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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동안 외로워져서.


BY 雪里 2002-04-19


며칠동안 몸살에 시달렸더니
눈두덩이 한없이 뒤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고
몰아서 쉬어지는 한숨의 횟수가 잦다.

걸음걸이까지도 가끔씩 허벙다리 딛는 것처럼 휘청거려지고
뱃가죽이 등가죽과 맞붙어 가는데도 도무지 먹고 싶은게 없고
억지로 밀어 넣어보는 물에 잠긴 밥알갱이가
입안에서 모래섞인 알곡처럼
따로 돌아 다니며 목구멍을 넘어가려 하지 않는다.

"억지로라도 많이 먹어!"

어른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남편까지도 이소리를 입에 달고 있다.

"자기는 음식을 억지로 먹기가 쉬운줄 알아요?
뭐하나 사다 주지도 않으면서 그저 억지로 밥이나 먹으라지."

왜 웃는지 모르는 웃음을 남편은 또 웃는다.

남은 기운 없어 죽겠는데 웃음으로 모든거 넘겨 버리는 것 같은 남편이 밉고, 못생긴 눈을 적당히 꼬부라 부치고 볼옆에 기다랗게 주름을 잡아가며 웃는,
평상시는 화회탈 같아 정있어 보이던 그이의 웃음도
오늘은 영 아니다.

속알머리 주변머리 모두 없이 훌렁 벗어진 대머리가 오늘따라 더 반짝거리면서 내 눈을 거슬리고
소매단추도 잠그지 않고 입고 앉아 있는 그이의 옷 매무새에도 눈길이 곱게 지나치지 않는다.

온통 눈길마다 낚시 걸어 놓고 챔질 기회 노리는 마누라를 알아버리고
창고 짓는거 알아 보고 온다며 문열고 나가 버리는 그이.
그럴땐 늘보도 한눈치 하는게 신기해서 쳐다본다.

시비 받아 줄 사람도 없이 혼자가 되니 공연한 쓸쓸함.

돋보기 찾아 코에 걸고 작은 휴대폰자판을 눌러 본다.

"뭐하니? 궁금해서....."

아들 전화번호 누르고 확인을 누르니 편지봉투가 날아간다.
좋은 세상이지, 참.

"왜요 엄마?"
"그냥 궁금해서 했어. 밥은 잘 먹고 다니니?"
"이번주엔 갈께요. 가서 봐요. 그럼."
"언제 올건데?... 응?..."

나혼자 중얼대고 있었다.
이미 큰아들은 전화기를 접어버렸나본데 말이다.
그렇다고 중요한 일도 없으면서 다시 전화를 걸수도 없는 일이고
언제쯤 내려 온다고 한마디 더하고 끊으면 탈나남!!!!

야속한 작은 아들놈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떠난지 여섯달째 접어 드는데 다음달이면 나온다고 했는데...
자주 보내던 멜조차 끊은 어미의 화난 표현에 저마저 멜을 안보내고
있는 그 놈이 겉으론 미워 죽겠는데 맘 한쪽 구석엔 그애 얼굴이 자꾸 보고싶어 지면서 그저,
"야속한 놈 오기만 해봐라."

길건너 튀김집을 구경한다.
다음달이 오기전에 세상구경 시킬듯한 아기를 품은 채로
젊은 엄마는 잠시도 입을 쉬게 하지 않는다.
턱괴고 보는 내맘까지 배가 부르도록 튀김닭을 먹는 모습이 푸짐하다.
년년생으로 한놈 손잡고 한놈은 만삭이 되어 길바닥에서 풀빵을 먹던 그옛날의 내모습도 저러 했으리라.
내게도 저런 모습의 시절이 있었는데...

별스럽게도 지금 나는 혼자 외로워하고 있었다.
무턱대고 웃어대는 그이도 안보이고
길다랗게 두줄로 붙어있는 천정의 형광등불빛까지 서로 밝기가 맞지 않아서 자꾸 쳐다보니 마음이 짠하고,
벌써 날 떠나가 있는 아들들이 나를 잊고 있는것도 같고...

결국엔 누구나 혼자인건데 아직 한번도 나혼자 떼어놓아 보지 못했던 내가 어리석었다고 생각한다.
혼자 일때의 시간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었는데...

결혼해서 그많은 시간동안 나혼자는 없었던거다.
차라리 통재로 나를 아주 없앴던거지.

배달되어온 쓰디쓴 커피에 설탕 한스푼을 추가해서 저으며
수십년의 긴 시간이 이만큼이라도 나를 지켜 준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아직은 내게 아주 조금의 감성이라도 남아 있는것 같으니까.
아주 늦어버린것 같은 생각은 안들거든.

무엇을 하기위한 시간인지는 나도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