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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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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녀와 군바리


BY greenman 2002-05-14

휴가가 가기 싫다고 하는데도 부대방은 휴가증을 억지로 쥐어주었습니다.
것두 보름씩이나 말이죠. 참 미치고 팔짝뛸 노릇이더군요.
왜냐구요?
휴가를 나와도 갈데가 없었거든요.
복잡한 가사사정으로 온 식구가 제살길을 찾아
다들 오밤중에 튀었기 때문이죠.
(제 동생이 보내온 편지도 주소가 없더군요)

근데 고참하나가 안가겠다는 발버둥치는 저를
개끌듯이 끌고나가 정문 밖에다 패대기를 치는 겁니다.
그게 바로 저의 군대생활 첫휴가의 시작이랍니다.

주머니 속엔 천원짜리 4장이 전부 였었는데.
참 이게 기가 막힌겁니다. 잘곳도 없는데다가
더군다가 요즘처럼 노숙자 쉼터가 있어 공짜로 밥멕여주는 것도 아니고

아뭏든 서울행 군용열차를 탔습니다.

예전에 살던 동네를 찾아가볼까도 생각했었지만
가만 생각하니까 참 쪽팔리는 일이더군요.

그래서 갈데가 생각날 때까지 용산역 대합실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습니다.

좀 있으니까 캄캄해 지더군요. 배는 고프죠. 아는 놈은
다 군대 가 있죠. 하룻밤만 새고는 다시 부대로 들어가야지
하고 마음먹고 있는데

왠 아가씨 하나가 제앞에 턱하니 버티고 서는겁니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 군인아이씨! 우리 한번 할래?"
"싸게 해줄께" , "아님 오늘밤 니 맘대로 하던가" 하고
유혹을 하는겁니다.

아 정말 뻗치더군요.

아가씨, 나 돈없어(비참했지만 진실을 텅어 놓았죠)

"에이 오천원도 없어? 오천원원이면 무쟈게 싸게 주는거야"
"원래 만원 받는데, 오늘 길게해서 만원? 오케바리?"

참 나원 내주머니 속에 돈 사천원든건 귀신같이 알아가지고
계속 오천원 오천원 하는데 짜증나더군요.

순진한 난 주머니속을 까보이면서 "봐! 진짜 사천원 밖에 없잖아"

주머니 속에 돈이 없으니까 별게 다 사람을 우습게 알더군요.
바로 반말이더라구요.

"야! 무슨 군바리가 돈만원도 없냐?"

"야이 XX(숫자)년아! 돈만원 있었으면 벌써 저녁밥 사먹었지
그거 하겠냐?"

아뭏든 숫자녀와 저는 여러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쪽팔리는지도 모르고 옥신각신 했습니다.

"따라와! 씁새야! 밥사줄께"
이 한마디에 핑하고 눈물이 돌아불더군요.

염체불구하고 따라갔습니다.

용산역 주변의 창녀촌까지 숫자녀를 따라가는데

주변의 동업자들이 " 어머, 얘 긴밤 하나 물었구나"
하고 부러운 듯이 쳐다 보더군요.

한평도 채 되지않는 공간이었습니다.
분홍빛 전구 때문이었는지 방안분위기는 정말이지
색쓰는 분위기더라구요.

나를 방에다 데려다 놓은 그녀가 저를 보고 잠시 기다리라더니
어디론가 사라지더군요.

설렁탕 한그릇에 사홉들이 소주두병, 감 2두개
그녀는 신문지로 덮어온 조그마한 쟁반에 담아온 것들입니다.

"하고 먹을래? 먹고 할래?"
기막힌 물음이죠.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먹고하자 그랬죠.
왜냐믄 좁은 방안에서 열라리 몸부림을 치다가
설렁탕그릇이라도 엎어불면 생으로 굶을까봐서였죠.

설렁탕 국물은 남겨두라는 그녀의 명을 거역치 못하고
건데기만 건져 먹었습니다. 국물은 안주거리로 남겨 둘 수
밖에 없어 안타까웠지만 아뭏든 대충 한끼를 때웠습니다.

그동안 그녀는 감을 안주삼아 소주를 홀짝거리기 시작했죠.
제가 두어잔 마시는 동안 사홉들이 소주한병이 날아가 버리더군요.

술기운으로 약간 알딸딸해진 그녀는 먹고하자는 좀전의 말과 달리
자기 신세타령을 들어놓기 시작하더군요.

차 X X 고향은 충청도 어디였었는데 기억이 안나는군요.
당시 나이는 겉보기와는 달리 무지 영계더군요.

그녀의 신세타령은 우리가 흔히 듣던 그런 야그였슴다.
집안형편이 어려워 공장에 취직했고
거기서 어떤 오빠를 만나 잘살아보려고 했었지만
그 오빠가 자길 버려서 충격으로 이렇게 망가졌다는
간단한 얘기들을 술기운 때문인지 무지 길게 하더라구요.

참나, 근데 나도 참 무지 나쁜 인간입니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먹고하자는 그말이 자꾸 귓가에 맴도는데
영 할생각을 안는겁니다. 그렇다고 밥까지 얻어먹은 주제에
영웅본색을 드러낼 수도 없고 닝기리 조또.

소주한잔, 감한입, 국물 한숟갈
그녀가 마시고 먹는 스타일이 그랬습니다.

