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아래 내가 있습니다. 제 옆에는 밭두렁이 있습니다. 밭두렁으로 농부 부부가 밭갈러 갑니다. 누렁소 앞에 걸리고 비탈길 짜투리 밭으로 가나 봅니다. 올해도 감자를 심을겁니다. 작년에도 그랬고 그 옛날에도 그랬다고 지나가던 농부에게 귀동냥으로 들었습니다. 그 밭은 비탈지고 척박해서 감자만이 이리뒹굴 저리뒹굴 잘 자라기 때문일겁니다. 하늘엔 구름이 한 알갱이도 없습니다. 멀리 뚝방가에 꽃이 흐드러졌습니다. 꽃나무는 물표면에 자기 얼굴을 내려다 봅니다. 하늘도 한번 보고 물도 한번 보고 농부도 한번 보고 나도 한번씩 봅니다. 저는 들꽃입니다. 밭 가장자리에 핀 노오란 들꽃입니다. 내 이름이 뭔지 내가 어디서 살다가 여기까지 왔는지 난 태어날 때부터 모릅니다. 밭가에 씨를 박고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싶어 피었을뿐입니다. 전 한가롭고 아름답고 순박한 이 곳이 아주 맘에 듭니다. 이런 첫 봄이면 심심찮게 농부님들이 오가고 누렁소 아가도 왔다갔다 하고 오늘은 송아지가 어디로 갔나? 하늘이 날 쳐다보고 나도 심심하면 하늘 한번 쳐다보고 꽃나무도 나와 같이 꽃잎을 견주고 나와 같이 꽃잎을 바람결에 띄우고... 그냥저냥 유유자적하며 살아갑니다. 오늘은 심심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조금 있으면 송아지도 이 곳을 지나갈겁니다. 그 놈은 언제나 엄마소를 찾으러 이 길을 부리나케 달려가니까요. 나를 발로 뚝차고 지나갈때도 있습니다. 그럼 저는 "그 놈, 참!" 하고 웃어줍니다. 전 오늘 새벽에도 일찍 일어나 이슬을 한 숟가락 먹었습니다. 아까는 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빗겨주고 갔습니다. 전 더 이상 욕심이 없습니다. 시내 도로가에 자리잡지 않고 산골에서 태어나서 정말 다행입니다. 먼친척이 도시에 살고 있는데 삭막해서 죽을맛이라며 며칠전 비바람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하늘도 맘껏보고 물도 실컷마시고 공기도 달작지근하고 산골 풍경은 자연스럽고... 전 그래서 행복합니다. 이제 그만 떠들어야겠습니다. 많이 떠들었나봅니다. 목이 마릅니다. 저는 이름모를 들꽃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