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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70

순이


BY dansaem 2002-05-01

우리가 전에 살던 동네에 순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아니, 아이라기엔 나이가 너무 많다. 
정확한 건 알 수 없었지만 나보다 두세살 어리다 했다. 

키는 150정도 될까? 
몸은 바짝 말랐고 몸에 비해서 머리는 큰 편이었다. 
두상이 그리 크진 않았지만 몸이 워낙 왜소하니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거다. 
얼굴은 많이 그을렸으나 미운 상이 아니었고 
눈이 유난히 크고 검었다. 
그리고 목소리가 컸다. 

당시, 나이는 스물하고도 여섯, 일곱 정도 됐다지만 
정신은 9살에 머물고 있는 아이. 
초등학교 2학년 때 뇌염모기에 물려 
뇌염을 앓고 난 후 지금까지 그 시절에 머물고 있는 것이라 했다. 
공부도 곧잘 하고 영리한 아이였다는데... 

순이는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었다. 
그 어머니도 이제 연세가 많아 아마 환갑이 지나셨으리라. 
그 어머니는 인상이 참 푸근했다. 
웃기도 잘 웃었다. 
그러나 순이만 보면 소리를 지르곤 했다. 
집에 가라고. 

그래도 순이는 엄마를 찾아 나서곤 했다. 
들일 간 엄마를, 남의 일 간 엄마를. 

가끔씩 소리도 없이 와서 우리 방문을 확 열어제끼고는 
"우리 엄마 어데 갔니껴?" 
하고 물었다. 

한번은 우리 집에 와서 역시 문을 확 열더니 
○○가 어디갔냐고 물었다. 
내가 그게 누구냐고 물었지만 
막무가내로 ○○를 찾는 것이었다. 
나중에 옆집 아줌마에게 물으니 
예전에 우리 집에 살던 순이의 어릴 적 친구라 했다. 
풀이 사람 키보다 더 자랐던 빈 집에 
누군가가 살게 되니 옛 친구가 생각났던가 보다. 

어느 날인가, 
빨래를 널러 마당으로 내려서는데 
집앞 골목에 얼핏 사람이 보이는 듯 했다. 
자세히 보니 순이가 쓰러져 있었다. 
무서웠다. 
잠시 동정을 살피고 있는데 
부시시 일어난다. 
온 몸이 지푸라기와 흙 투성이다. 
천천히 집 쪽으로 걸어간다. 

뇌염의 후유증으로 나중에는 간질까지 얻었다는 걸 들어서 알고 있었다. 
혼자 길에 쓰러져 발작을 했던가 보다. 

특히나 음식을 먹다가 발작을 자주 해서 
순이 어머니는 순이에게 
남의 집에서 음식을 절대 못 먹도록 가르쳤던 모양이다. 
어쩌다 우리 집에 오면 
아이들 간식으로 준비해 둔 요구르트나 과일 따위를 먹으라고 내 놓아도 
순이는 절대 먹지 않았다. 
그러면서 아이들과 어울리려 했다. 
순이는 그러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아이들은 순이를 무서워했다. 
괜히 큰 소리도 치고 
혼자서 낄낄 웃기도 하는 순이가 
어린 아이들 눈에도 좀 달라 보이는 모양이다. 

그런 순이지만 
여자로 성숙하는 건 자연스러운 것이었던가. 
몇 해 전, 그 동네로 농활을 왔던 젊은 남자 대학생들을 보고는 
그리도 ?아다니더란다. 
히죽히죽 웃으면서. 
여자로서의 본능은 그런 상황에서도 살아있었던 것이다. 

시골이라서 그나마 순이는 몸이라도 건사하고 살았는 지도 모른다. 
이웃도 잘 모르는 삭막한 도시였다면 
집 안에서만 갇혀지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동네 사람들은 
어디 비슷한 자리라도 나서면 짝을 지어 보내라고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기본적인 살림이라도 가르치라 하지만 
순이 어머니는 그런 딸이 안스러운지 
청소도, 설겆이도 한번 안 시킨다 한다. 
누가 옳다, 그르다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 어미의 맘을 어찌 탓할 수 있겠는가. 

그나마 아직 어머니가 살아있고 
아직은 일도 할 만큼 정정하니 다행이지만 
엄마가 언제까지 같이 살아 줄 것인가. 
그 후엔 순이는 어쩔 것인가. 
지금 서른쯤 되었으니 아마도 마흔이 넘은 나이에 
시설로 들어가게 되겠지. 
아님 다른 형제들이 거두어 줄 것인가. 

나 역시 도움도 못 되지만 
생각하면 마음이 안됐다. 

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