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저는 맏며느리예요.
모두들 제가 맏며느리라고 하면 제 생김생김을 보고 "푸하하" 웃어 버려요. 워낙 쬐끔하고 아기같이 생겨서 결혼했다고 해
도 놀라는데 맏며느리라고까지 하면 놀라는걸 넘어서 웃고 말죠. 분명 그 웃음속엔 "니가 맏며느리 노릇을 할 수나 있다고?"
의 놀림이 섞여있는 것이 분명해요.
그런데 어쩌죠?
전 그냥 둘째집의 맏며느리나, 셋째집의 맏며느리가 아니라 큰 집에 큰 집에 큰 집, 그러니까 고조할아버지도 큰 아들이었
고, 증조할아버지도 큰 아들이었고, 그냥할아버지도 큰 아들이었고, 아버지도 큰 아들인 그런 큰 집의 큰 아들인 신랑과 결혼한 큰 며느리예요.
여기까지 얘기하면 사람들은 이제 웃는 것을 멈추고 심각하게 절 쳐다봐요.
"그거 못할 노릇이라는데, 너가, 겨우 너가 그 노릇을 할 수나 있겠어?" 이 말을 목까지 참은채 말이죠.
그러나 어쩌겠어요? 그렇게 걱정하셔도 전 벌써 맏며느린데요.
사실 정말 걱정했던 건 우리 친정엄마죠.
집에서 설거지하라면 요리조리 잘도 피해다니고, 밥솥으로 밥도 못 짓는 애가 무슨 염치로 맏며느리 자리에 들어간다는 거냐, 시어른 모시는게 뭐 장난인줄 아냐, 그 많은 제사는 어찌 모실거냐, 시할머니도 계시다는데 그 분께 효도는 어찌 할 거냐...
걱정이 뭐 이만저만이 아녔죠.
걱정하신건 우리 시어머니도 마찬가지셨을거예요. 저를 첨 보고 신랑에게 했던 말이 "왜 저렇게 쪼끔하냐?"고 했다니까요.
그런데요, 정작 걱정이 없었던 것은 저예요.
철이 없었던 거죠. 살림을 해 본적이 없으니 살림 어려운 줄 모르는 것은 뻔하고 친척분들은 모두 강원도에 계시니 그 분들 어려운 줄도 모르고 결혼 전부터 시부모님이 예쁘다, 예쁘다만 해 주시니 진짜 예뻐서 그러는 줄 알고 홀라당 결혼해 버렸거든요.
그렇게 철이 없으니 어머니께서도 제가 무슨 맏며느리로 보이시겠어요? 그냥 딸 없는 집 막내 딸 하나 생겼다 여기셨는
지 아무것도 안 시키시더라구요.
첨에 전 시부모님이 좋아서 같이 살겠다고 하니 "얘,얘 쪼끔한 집에 같이 살면 정신만 없다, 나가 살아라." 하셔서
나가 살았더니 이 번엔 음식 만들 때 지어먹으라고 매번 약수물을 떠다 주시고 결혼 전엔 김치는 김장때나 해 주시겠다
더니 멸치볶음, 호박나물, 카레, 해장국, 뱅어포, 장조림 뭐뭐 할 것 없이 반찬이란 반찬은 시도 때도 없이 날라 주시더니
김치는 김치통에 반도 더 남았는데 또 주시고 또 주시고 그러시는 거예요.
어머니들, 큰 아들 분가하면 시도때도 들이닥쳐서 왈가불가 잔소리하시느라고 바쁘시다는데 저희 어머니는 집이 차타고 5분 거리일만큼 가까운데도 한 달에 한 번도 잘 안오시고 어쩌다 오시더라도 빨리 가셔야 한다고 성화세요.
그렇다고 어머님 성격이 워낙 조용하시고 착하시고 자식들 하는데로 내버려 두시는 성격이면 그러신가 보다 할텐데, 어머님은 장군님이시거든요. 친구분들 사이에서도 이름 난 터프가이(?)시고 감각이 뛰어나셔서 운동이면 운동, 운전이면 운전 못하는게 없으시고 싸워서 진 적이 없으시며 아직도 도련님은 이 세상에서 젤 무서운 사람이 엄마라고 할 정도이면 어떤 분이신지 상상이 가시죠?
그러니 신랑도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며 놀라워 해요.
결혼 전에 저한테 수도 없이 그랬거든요. 결혼해서 매일 혼만 날테니 지금 잘해준다고 까불지 말라고요.
그렇지만 어머니는 결혼해서도 잘 해주셨고 제가 정말 맏며느린지 딸인지 구분 안가게 해주셨죠.
2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