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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시간 만들기!


BY 도가도 2002-04-23

지난 일요일은 시어머님의 제사였습니다.
다른 제사에는 잘 오지 않는 남편이 이번 어머니제사에는 다니러 왔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제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월요일 출근을 위해 그들의 집으로 떠났습니다.
남편은 화요일에 갈 것이라 했습니다.
그럼, 고추심는 것 좀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제는 10평쯤 되는 텃밭에 검은 비닐을 씌우고,
고추를 심고, 물을 주고, 각각 4그루씩 되는 가지,오이,참외도
구석진 곳에 심었습니다.
텃밭을 어린묘종으로 채워가며, 우리는 담소도 나누고,
웃음도 나누고, 어린 딸의 수다도 들었습니다.
오토바이로 그와 섬진강데이트를 즐겼을 때처럼 행복감이 충만한
하루였습니다.
바로 옆 논에서 못자리를 채우던 이웃언니의 참 보기 좋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소꼽장난 하는 것 같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우리부부의 모습이 보기 좋다는 소리는
결혼 8년차에 들어가는 나에게는 첨 듣는 소리였습니다.

하늘이 흐렸습니다.
비가 올 것 처럼..
그는 낼 비옴, 낼모레 가야한다고 걱정을 하였습니다.
난 그가 하루 더 머물렀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일로든, 무엇이든간에 가야하는 사람을 붙잡고 싶은 맘은 없습니다.
갈 사람은 얼른 보내버려야 내 맘이 볶이지 않고 편합니다.
가려고 맘먹는 사람을 조바심 내가며 하루만,한나절만,한시간만 하며
붙잡으려는 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갈 사람은 내가 먼저 귀찮아서 보내는 것처럼, 얼른 가라고 해야
덜 고통스럽습니다.
미래가 불투명한 나는 어제의 행복이 더없이 소중합니다.
그래서 더 행복감에 충실했던 하루였습니다.

오늘 오후 그는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같이 있던 2박3일동안 이혼에 대한 아무말이 없던 그가 전화가 왔습니다.
서류준비 빨리해서 수속 밟자고..
난 농담처럼 당신과 이혼하면 차후 내가 살아감에 있어,
그것이 사회생활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고 웃으며 밝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반드시 재결합을 할 것이란 다짐이 확고한지 제 말에 대한
답을 웃음으로 대신합니다.
나는 더이상 반박하기가 귀찮습니다.

그래요, 형식적인 이혼이기에 그는 박복한 생활비를 여전히 보낼 것입니다.
가끔씩 제 처자식을 보기위해 이번처럼 올것입니다.
그러면 된 것이지요.
뭘 더 바랄까요.
서류상의 이혼이 제 실생활에 어떤 경유로 상처로 다가올지는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살아온 질퍽한 제 이력에 그 정도 견뎌내지 못할까 사뭇 담담하기만 합니다.

그와 같이 있었던 기분좋은 기억을 나는 텃밭을 보며 상기해 낼 것입니다.
그와 같이 잇었던 추억을 되살리며 나는 고추를 정성들여 키울 것입니다.
그는 고춧대를 세울 때 즈음, 또 온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정녕 어리석은 사람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