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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분홍 산철쭉이 휘날리드라~~~


BY 들꽃편지 2002-04-29

"연분홍 산철쭉이 봄바람에 휘날리드라~~~~~~~"

야들야들한 연분홍 산철쭉은 능선을 따라 굽이쳐 피어있었다.
시대는 변했고, 사라지는 것을 억지로 막을 순 없지만
계절따라 피는 꽃들은 진한 그리움을 낳는다.

우리는 잘 먹고 잘 입고 잘 나기 위해 많은 것들을
미련없이 버리고 가차없이 떠나 보내야 했다.
그러나 계절은 우릴 잊지 못하고 어김없이 우릴 다시 찾아온다.

혹여 우리가 관심을 끊거나 바쁘다는 핑계로 쳐다보지 않아도
자연은 푸념하지 않고 속상해 하지 않고
엄연히 살아 숨쉬며 자신에게 주어진 팔자에 맞춰 살아가고 있다.

토요일은 그랬다.
햇살은 청명했고 바람은 조용히 입다물고 있었다.
며칠전만해도 바람은 괜히 얻어 맞은 아이처럼 중얼거렸었는데...
바람입안에 왕사탕을 물려 주었는지
오늘 아침엔 입을 꼭 다물고 수락산으로 가는 나를
아무말없이 보내주었다.

산은 익을대로 익어 4월의 연초록색을 띠고 있었고
건강한 계곡물은 자신만의 길을 자박자박 걸어가고 있었다.

산이 거기 있어 산에 오른다 했다.
산이 거기서 꼼짝하지 않아서
지하철을 두번이나 갈아타고 내가 찾아가야 했다.

초입부터 마주친 연분홍꽃...
모두들 그 꽃을 보며 이름을 물어보았지만
꽃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뭇잎은 진달래를 닮았고 꽃모양도 진달래를 꼭 빼 닮았지만
분명 얼굴빛이 달랐고 얼굴 크기도 더 컸고 몸매도 훨씬 늘씬하게 빠졌다.

산골에서 나고 자란 나는 산이 두렵지 않아 선두를 따라 씩씩하게 걸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였다.
돌투성이인 가파른 길은 몇발자국을 걷기도 힘에 벅찼고
더운 기온은 가슴가득 차 올라 숨을 헐떡거렸고
딱 요만큼에서 주저앉고 싶었다.

어떤 친구가 그랬다.
내가 산다람쥐라는 소문이 자자하다고....
그러니 중도에서 포기할 수도 없고
포기하면 난 다음부터는 집다람쥐가 될 소문이 뻔한거 아닌가...
우쩌나...
얼음물을 마시며 오이를 깨물어 먹으며 산 죽고 나 살자로 올라갔다.

산에 오는 기분이 이런거리라.
산에서 살고 있는 동식물과의 만남.
분홍색 치마같은 산철쭉
바위틈새 휘어져 살아내는 나무들
맑디 맑게 흐르는 계곡물
이름모를 야생화.

산을 정복하는 기분이 이런거리라.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세상풍경과의 만남.
아랫세상이 빠름이 아닌 느긋함.
단절이 아닌 공존.
나 혼자가 아닌 우리라는 정다움.

사라져 가는 것들은 예고가 없다.
가야 한다면 보내야 겠지만
가지 말아야 할 것까지 혹 보내지 않았을까.
내가 서너번만 이해하고 용서하고 붙잡았으면
내 곁에 남아 서로 의지하고 다독이며 살았을텐데...

산은 어느산이든 만만히 보아서는 안된다.
도봉산이 더 쉬우니 북한산이 더 힘드니 떠들어도 내가 봐서는
이 산이든 저 산이든 정상까지 오르려면 힘이 무지하게 든다.
내 체력을 기준으로 말을 하는 것이긴 하지만
약골인 내 체력으로 정상까지 무사히 다녀와서 더 값지다.

보내고 싶지 않다.
아지자기한 봄날을...
보내지 말아야 했다.
젊은 시절 첫사랑을...
너도 가고 나도 가고 다 떠나가면 남아 있는 그 무엇이 있나?
한가락 추억일까?
질긴 그리움일까?
어리석은 미련이겠지.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흐날리드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길에
꽃이피면 같이 웃고~~
꽃이지면 같이 울던...
음~~~음~~~ 봄날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