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슨 이유에선지 어릴 적부터 키 작고 마른 남자를 싫어했다.
곱슬머리도 싫어했고, 피부색이 검은 것도 싫어했지만, 특히나 싫었던 것은 빼빼마른 체형이었다.
마른 남자를 보면 웬지 모를 거부감이 들었던 것 같다. 게다가 키까지 작으면 거의 '남자' 취급을 안했다고나 할까.
물론 대충 몇 마디 나눠봤을 때, 머리가 텅 비었음을 짐작할만한 남자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남자라도 일단 키가 크고 마르지 않았다면 용서가 되는데, 키도 작고 마른데다 머리까지 휑한 남자라면 그야말로 상종을 하려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도 싫었던 것일까. 교과서같은 이야기지만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흑과 백, 이분법으로만 보고 살아서는 안되는 데 말이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반드시 싫은 것은 존재하는 법이다.
아마도 그것은 내게 있어 어찌 해볼 도리없이 싫은 것임에 분명했다.
키가 작다든지, 말랐다든지, 또는 머리 속이 비었거나 혹,진짜 머리가 벗겨졌을때는, 그 남자의 인격과 지성이 어쨌건 간에 나와는 전혀 무관한 사람일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참 싫었던 것이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별로 달라진 게 없는 편이지만 그래도 이젠 많이 둥글어졌다.
허우대 멀쩡해도 전혀 아니올시다인 사람이 워낙 많은 세상이다보니, 내 모난 취향도 많이 수양이 되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사람의 기본적인 호감을 시대의 잣대에 맞춰 이리저리 바꿔가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첫 눈에 반한다'라는 감정이 극대화된 성욕의 이끌림에 의한 것이라는 말도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춘향과 이도령이 서로를 사랑하게 된데에는 그들의 성적인 욕망이 그들을 그렇게 인도했다는 얘기다.
하긴 반박하기도 힘들다.
처음 만나 얼굴만 본 사람들이 그 상대에 대해서 뭘 어떻게 얼마나 알아서였겠는가.
여자의 아름다운 외모에, 또는 남자의 늠름한 모습이나 다부진 인상에 성적인 충동을 느낀 것을, 끝까지 '사랑'으로 승화시켰다는 것이 아름다운 의미가 된 것 아닐까.
성욕에서건, 단순한 호감에서건 '웬지' 좋아지는 느낌이란 누구나 한번쯤 느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강렬한 첫인상으로 모든 것이 다 사랑으로 비약되고 키워져나가는 것은 아니다.
첫인상이 너무 좋아 몇 마디 나눠보니까 언제 그랬냐싶게 제정신이 '팍'들어왔다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나마 첫인상이라도 좋으려면 또 얼마나 많은 부분이 아름답게 포장되어있어야 할 것인가.
일단 호감이나마 느끼게 하려고 남녀가 공들이는 외형꾸미기란 또한 얼마나의 수고로움인가 말이다.
......
키가 큰 것도 좋다.
마르지 않고 살이 좀 있는 것도 좋다.
머리가 좋은 수재형도 좋다.
박학다식하여 대화가 풍부한 것도 좋다.
모두들 다 좋은 것들인데 그래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딱 하나.
난 밥 잘먹는 남자가 좋다.
성격이 좋고 나쁘고 간에, 키가 크고 작건 간에 나는 밥 잘먹는 남자만큼 후한 점수를 주게되는 경우는 드물다.
밥 잘먹는 남자라면 키가 클 확률이 많고, 빼빼가 될 일은 드물 것이며, 체력이 있는데 공부를 못할 리도 없지 않겠는가.
모든 것이 그렇지만 체력이 유지되지 않으면 다소 무리스러운 것들이 얼마나 많고 흔한가.
게다가 놓칠 수 없는 특징이 있다면, 밥 잘먹는 남자들은 비교적 유순하고 성격도 좋다는 데 있다.
이보다 더한 장점이 어디 있겠는가.
성격좋고 유순하면 인간 됨됨이에 크게 하자가 없다는 이야긴데 말이다.
나는 남녀를 불문하고 순박한 심성을 가진 사람을 높게 본다.
말이 좀 어눌해도 진솔한 사람이면 그 마음을 읽어 좋아하게 된다.
하지만 능숙능란한 언변과 산뜻한 매너에도 거짓이 몸에 밴 사람이면 크게 의미를 두지않는다.
요즘은 남자와 여자를 칭찬하는 법도 많이 바뀐 것 같다.
'아름다우십니다, 남자다와 보이십니다.'어쩌구 하는 찬사는 웬지 구질구질하게 느껴지니 말이다.
대신에 요즘은 남녀 모두 일관되게 '섹시하다'라는 말이 대단한 찬사처럼 되어버린 느낌이다.
섹시하다라는 말 속에 여러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나타나는 양상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것도 섹시한 것이요, 귀여운 것도 섹시한 것이며, 똑 떨어지게 야무진 것도 섹시한 것이 되었잖은가.
이젠 오히려 되도 안되게 아무데나 섹시하다는 말이 남발되고 있는 실정까지 온 것 같다.
어찌 되었건 이제는 모두 섹시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난 아니다.
난 아직까지는 변함없이 섹시한 사람보다는 밥 잘먹는 사람이 좋다.
그것은 딱 하나뿐인 이유때문이다.
섹시한 사람을 밥 잘 먹게 하기는 힘들어도, 밥 잘 먹는 사람을 섹시하게 만들기는 그래도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물론 예외도 있겠지만 확률이란 것의 매력이란 바로 그런 데 있지않을까 싶다.
<사족>
아, 참! 인생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지금 나는 빼빼마른 남자와 살고 있다. 다 내가 마른남자 싫다고 노래를 한 내 업보가 아닌지.
그래도 그나마 사람하나는 괜찮은 듯 하여, 그저 내 복이려니...하고 산다. 말랐어도 키는 크니 불행중 다행이라고나 할까.
세상 사, 정말 마음가는 대로 안되는 것도 다 사람사는 맛인지.
입이 짧아 이것저것 가려먹기만 하는 내 서방님,
그저 부럭부럭 밥 잘 먹게 하려고 별 수단을 다 쓰며 사는 나는 또 누구일꼬.
아! 인생이란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너무도 멀어라!
칵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