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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그래도 감사해)


BY 들꽃편지 2002-05-18

삼일동안 집안에서 꼼짝을 하지 못했어.
아이가 다쳤기 때문이야.
핑계일지 모르지만...
오늘 고아원 봉사갈려구 했었어.
앞으로 시간 내기 힘들어서 오늘은 시간을 내보려 했거든...
며칠전에 친구들에게 봉사간다고 했는데
말부터 앞서게 되어서 이래저래 미안하고
변명이지만 앞뒤 사정을 이야기하려고 글을 쓰고 있어.

삼일전에 학교에서 전화가 왔어.
초3인 아들 담임이라며...놀라시지 말고 양호실로 오라고..
머리를 다쳤는데 병원에 데리고 가서 꿰매야할 것 같다고
정신이 없더라구...
내가 한복일을 한지 3년째지만 한번도 그런일이 없었거든
가슴이 덜덜 떨리고 다리가 후둘거리고 얼굴이 노리하게 변하는 것 같은거야.
그래두 마음속으로 계속 "뇌에 이상만 없길..없길..없길.." 그랬어.

아이는 비 범벅이 되어 울고 있었어.
난 침착하게 아이를 안아 주고
옆에 담임선생님이 계셨는데 인사도 못하고...
상처부이를 보여주길래 봤더니
한 5센티정도 벌어져 피가 흥건히 고여 있었어.
아이는 떨고 있고 담임도 놀라서 이런저런 설명을 하시고...
작은 축구 골대가 넘어져 아이의 머리를 쳤다고 하더군.
선생님께선 운동장을 가리키며 저거라고 손짓을 했지만
난 정신이 없어서 보이지 않더군.

인사를 하고 아이 손을 잡고 병원으로 향했어.
바지와 티엔 비가 묻어 있고
머리 정수리 부분에 큰 반창고가 붙어있고...

병원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라 간호사만 있었어.
30분정도 기다리라 하더니
아이의 모습과 내 초췌한 모습이 급해보였는지
의사 선생님께 아이가 다쳐서 왔다고 설명을 했는지
의사 선생님이 우릴 부르더군.
어떻게 다쳤냐고 하면서 다쳤을 때 기절하지 않았었냐고 친절하게 물어보시더군.
그러더니 궤매야 한다며 아이를 두고 나가 있으라고 하데...

난 병원에 앉아 있질 못하겠더라
그래서 병원 유리현관문을 열고 나와서 비상계단 입구에 서서 왔다갔다 했어.

10분이 왜 그리 길게만 느껴지던지.
그 잠깐의 시간동안 많은 일들이 떠올랐어.
큰 아이 입원하던 날...
철봉에서 떨어져 팔 뿌러지던 날...
작은 아인 그래도 별일없이 잘 커 주고 있었는데
아무에게도 연락을 안했어.
연락해봤자 서로에게 걱정만 끼칠뿐이지.
혼자서 치뤄야 할 일들이 앞으로 얼마나 많을까를 염려할뿐...

아이는 자기딴에도 다행이라 여겼는지 얼굴이 밝아져서 날 보고 웃더군.
간호사는 괜찮다고 치료만 잘 하면 아무일 없다고 했어.
괜히 고마웠어. 괜히...
나도 밝은 표정으로 병원비를 지불하고 착하게 인사하고 병원문을 가볍게 열고 나왔어.


다행이 뇌엔 이상이 없고 겉에만 상처가 난거였기에...
집으로 가면서 아이에게 뭐 먹고 싶냐고 물었어.
아인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고 했어.
일층 슈퍼보다 지하 슈퍼가 아이스크림이 더 싸다고 하더라고
난 모르고 있었는데 말이야.
아이도 이제 정신이 들었나 봐.
나도 떨리던 온 몸이 정상적으로 돌아오고...

오늘 비가 내렸지.
머리에 물이 닿으면 안된다는 의사 선생님 말을 절실히 믿던 아이는
병원가는 길에 비가 온다며 모자 달린 잠바를 입고 모자를 뒤집어 눌러 쓰고
그리고 우산도 바짝 쓰고...
웃음이 나오더군.
크나 적으나 아이나 어른이나 아픈건 끔찍하다는 걸 아는거지
본능적으로 말이야.

내일도 병원가야하고
글쎄 이번주 안에만 병원가면 안가도 되는건지.
그건 내일 돼봐야 알겠지.

다음주부터는 아주 바쁠거야 일을 더 많이 늘렸거든
그래서 고아원 봉사갈 시간을 낼 수 있을지 그건 장담못하겠어.
열심히 봉사 다니는 친구들에게 미안하고 그렇지만
직장이 있는 난 어쩔 수 없다는 걸 이해바래...

오늘도 수고한 친구들에게 인사하며...

비가 아직도 오는건가?
우리 아들 내일도 비온다고 아침부터 수선 떨겠군.
그러기 전에 조심하지,..으이구...
그러니까 아이겠지
지도 다치고 싶어 다쳤겠어...

그래도 감사해 이만하길...
일도 못하고 볼일도 못보고 내가 꼼짝 못해서 답답한 걸 아이는 알까?
왜 꼼짝 못하냐 하면
병원에서 나가 놀지 못하게 하래.
그래서 아이 학교 갔다오면 내가 못나가게 꼭 잡아 놓고 있거든.
그리고 병원도 데리고 가야했고...

다치지 않고 건강하면 살아갈 수 있어.
아무리 힘든일이 내 곁에서 나를 뒤흔들어도...
다행이야,정말....
그래서 감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