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시!
이건 소설이나 영화 제목이 아니다, 내가 간절히 소망하는 하루의 길이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에게 있어서 하루의 길이는 항상 짧았다.
그것은 내가 바쁘게 산다는 얘기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생각 없이 무엇인가에 쫓기며 산다는 얘기도 된다.
생각없이 떠밀려온 생활 속에서 나도 모르는사이 광기어린 경쟁의 속도전 대열에 무섭게 내 달리는 전사가 되어 있었다.
내가 직업을 갖고 있을 때에는 일에 미쳐 하루가 짧았다.
아침에 눈뜨면서 시작한 나의 하루는 일터에서 다시 집에 돌아올 때까지 흡사 전쟁을 치르듯 치열했다, 아니 그것이 하루의 끝이 아니라 집안 일을 시작하는 또 하나의 하루가 집에서 시작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난 하루에 두 번 출근하는 여자야!"
아침에는 직장으로 밤에는 집으로..... 어느 쪽 일에도 소홀할 수 없었던 나는 가끔 남편에게 하소연 겸 투정을 부리곤 했었다.
다행히도 우리의 세 아이들은 건강하고 착하게 자라주었으며 항상 집안 일을 거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남편의 배려나 아이들의 협조가 없었다면 내가 그만큼 내 일에 몰두하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을까....생각해본다, 행복했었다!
천성적으로 무슨 일이든 미쳐서하기 때문에 나 자신도 지칠 때가 많다.
항상 머리 속은 일에 대한 생각으로 꽉 들어차 있다, 길에서도....밥하면서도.....자면서도.....
피곤하다! 항상 입에 달고 사는 말이었다, 정말 지칠 때도 많다.
드디어 신장이 열 받아서 쓰러지고 말았다! 소리나는 병원차에 실려 가는 호강을 했다.
하여, 내 직업은 여기서 끝맺는다!
병원에 한달 남짓 입원해 있는 동안 많은 반성을 했다,
내가 얻은것과 잃은것에 대한 대차대조표를 모처럼 꼼꼼히 훑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시간을 너무 오만하게 내 멋대로 휘두른 것은 아닐까?
生을 너무 간단하게 내 손안에 쥐고 흔든 것은 아닐까?
왜 일하는가? 무엇이나를 쫓아오는가?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등등.
결론은 욕심이었다!
첫째도 둘째도 욕심이었다, 다른 어떤 변명도 석연치 않다.
물질적인 富에 대한 선호, 사회적인 위치에 대한 집착, 스스로 과대평가한 자신의 성취 욕,
또 뭐가 있더라........? 등등........
새 사람이 되기로 했다, 모두들 흔히 話頭로 삼는 "마음 비우기" 에 들어간 것이다.
일을 그만두고 쉬면서 운동으로 몸 관리나 하고 집에서 화초를 돌보기로 했다.
내 평생 그렇게 하루가 지루하고 길어 본적은 없는 것 같았다, 이건 내가 아니다!
이렇게 백년을 사느니 오히려 뜨거운 신장에 데어 죽으리라!
오랜 세월 내 일에만 몰두해 살다보니 같이 놀아줄 친구하나 변변히 만들어 두지 못했다.
우리 나라의 내 또래 아줌마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 걸까? 궁금하다.
그나마 있던 옛 친구들도 서로의 안목이 많이 어긋나 초점이 틀려져 있었다.
나는 그들의 대화에 어울리지 않았고 그들은 내 사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찌되었건 매일아침 집을 나서기로 했다, 돈 벌러 가듯이......
간신히 찾아낸 곳이 영어학원이다, 매일 갈 수 있고, 돈 조금 들고, 사람들 많이 만나고...
여러 사람들이 극구 말렸다, 이제 그걸 배워서 뭘 하느냐? 어디다 써먹겠는가?.....
머리에 들어가겠는가? 어린애들이랑 어떻게 어울리느냐? 등등 걱정이 대단했다.
사서 고생 하지말고 이제는 한가하게 여생을 즐기며 살라고 깨우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또 미쳤다, 새로운것에 대한 야릇한 전율!
새로운 언어에 눈뜨는 것도, 낮선 문화를 간접 체험하는 것도, 젊은 친구들을 사귀는 것도, 모든 것 이 나를 들뜨게 했고 관심 갖게 했으며 새삼 흥분시켰다.
또 밤을 샌다, 읽을 책도 더 많아지고 외국인 친구들에게 보낼 메일도 더 늘었다.
해야할 숙제도 나를 즐겁게 하고 월말에 받는 성적표는 밤잠을 설치게 한다.
설거지하면서 벽에 붙은 숙어를 외운다, 아주 문장 채로.....
신호등 앞에서는 단어를 외운다, 반대말도 유사한 말도 함께 외운다.
"워킹 딕셔너리" 우리 반 애 들이 나를 칭찬하는 애칭이다, 듣기 기분 좋다!
오늘도 아들녀석이 늦는다,
그러나 마음 졸일 새 없이 초인종이 울린다, 난 공부 중이다.
새로 산 영문법 책과 씨름하느라 자정이 넘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엄마, 나 기다리느라고 여태껏 안 잤어요?" 아들놈이 미안해한다.
내가 할 일이 있으니 초침을 세며 밤 늦는 아이들 때문에 마음 졸이지 않아서 좋다.
내가 꼭 읽어야하는 책이 있으니 빨래 돌아갈 동안 지루하게 기다리지 않아서 좋다.
밥하는 동안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팝송을 따라 부른다,
노래 가사는 잠들기까지 침대에서 외운다.
오늘은 CNN 뉴스를 훑어보고 자야한다,
그런데 컴 을 켜자 돌아다닐 데가 너무 많은 거다.
급한 대로 인쇄했다, 화장실에서라도 읽어 봐야지... 왜 이리 바쁘냐...?
최선을 다 했다거나 열심히 살았노라고 식상한 표현으로 포장하고 싶지는않다,
모두가 사는 방법이 다르듯이 내 방식의 살아가는 방법일 뿐이니까.
또 한 이게 내 팔자라면 거역하지 않겠다, 고여 있으면 썩기 때문이다.
난 오늘도 내게 25시간이 주어졌으면 좋겠다, 설령 일찍 죽는다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