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이 영화 ‘친구’에 열광하고 있다. 개봉 10일 만인 9일 관객 수 200만명을 돌파, ‘쉬리’와 ‘공동경비구역 JSA’의 기록을 가볍게 넘어섰다.
“괜찮다. 친구니까.”
남성 관객들은 ‘의리 지상주의’를 대변하는 주인공들의 대사에 빠져들었고, 30~40대들은 영화 속 70~80년대 풍경에 “이것은 우리 영화다”라며 뜨거운 반응을 보냈다.
9일 오후1시, 3개 상영관에서 ‘친구’가 내걸린 서울 종로구 서울극장. 관람객들의 발길은 ‘친구’의 매표소로만 이어졌다. 평일 일과시간인 데도 30~40대 관객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3년 만에 처음 영화관을 찾는다는 46살의 김희수(건축업)씨는 교복을 입은 주인공들이 나온 영화 포스터를 가리키며 “꿈 많고 패기있는 그때가 생각난다”고 했다. 극장측은 “점심시간을 이용, ‘단체관람’ 오는 직장인들이 많다”며 “퇴근시간 이후 상영분은 대부분 매진”이라고 말했다.
20대와 여성들의 반응도 뜨겁다.
영화를 본 대학교 1학년인 김정배(20)씨는 “주인공들의 부산 사투리를 흉내내는 친구들이 많아졌다”고 했고, 회사원 김정은(여·25)씨는 “남자들 사이의 우정을 실감나게 그려, 내내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고 말했다. 제작사측은 20대가 관객 중 60%를, 여성이 절반을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했다. 특히 지방관객이 60%가 넘었다는 것도 특이한 점으로 지적됐다.
지방에 부는 ‘친구’ 바람의 강도는 엄청나다. 부산 대구 광주 등 전국 곳곳에서 관객동원 기록을 경신 중이다. 영화 전 과정을 촬영한 부산의 경우 ‘주인공역의 배우 장동건을 닮은 스포츠형 짧은 머리’와, 영화 속 대사를 흉내낸 부산 사투리가 유행하고 있다. 부산시는 ‘영화 친구의 거리’를 조성하고, ‘범일동과 자갈치 시장 등 주요 촬영지’를 관광명소로 만드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친구’의 마케팅을 담당한 ‘영화방’의 방미정(31) 실장은 예상밖의 호응에 대해서 “각박하고 속도감 있게 돌아가는 디지털 문화 속에서 현대인들이 과거로 회귀하려는 욕구를 느끼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최근 문화계 전반의 중심 화두가 ‘엽기’에서 ‘복고’로 넘어갔다는 의견도 나왔다. 교복, 풍금, 양철도시락, 흑백TV가 ‘골동품’으로 크게 대접받기 시작했고, 서울 압구정동에 ‘촌스런’ 옛날 물건으로 실내를 장식한 3~4개의 ‘복고 카페’가 들어섰다. 영화평론가 김시무씨는 “영화 ‘친구’는 ‘복고’의 흐름에 편승, 과거 이야기를 가장 탁월하게 상품화한 영화”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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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 친구가 제왕절개로 아들을 낳았다고 전화가 왔다.
젖먹이 애가 딸려있으니.. 그 소식을 접하고도 외롭게 남편도 없이 혼자 병실에 누워 있을 친구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발걸음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엄마에게 아이를 맡겨두고 바쁘게 다녀왔다.
친구의 어머니가 병실을 함께 지키고 계시길래..
"그래도 정윤이가 처음인데 아들을 낳아서 마음이 홀가분하시겠어요.다음번에 뭘 낳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하고 웃으며 말씀을 드리자...
"그래도 딸이 좋아요. 딸은 엄마의 평생 친구잖아. 그리고 첫 딸은 얼마나 보밴데..."
하고 말씀 하셨다.
엄마와 딸은 평생 친구다...
라는 말을 참으로 많이 듣는다.
며칠전 엄마는 평생의 친구를 잃었다.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신 것이다.
외할머니는 슬하에 딸만 넷을 두셨다.
그리고 20년전 남편을 앞세우셨다.
쓸쓸한 과부의 삶을 이어오시는 동안 엄마는 할머니에게 있어, 참으로 알뜰한 친구였다.
맏며느리였던 엄마는, 설이나 추석때가 되면 으례 우리집 제사를 다 준비하여놓고, 서둘러 외갓집으로 가서 할머니를 도와 제사를 준비하였다. 제사라는 것이 번잡스럽고 손이 많이 가는 것이라.. 한번쯤은 어려움을 드러낼 법도 한데.. 엄마는 시종일관 묵묵히.. 양쪽의 제사를 차려내었다.
그리고 한 집은 아니더라도 오랜동안 할머니를 곁에 두고 모셨으며..
일년 남짓한 할머니의 말년에 둘째 이모가 할머니를 모시는 것에 대해 적지않은 마음의 부담을 안고 고심하였다.
할머니 또한 엄마가 교편을 잡고 있던 십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나와 오빠를 맡아주셨으며.. 그 이후로도 한번도 우리 가족에게로 향하는 정성을 늦춘적이 없으셨다.
그렇게 두 분은 다정한 친구 사이로 오랜동안 마음 한켠을 서로와 공유하고 살아오신 것이다.
나는..
결혼을 하고 일년이 지난 지금도 엄마에게 아침 저녁으로 전화를 한다.
그리고 엄마는 나의 부탁이라면 천릿길도 마다않고 한걸음에 달려온다.
내가 간혹 힘든 육아에서 해방되어 이런 평안함과 안락함을 때때로나마 누릴수 있는 것도 다 엄마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 친구의 병실을 다녀와서 내 딸 달이를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이제까지 줄곧 기기만 하다가 요즘 일어서기를 배우느라 집에 놓인 오만것을 다 잡고 일어서는 나의 귀여운 딸 달이가 행여 삐끗해서 잡고 있던 난간을 놓치고 서러운 울음을 터뜨리기라도 하면 보듬어 안아주기는 커녕 큰소리로 윽박지르기에 여념이 없는 나를 떠올렸다.
딸 아이에게 과연 평생 좋은 친구로 남을수 있을지 슬그머니 걱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