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른 올라탄 엘리베이터에서 한 여자를 만난다.
아침부터 저런 차림으로 어디를 가는걸까?
진하지 않은 화장을 하고, 허리단이 조금은 버거운듯 했지만
내가 밀리는 차량의 틈새를 빠져나가 분주한 걸음으로 사무실로 향하고 있을때
그러고 보니 어제 저녁 퇴근길에도 엘리베이터에서 그녀를 만났던 것 같다.
누구나 삶에 정해진 목표지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가끔씩은 정겨운 이웃들을 오라 하여 스스럼없이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누고픈 충동이 인다.
그녀들의 조금은 느긋한 오전의 여유로움이 아주 많이 부러울때가 있다.
눈부신 아침햇살을 마주하고 앉아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다 보며
언젠가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분명하진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소리는 위로 올라가는 특성이 있다고 하여서인지
전에 없었던 소음이기에 내심 그 집에서 나는 소리인가 짐작은 갔지만
그런데 어제 저녁때 드디어 그녀를 만날 기회가 생긴 것이다.
아파트라는 곳은 공동의 생활공간이기에 문닫고 들어오면 내 집이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이집이나 저집이나 사는게 다 거기서 거기이니
한 라인에서 살고 있으니 나는 인사라도 건네려 하였더니
다들 저 살기 바빠서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가질 여유도 없이 살아지고 있는 듯한 느낌 ...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조금만 서로에게 친절하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걸까?
무관심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는 말이 실감날 만치 무표정한 이웃들을 마주대하면
내가 먼저 손 내밀어 차 한잔 하러 오시라고...
아니 내게는 그럴만큼의 시간적인 여유가 허락되어 있지 않다고 해야 옳은 말일까?
바쁘게만 돌아가는 세상속에서 가깝고도 먼 이웃이 문열면 거기 그렇게
나도 그녀들의 그런 평범한 일상을 함께 나누며 가끔씩은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도 나누고,
바쁘다는 이유로 나만 생각하고 주위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살아지고 있는 건 아닌지
허둥지둥 엘리베이터의 내려가는 버튼을 눌러 놓고는 재빨리 현관문을 잠근다.
부시시한 머리칼을 한 그녀는
집에서 입던 티셔츠와 꽃무늬 쫄바지에 맨발의 슬리퍼 차림이다.
잠깐동안의 스침에서도 난 궁금증을 감출수가 없었다.
정장이라고 차려입고 핸드백 든 내모습을 흘낏 거울속에 비쳐 보며
그래도 가야할 곳이 있다는 것과,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에 애써 자긍심을 가져 본다.
그녀는 어디에선가 모여 이웃들과 소탈한 웃음 웃으며 느긋한 차 한잔을 즐기고 있을지도 몰랐다.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다른 층에 사는 이웃집에 놀러라도 가는건지
내가 아는 이와 함께 내렸다.
지금보다 조금 느린 걸음으로 살아간다고 하여 당장 큰일날일도 아닐텐데...
나는 어찌하여 매일 바쁘다는 말만 하며 어디론가를 향해 내달리고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집에서 입는 편안한 홈웨어면 어떻고, 맨발이면 또 어떤가
그저 언제든 찾아가면 반겨줄 이웃이 있다는 건 참 흐믓한 일일 것만 같다.
가는 봄을 그대로 느껴보아도 좋을 것이며,
집안의 짜투리 공간 어느 한 곳에 나만의 자리를 마련하여 두고
생각나는데로 써 내려간 편지글을 가끔씩은 누구에겐가 주고도 싶다.
지독히도 싸우는 소리, 아이들 우는 소리로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연상되는
소음이 간간이 들려온 적이 있다.
얼마전에 새로 이사온 아래층에 누가 사는지 궁금했는데
아침에 나가 저녁이면 들어오는 생활을 하는 나는
한번도 아래층 여자를 만날 기회가 없었다.
정확하지는 않았으니 인터폰을 해서 조용히 해 달라는 말을 하기도 그래서
내내 참고 있었다.
내가 사는 6층을 누르고 엘리베이터에 있을 때 3층에서 탄 그녀가 5층을 누른다.
우리 아이들보다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바로 우리의 아래층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순간 나는 전혀 그렇게 지독한 싸움을 할것 같지도 않은 고운 얼굴의 그녀를 보면서
정말 저 집에서 난 소음이 맞는걸까?를 생각했다.
마음껏 소리를 지를수도, 자신이 하고 싶은만큼 소음을 내는 일도
많이 자제하고 살아야할 공간인 것 같다.
서로 이해하고 넘어가야할 부분이 너무 많은 듯 하다.
전혀 아는 체도 않고 내려버리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자못 씁쓸함이 베어 나왔다.
그것은 마음에 황량한 한 줄기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뭔가 아주 많은 할말을 남긴 사람처럼 주저거린다
우리집에 놀러 한번 오시라고...
말한마디 건넬 수 있는 마음의 여유로움이 참 아쉽다.
늘 그만큼의 거리를 유지하고 서 있다는 사실이 가슴아플때가 있다.
남편의 흉도 좀 보는 둥글둥글한 아낙으로 살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따라 자꾸만 뒤돌아 보아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