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밤 열한 시 오십분... 아들은 지금도 돌아오질 못하고 있습니다.
어느덧 아빠보다도 커버린 중3 된 큰아이는 비평준화인 이 도시에서 가까운 고등학교를 진학하기 위해 무지 노력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고 도서관에서 돌아오질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치열함과 절제함으로 맞서고 있을 아이... 읽고 싶은 책을 접어야 하고, 보고 싶은 영화도 참아야 하고, 컴퓨터 게임도 멀리 해야 함이 그 아이에게 인내가 필요로 한다는걸 압니다.초등학교 때 공부를 잘했습니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아이는 문학책과 컴퓨터에 거의 마음을 다 빼앗겼고 저도 좋은 현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묵인하고 격려까지 했는데 중간 고사의 결과가 아이에게 많은 감정적인 경험을 하도록 했습니다.
시험을 대비하지 않는 당연한 결과이므로 괜찮다 했습니다.그런데 이 아이는 자기 성적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더니 우려하게 될 만큼 정서적인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이 자기를 바라 보는 것이 자기를 무시했다 말하기도 하고 성적에 의해 자기의 의견이 적용되지 아니 했다고도 하며 사는 것이 무섭다고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거의 뜬눈으로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겠노라고도 했고 잠을 자면 악몽을 꾼다고도 했습니다.
저는 병원을 찾으려 했는데 그것조차 아이가 거부했고... 한방병원에서 보약을 지어 먹이며 잠재우는 것으로 아이를 도왔습니다.공부는 정말 잘하고 싶은데 공부가 되지 않아 힘들다 했습니다.
저도 아이의 미래에 대해 염려가 생기면서 여유가 없어 졌으나 감성적인 내 아이의 가장 중요 한 것이 정서적 안정이라 생각하며 공부에 대한 욕심을 제가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이에 대한 믿음도 가지려 노력했습니다.
등수에 연연하지 말라고 너처럼 많은 책을 읽은 아이는 고등학교에 가면 반드시 잘할 거라 격려했는데 아이는 자기가 하지 않은 공부에 대해 절망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야단칠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를 위해 기도했고 하나님이 아이에게 주신 비전을 아이가 품길 소망하고 있을 때 아이는 전학을 요구했고 엄마는 서울에서 이곳으로 전학하는 걸 주저 하지 않았고 이사도 왔습니다..
(물론 아이때문에 이사 한것은 아니지만, 통학 가능한 거리였다는 겁니다).
새로운 환경에 접하게 되고 하나님을 잘 섬기기 시작하면서 아이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커다란 기대감을 가지고 있노라고 공부를 해야 하겠다고... 이것을 위해 하고 싶은 많은 것은 잠시 접겠노라 더니 열심히 했고 놀라울 정도로 성적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내 아이가 사춘기를 누구보다도 아프게 경험했노라고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대부분 중학교에 입학시켜놓고 이렇게 시험 대비 기간이면 학원에서 (우리 아이는 학원에 다니지 않습니다 본인의 요청으로) 12시가 되어야 보낸다는 겁니다 그래서 내아이도 도서관에 가면 12시를 넘기고야 옵니다.
그것이 위안이 된다 했습니다.. 왜 이래야 합니까?키는 컸지만, 운동부족이라 얼굴도 희고 눈도 나빠져 안경도 끼고,
쉬는것을 편안하게 생각지 못하는 현실을 선배님들은 경험 하셨겠죠.
우리도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보충수업이다 학원이다 다녀본 세대입니다.
그러나 25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이들이 겪는 이 치열함은 변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에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너희의 2세들은 편안하게 대학 가게 될거야\" 라고 하신 선생님의 말씀은 오늘날에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12시 20분이 마악 지난 이 시간에도 아이는 돌아오질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데리러 가야 할까 봅니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큰 숨을 쉬라 말하렵니다.
지금은 정서적인 안정을 되찾은듯하나 우리 아이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엄마 우리 선배들이나 우리 학생들이 미치지 않는 거 그거 기적이라 생각지 않으세요?
\" 편안하게 공부만 할 수 있는현실... 먹고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입고 싶은 옷을 입을 수 있는 현실이 그 아이에게 아니 우리들의 아이들에게 이미 위로나 설득력은 없어진 듯 합니다.
이땅의 부모 역활 대단한 숙제 입니다. 아이를 데려 와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