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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각기동대> 좀 지난 영화이긴 하지만


BY rjvna 2002-05-18


일본 만화 영화에 대한 반감.....싸구려 感傷主義와 공공연한 여성비하, 단선적인 선악대결 구조, 도저히 빨간색이라고 명명해줄 수 없는 부패한 핏빛과, 시체가 썩을 때 땅 밑으로 스며드는 그런 불쾌한 검은색의 과다 사용에 대한 역겨움, 그리고 기술적 한계 때문에 그렇겠지만 평면적인 인물 그리기와 지나치게 단순화된 배경 그림이 주는 비현실감 등등 ....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망설이다가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갔는데....... 항상 예외라는 건 있으니까 하는 심정으로....영화는 명성에 걸맞는 감동을 안겨주었고 일본 만화 영화 수준은 천당과 지옥 차이보다도 더하다는 딸아이 말을 수긍하게 되었다.

최근에 내가 본 영화들은 철학책 열 권 읽는 것보다 더 효과적으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철학적인 사유를 촉발하는데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는 행복의 의미를 묻고 있고 '나비'에서는 인간의 정체성과 기억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들었는데 공각기동대는 철학의 제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는 잘 쓰여진 한권의 철학교과서이다.

영화에는 철학의 여러 질문들 중 전통적인 질문들, 예를 들면 인간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하는가 하는 문제, 무엇을 생명체로 정의할 것인가의 문제, 복제와 번식의 차이점과 영원성의 문제, 영원히 존재하기와 죽음의 관계에 대해 무수한 질문들이 나오는데 내 생각에는 감독은 질문만 하지 답은 제시하지 않는 것 같았다. 또한 과학 기술에 대해 비판하고 있지만 냉소적이거나 극렬하지는 않고 그렇다고 무슨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것 같지도 않다.

자칭 생명체라고 주장하는 '프로그램2501'이 자기를 의식하는 과정과 장소가 소위 말하는 사이버 네트 워크에서이고, 주인공 사이보그가 새로운 몸을 얻어 세상을 향해 나가면서 '네트는 광대하다'라고 발언하는 것은 의미심장한데 인류의 삶이 사이버 공간으로 확대되었음을 싫던 좋던 인정해야 하고 어쩌면 거기서 새로운 인류가 탄생할지도 모른다는, 지금 보기엔 다소 황당한 가정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가상공간에서 탄생한 그 무엇을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혹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물음인데 가령 인간을 스스로 자기 존재를 인식하고 사유하며 자기 행동의 결과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윤리적 존재라고 다소 추상적으로 규정한다면 프로그램 2501은 요건 충족으로 인간이라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기 위한 절대적 요건인 몸...생물학적인 몸이 없다는 의미에서는 인간도 아니고 생명체도 아니다. 그러나 프로그램 2501은 사이보그의 몸을 선택해 스스로의 존재를 드러내고 몸이 파괴될 때 '죽는다'는 표현을 쓰며 '영원히 존재하고 싶다'라는 생명체의 욕망을 서슴없이 드러낸다. 또한 주인공 소령은 프로그램 2501과 의 '융합' 이 후 새 몸을 얻어 나가면서 '이전의 나는 없다'고 선언한다. 이 과정은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고 성장하다 후손을 남기고 죽는 과정의 전형이다.

사이보그의 원 뜻은 생체와 기계의 결합인데 간단하게는 의족이나 의수의 착용도 사이보그 개념에 들어간다. 그런데 우리는 사이보그 하면 생체의 비중은 아주 미약하거나 거의 없는, 기계로만 만들어진 몸에 인간의 정신을 가진 그런 존재를 상상하는데 영화 속에서도 사이보그 인간을 단순히 생체와 기계의 결합으로 설명하지 않고 의체(疑體)라고 명명한 기계적 몸의 뇌에 ghost를 넣어야만 완성되는 것으로 설정하고 있는데 이는 구약의 인간 창조 과정을 연상시킨다. 진흙으로 인간의 형상을 만든다고 다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거기에 신이 입깁을 불어넣어야만 비로서 인간이 된다는 이야기인데 신의 입김을 영혼을 불어넣는 과정이라고 해석한다면 ghost를 넣는 과정 역시 기계가 기계에 머물지 않고 생명체 혹은 인간으로 탄생하는 과정인데 여기서 의문은 ghost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등장 인물들도 그냥 '고스트' 라 부르는데 어떤 신문 기사를 보니 '인공지능'으로 번역했는데 이는 잘못된 번역이라 생각된다. AI (Artifical Intelligence)라는 기존의 개념과는 차별되는 새로운 개념으로 고스트란 단어를 고른 것 같은데 영혼 혹은 정신, 혹은 마음을 나타내는 soul 이란 단어도 쓰지 않고 왜 고스트를 고집했는지 의아하다. 아마도 현인류와는 탄생 과정부터가 다르다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한 것 같긴 한데.....
스스로 사유하고 스스로를 의식하는 자아가 있다해도 생체학적인 몸을 지니지 않고 생물학적인 과정없이 태어나, 기계에 깃들인 어떤 존재에 전통적 개념의 생명체 혹은 인간이라고 명명할 수 없음을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이는 심신이원론을 연상시키며 또한 몸과 머리가 뒤바껴 환생한 두 사람을 누구를 A라 부르고 누구를 B 라 부르는가에 대한 문제를 연상시킨다. 이는 또한 의학이 발달해 신체의 거의 전부 다, 심지어는 뇌의 일부까지도 다른 사람의 장기 혹은 기계로 교환했을 때 나는 나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이며 결국은 인간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관한 문제이다.

또한 疑似기억이란 말도 나오는데 어떤 사람이 자기가 기억하고 있는 아내, 딸이 실재로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주입된 가짜 기억이라고 하자 경악한다. 그는 가짜 기억과 가짜 경험에 의존해 행동하고 생활하며 심지어는 가짜 딸을 자기가 살이 있는 이유라고까지 말하는데 이는 가상공간에서 겪는 경험들은 진짜인가 가짜인가? 혹은 현실인가 비현실인가, 이때의 현실과 비현실의 구분 기준은 무엇인가? 또 이런 경험들이 실존적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질문이며 또한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정의대로 사유가 존재의 절대 조건이라면 인터넷을 통해 가상 세계에 들어가서 온갖 경험을 하고 있는 내 의식이 진짜 나인가? 아니면 의식은 멀리 떠나보내고 몸만 남아 있는 현실 공간의 내가 진짜 나인가? (메트릭스 경우처럼)하는 질문과도 맞닿아 있다.

앞서 말한대로 이 영화는 여러 가지 철학적인 질문들을 하고 있는데 복제와 번식, 변용과 진화의 관계, 이 과정에서의 죽음의 의미 등등 ..... 그러나 이런 문제를 다 다루기에는 내 역량이 부족하다. 직접 가서 보시라!

미학적인 관점에서도 완성도가 아주 높은 영화이다. 직접가서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