자욱한 새벽길을 달리던 차는 무슨이유에서인지 중앙선을 가로막고 서있던 11톤 트럭과 충돌하는 바람에 오빠는 그자리에서 죽고 엄마는 겨우 목숨을 잃지 않았을 뿐이다.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병원으로 향했을때는 어느곳에서도 엄마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엄마곁에 다가갔을때는 여기저기 붕대로 감싸고 있는 낯선 사람 앞이었다.
특이하게 생긴 발모양이 아니었다면 아마 엄마라고 인정하지 않았을 그 처참한 모습에 나는 정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응급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인정하기 싫은 현실이 꿈이 아닐까 이건 악몽이다를 수없이 되뇌여봤지만 결국 들려오는 소식은 그날밤을 넘기기 어렵다는 청청벽력같은 말이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렇게 고생고생하며 평생을 살아오신 엄마에게 왜 남은 여생이나마 행복하게 보내면 안되는것인지 신을 원망도 해봤다.
기계에 의지해서 살아있을 뿐인 엄마를 위해서 우리 가족은 어려운 결정만을 남겨두었고 결국 편안하게 보내드리자는 의견을 모았다.
자식으로서 차마 하기 힘든 일이지만 고통속에 엄마를 내버려두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엄마는 조용히 우리들곁을 떠나버렸다.
미처 준비할 겨를도 없이 우린 거대한 기둥을 잃어버린 허탈함만이 몸고 마음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어느해였던가?
나는 엄마에게 부탁할것이 있어 찾아갔다가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이렇게 말한적이있다.
"엄마 딸들은 다 도둑이다 그치?"
"ㅎㅎㅎ 그래 ... 그래서 내가 얼음 장부에 다 적어놨다."
"얼음장부?"
"얼음장부에 잘적어놓았으니 나중에 나 늙거든 다 갚아라 ..^^"
녹아버리면 그뿐인 얼음장부는 엄마의 크나큰 사랑을 먹어야 녹아내리지 않는것이다.
높고 크신 어머니 사랑을 먹는 그 얼음장부를 나는 한번도 열어보지 못했다.
아니 결코 엄마는 우리에게 그 장부를 펼쳐보이지 않으셨을것이다.
하지만 엄마가 안계신 지금은 살아생전 엄마에게 갚을 기회를 잃어버린것이 더욱 안타깝다.
세월이 훌쩍 나이를 먹어버린 지금은 나역시 똑 같은 장부를 만들어가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다.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없이 주기 위한 사랑의 장부를 ....
오늘따라 돌아가신 엄마가 너무도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