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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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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 가는 길.


BY 들꽃편지 2002-05-15

도봉산...
포대 능선을 지나 아래로 놓인 계단을 내려가다보니
언제부턴가 자리 잡고 있는 산사가 산속에 콕 박혀 있었다.
산언저리와 오래된 고목과 함께 어울려 살고 있던 산사는 색이 바래고 나무기둥이 벗겨져 있었고,
절과 절을 이어주는 돌계단은 말은 안했어도 긴긴 세월의 풍파를 말해주듯 많이 낡아 있었다.

얕트막한 기와담과 그 담을 기어올라가는 담쟁이 덩굴의 잎을 잡아보며
"담쟁이 덩굴아? 넌 가을에 단풍이 들면 더 고와.가을에 또 만나자.'

돌 틈새에 집을 짓고 살아가고 있는 민들레 씨를 보며
"너는 꽃보다 이렇게 깃털같은 씨가 동그랗게 맺혀 있을 때가 훨씬 이뻐"

바람결에 흔들리는 풍경소리에 귀를 기울리며,어느 스님이 가볍게 치는 목탁소리에 가슴을 열며,
"그래, 비우는거야.세상것에 너무 치우치지도 말고,계절이 오고가듯 현실속에 나를 맡기는거야."

난 살면서 그렇게 오래된 주목이란 나무를 본 적이 없었다.
주목은 내가 알기론 천연기념물이다.
틀렸나?
굵고 당당한 다리, 알맞게 조화를 이루며 뻗어 있는 가지.
무엇인가 생각이 들어 있을 것 같은 나무의 제일 윗부분 머리.
친구들과 이 곳에 온 사람들은 모두 이 나무에게 반한듯 한참동안 자리를 뜰 줄 몰랐다.
그래서 나무 이름이 주목인가 보다
"모두들 나를 향해 주목!!" 나무가 이렇게 명령하는 것 같았다.


산사에 가면 왠지 모를 정숙함과 고즈넉함이 밀려든다.
걸음도 고양이처럼 사뿐히 걸어야하고 숨조차 안으로 안으로 쉬어야한다.
말소리도 자연의 소리처럼 드러나지 않게 속살거려야하고
한 줄기의 풀도 돌멩이 하나도 함부로 만져서도 다치게 해서도 안된다.

도시에서는 그렇지 않다.
누구 목소리보다 내 목소리가 더 커야 잘 살아날 것 같고
누구 것보다 내 것이 더 크고 번쩍여야만 행복할 것 같고
재빠르게 아스팔트길을 씽씽 달려야만하고
더 멋지고 유행하는 음식과 옷을 입어야만하고
내 자식만은 내 남편만은 나만은....
나도 그렇게 살아 온 사람중에 한 사람임을 인정한다.

산사에 오면, 산사에 서면, 그런 세상것들이 부질없음을 허무함을 알게된다.
물론, 산사를 내려오면 다시 세상것에 내가 속고 내가 속이고 살게 되겠지만
그래도 잠시만이라도 나를 돌아보게 되고
욕심투성인 나를 다독이게 되고
만지면 만질 수록 아픈 상처를 가만히 놔 둬 상처가 있는지 조차 잊어버리게 된다.

오후가 저물무렵
우린 멋스럽고 고즈넉한 산을 차차 내려왔다.

자연속에 잠시 내가 서 있었지만
자연은 나를 품어 다독여 주고 어루만져 주었다.
생생한 나뭇잎과 꽃과 물에게 잠시였지만 뒤흔드는 자아를 붙잡아 두곤 했다.

깊에 호흡을 하고 손으로 깔때기를 만들어 힘껏 "야~~호~~"를 외쳤다.
그 한마디가 메아리 되어 날아가버렸어도
우리 귓전에 지금도 남아있다.
도봉산의 바위 봉우리와 함께
산정상에서 소리치던 메아리가 오늘도 나를 깨운다.

산 아래에서 우릴 기다리던 친구들을 만나
아랫세상으로 내려와 막걸리를 마셨다.
산위의 세상은 세상이 아니다.
이질적인 요소도 개입되지 않고 오해할 소지도 없는 자연이란 나라다.
불손하고 불확실한 문제도 적은 자연인것이다.

순수함과 생생함.
너도 나도 드러나지 않는 우리가 되어
물 흐르듯 바람불듯 계절이 바뀌듯 살아가는 것이 바로 자연이다.

문명이 발달하고 과학이 발전해 최첨단의 현실에 살 수록
우리 인간은 자연을 더욱 더 그리워하고 선호하고 자연에서 살고 싶어한다.
자연에서 태어난 우리, 자연으로 돌아가고픈 건 본능이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