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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늉6] 엄마, 엄마, 울 엄마!!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정채봉>


BY ylovej3 2001-04-09

언양 신불산 입구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입니다. 제가 직접 찍은 건 아니구요. 2001. 4. 5. [숭늉6] 엄마, 엄마, 울 엄마!!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정채봉>

"엄마, 나 많이 아파. 우울증이라는데.... 엄마가 오셔야 나을 것 같아요"
문득, 엄마가 보고 싶어 둘러댄 말이다.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딸의 낮은 목소리만으로도 마음 쓰였을 엄마에게 '아프다'는 말까지 했으니.... 자식들 '아프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울 엄마..그 다음 날로 한 걸음에 올라오셨다.

"대전은 멀다, 누가 아픈 것도 아닌데 힘들어서 못 간다, 제사도 며칠 안 남았다...."
이 핑계 저 핑계로 올라오시길 꺼려하셨는데, 나의 '아프다'는 말 한마디가 엄마 심장을 얼마나 두근거리게 했으면 한 걸음에 오셨을까?
생각하니, 난 참 나쁜 딸년이다.
엄마 말씀대로 '보고 싶으면 지가 내려오면 되지, 앉아서 늙은 엄마 오라 가라 한다'는 꾸중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역에 마중 나간 딸의 얼굴이 환하니 웃음꽃을 피우는 걸 보며 엄마는 한마디 툭 던지신다.
"나쁜 년, 엄마 놀래서 죽는 거 볼라카나?"
히죽히죽 웃는 딸과 사위와 손주들의 함박 웃음 앞에 마음 약한 엄마는 덩달아 흥겨워지고 만다.

나는 가끔, 엄마가 요술쟁이가 아닐까 하는 어린애 같은 생각을 한다.
우리가 사는 집도 그대로고, 식구도 그대로고, 쓰는 물건도 다 그대로인데 엄마만 오시면 모든 게 바뀐다.
집안이 무언가로 넘쳐나고, 색다른 냄새가 가득하며, 몸 속으로 들어가는 공기도 달라진다.
나와 아이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집안이 소란스러워진다. 기분 좋은 소란스러움이다.
무조건 자기편인 할머니가 있어 아이들의 기세도 등등하고, '내 사위, 내 사위'하는 장모가 있어 남편의 어깨도 으쓱 올라간다.
딸인 나는 하루에도 열 두번 '효녀'가 되었다가 '나쁜 년'이 되었다가 한다. 그만큼 엄마 맘에 들었다 안들었다 하는 게다. 그래도 눈치없는 딸은 그저 좋아서 '엄마, 엄마'만 불러댄다.

"니도 시집가서 애 낳아보면 엄마 맘 알거다"시던 말씀을 귓등으로 들었던 때가 엊그제인데 어느 새 내가 아이 둘의 엄마가 되어 있다.
하지만, 나를 '엄마'라 부르는 두 아이 앞에서 나 역시 '엄마, 엄마'를 애타게 찾는 철부지 엄마다. '엄마 맘'을 헤아리지 못하는 늘 모자라는 엄마다.
엄마가 집에 오시면, 아이 둘을 키우며 '힘들다'는 말을 해대던 나의 가벼움이 쏘옥 들어가고 만다.
칠 남매를 건강하게 키워 시집, 장가 다 보낸 엄마 앞에서는 그야말로 '번데기 앞에 주름잡는 것'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어느새 백발이 성성한 엄마는 지난 겨울보다 많이 늙으셨다.
칠순이 넘으셔도 쩌렁쩌렁한 목소리 하나 믿고 '울 엄마 아직 젊다'는 말을 남발했는데 이번에 자세히 보니 그게 아니었다.
딸년 살림해 놓은 게 맘에 안든다며 이것 저것 다 끄집어 내시면서도 쉽사리 정리를 못하고 쉬엄쉬엄 시간만 끌고 계셨다.
'엄마가 해 준 잡채가 먹고 싶다' 졸라대는 딸을 위해 음식을 하면서도 몇 번이나 식탁의자에 걸터앉았다 섰다를 반복하셨다.
곁에서 엄마를 돕던 나는, 엄마의 이런 모습에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아 자꾸만 젖어드는 눈시울을 몰래 훔쳐내기 바쁘다.
여자대장부라 불렸던 그 호탕함과 꼿꼿한 허리는 다 어딜가고 ...... 그 누구도 세월을 비껴가지 못한다지만 울 엄마는 예외이길 바라고 또 바랐었는데....

엄마는 딱 열흘을 계시다가 부산 집으로 내려 가셨다.
할아버지 제사가 있어서 어떤 이유로도 엄마를 더 이상 붙잡을 수는 없었다.
'엄마가 오시기만 하면 맛있는 것도 해 드리고, 좋은 곳 구경 시켜드리고, 내의라도 한 벌 사 드려야지' 하는 맘인데, 막상 엄마가 오시면 아무 것도 해 드리는 게 없다. 오히려 엄마를 귀찮게만 한다. 그러다 내려가시면 이내 후회를 하고 안타까워하고......
엄마 말씀처럼 난 정말 나쁜 딸년인가 보다.

기차역에서 엄마를 배웅하고도 떠나간 기차가 야속해 발걸음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니, 그 잠깐 사이 모든 게 변해 있었다. 아니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엄마의 냄새, 엄마의 웃음소리, 엄마의 품을 느끼려 애써 보지만 소용이 없다.
되려 온 몸에 한기(寒氣)만 으스스 덮쳐온다.
길다면 긴 열흘이고, 영영 이별도 아닌데 좀체 마음이 놓이질 않는 건 왜일까?
"엄마, 엄마" 부르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실 것만 같아 낮게 불러 보지만 엄마는 대답이 없고, 난 멍하니 서서 휑한 가슴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쓸어 내린다.

나에게 있어 '엄마'는 그 이름만으로도,
그냥 보고 싶어지고
문득 눈물나게 하고
무심코 불러보게 한다.

2001. 4. 9.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이 먹고 싶은 생일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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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정채봉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 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내어 불러보고
숨겨 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