얇은 벽과 비료포대를 가지고 임시로 막아놓은 문틈 사이로
옆방의 색쓰는 소리가 여과없이 들려오는 통에
저의 심장은 졸라게 벌렁거리고 있었지만
그녀는 자기의 신세타령에 도취되었는지
아님 직장에서 하도 많은 민원인들을 상대해봐서
그랬던지 눈만 꿈뻑꿈뻑 댈 뿐, 액숀을 취할
기미가 통 안보이더라구요.

사홉들이 소주두병이 감꼭다리 두개와 나뒹굴었을때
그녀가 쿨쩍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제 속으로는
"야 쓰바. 나도 전설따라 삼천리 풀어놓으면 너만큼은 된다"
"나도 먹고 너도 다 먹었는데, 먹고나서 하기로한 것
이자뿌지마라"하는 생각뿐이었지만.

그래도 얻어먹은게 죄라고 그녀의 등을 다독거려 줄수 밖에요.
"산다는게 다 그런거지. 이제와서 어쩌겠어"
그게 제가 한 말의 전붑니다.

그녀의 그날 장사는 완전히 적자였습니다.
알두쪽에 사천원이 전부인 군바리 하나 데려다가
멕여주고 재워주고

그녀는 조금 심한 주사를 보이더니, 이내 코를 골더군요.
잠이 든 것입니다. 생각보다 무거운 그녀를 안아
그녀의 좌판위에다 눕혔습니다.

그렇잖아도 무지 짧았던 그녀의 치마가 거의 허리까지
도르르 말려올라가 있었습니다.

옆방의 색쓰는 소리, 당장 눈앞의 거시기.
알딸딸해진 술기운.

이런것들 모두가 더이상 제게 자극을 주진 못하더군요.

그녀의 머리맡에 사천원을 두고 나왔습니다.
그냥 돌대가리처럼 아무 생각없이 살아주었으면 하구요.

다음날 빈손으로는 차마 부대로 들어가기가 어렵더군요.
남들처럼 떡이며 과일이며 고기 등 푸짐한 보따리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명색이 첫휴간데 말입니다.

용산역 부근을 벗어나 걷고 또 걸었습니다.
화양리라고 어린이대공원이 있는 곳쯤 왔을 때
4층건물 공사가 한창이더군요.

십장을 찾아가 몇일간만 질통을 지게해 달라고 했었죠.
몇일이 열흘이 되었고
십삼만원이라는 일당과 성질이 지랄같던
십장아씨가 차비나 하라며 건네준 칠만원
이십만원이라는 거금이 생긴거죠.

몇일이 더 남았었지만, 귀대하기로 했습니다.
그녀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용산역에서 몇시간을 기다린 끝에 그녀를 보았습니다.
대머리가 벗겨진 노인양반과 흥정을 하고 있더군요.

노인냥반은 삼천원만 깎아서 제발 칠천원으로
한번만 해달라고 조르고 있더군요.

그날은 제가 긴밤을 샀습니다.
그녀는 저를 잘 못알아보는것 같아서 조금 서운하기는
했지만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긴밤 손님을 잡아서 기분이 무척 좋았던지
그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이밤의 행운을 놓지지
않겠다는 듯 제가 도망이라도 쳐버릴까봐 저의 팔짱을 꼭 끼더군요.

그녀의 방은 여전했습니다.
이부자리엔 그날 낯의 영업 흔적이 뚜렸이 남아있었지만
그녀나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녀는 긴밤손님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영업을
시작하려고 하더군요. 그리고 제게도 재촉을 했습니다.

몸을 요상스럽게 배배꼬더니
코멩멩이 소리로 " 아이 오빠. 빨리 하자"하는 겁니다.

차 X X !
나 기억안나?

순간 모든 것이 멈춰버린 것처럼 침묵이 찾아왔습니다.

맥주4명 오징어 두마리 사과 몇개, 그리고 과자들

그날은 첫날처럼 많이 마시지를 않더군요.
더 들을 얘기도 없었구요.
그냥 저도 얘기가 하고 싶었습니다.
전설따라 삼천리는 차마 하지 못하고
재밌는 얘기만 해줬죠. 옆방에서 우리가 웃고 떠드는게
귀에 거슬렸던지 조용히 색이나 쓰라며
발로 벽을 쾅쾅거리면서 걷어차더군요.

그녀도 저도 서로 말은 없었지만
색쓰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제가 자기 이름을 불렀을 때
첨엔 고향사람인가해서 기절할 번 했다고 했습니다.
가슴아픈 얘기였었지만 우린 서로 배를잡고
웃었습니다. 그래야만 그녀가 좋아할 것 같아서였죠

아침에 5만원을 내밀자 그녀가 사래질로 거절을 하더군요.
그녀의 손에 억지로 돈을 쥐어 주었습니다.

그녀는 너무 많이 준다면서 우리나라엔 나같은 군바리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시장까지 따라가 준 그녀
떡이며, 튀김닭이며 단골(?)만 찾아가서 무척 싸게
사주더군요. 그리고 자기가 받은 오만원에서
가죽장갑을 사주었습니다.

그 겨울내내 가죽장갑을 끼고 다녔습니다.

휴가가 삼일이나 더 남아 있었는데도
일찍 귀대한 사병은 그 부대 창설이래 첨이라고 했습니다.

당연히 모범사병 표창을 받게되었죠.

부상이요?
하이고 니기미 쓰바! 포상으로 또 6박 7일의 휴가를 주는데
박박 우겨서 반납하느라고 아주 혼이 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