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 삶의 이야기
오래된 이발관
재개발지역이라고 쓴 커다란 글자체는 한강을 건네오기 전에도 신경만 쓰면 세상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도록 커다랗게 쓰여져 있었던 것이 5-6년은 되었을까?
자꾸 바라보게 되니 식상해 버려서 흉물스런 장식품처럼 되어 있어서 늘 그러겠지 하였는데,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고 하셨던가, 세월은 그렇게 늘 한자리에서 머무는 듯 보여도 그렇지 않음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내가 늘 아끼며 웃으며 보고 다니던 60년대 초반쯤엔 제법 돈푼께나 들였음직한 시멘트로 단단히 지은 2층짜리 건물 1층에 간판없는 뒷동네 이발소가 그렇게 초라하고 흉물스럽게 부서져 있을때까지 재개발 지역 그땅에 구사대가 들어왔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거기엔 공지영 소설 "인간에 대한 예의"에서 나옴직한 소설의 주인공이 살고 있을법한
산꼭대기집에다 작은 꽃밭엔 맨드라미 채송화, 국화 꽃들이 피어나고 머리가 희고 단정한 노마님은 시멘트 담위나 낮은 지붕위에 호박 썰은 것을 햇빛에 말리는지 지나치는 길에 가끔 눈에 띄었으므로 그 깔끔한 집안의 찬장엔 오래 사용하여 반질반질 윤이 났으나 서로 짝이 맞이 않은 찻잔이 여러개 있을 법하고, 마루는 걸레질과 세월에 진갈색으로 빛나 있을 것 같아서 오가며 한번쯤 일부러 들어가 보고 싶은 집도 있었고...
담을 넘어서 하염없는 눈길로 바깥을 바라보고 있는 접시꽃과 해바라기도 있었고.
초봄이면 앵두가 빨갛게 익어 있기도 했고 ..흰눈송이처럼 겹으로 피어 숭얼숭얼 핀 박태기꽃도 볼 수 있었는데.
사람들과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을 중심으로 왼쪽은 그렇게 허물어지고 깨지고 찢어진 채 봄이 왔고 오른쪽은 여전히 붉은 벽돌들로 정비한 벽속에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나는 늘 남의 동네인 그 가운데 길을 걸어 집으로 오고 일터로 나간다.
뻥새가 다니던 어린이 집도 헐어지고 부서진 재개발지역 딱지가 붙은 그 길을 거쳐 지나치곤 했는데, 어느날 머리가 너무 길어서 간판도 없는 이발소에 들어가서 나는 자꾸 벙긋 벙긋 웃고 말았다.
이발소 옆은 남자중학교 후문이였으므로 구사대가 그 집 베니어판 문짝을 ?센爭뺐?연탄통을 부술 때까지 ?아오는 단골들에게 이발을 할 수 있었겠지만.
소망했거니와 나는 그 이발소만 그대로 남아있기를 얼마나 기원하였던가..
지금은 기억에서 사라진 왕년의 배우 문희가 푸른 청춘이였을때의 사진이 벽에 붙어있었고,
장미희의 눈서린 요염함등 그렇게 서너개의 사진이 세월과 함께 노르끼하게 변색되어서도 여전히 웃는 모습으로 벽장식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마 이발소 주인이 푸른 청춘이였을 때 가슴 두근거리게 했을 한시대의 사람들이겠지. 아들은 어른의 의자 팔걸이에 나무 판자를 놓고 그 위에 앉아 가위로 싹둑싹둑 제머리가 잘려지는 것을 내 맡기고 그 작은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며 주위의 환경을 못미더워 했다.고개를 갸웃거리며. 지 에미가 자주 가지도 않지만 엄마를 따라 다니던 미장원하고는 너무나 다른 환경의 이발관.
연탄통 위에 올려져 있던 비누거품통의 동그란 솔을 몇번 치대자 하얀 비누거품이 부옇게 올라오고 , 그 거품을 잔잔하게 일어 아이의 머리가장자리에 쓱 바르고 이발관 주인은 아이가 앉아 있는 자리에 매어있던 길다란 가죽을 들어 면도하는 길다란 칼을 갈았다.
연탄통 위에 올려진 작은 양철 바케스에서 자글거리며 끓고 있는 물.
오래되어 뒷면이 드러나 윗부분에서 빗물내리듯 세로로 줄 그어지듯 내려온 대형거울 세장,
말린 수건을 잘 개서 담은 거울모퉁이에 걸린 주황빛 수건통. 금성표가 붙은 흑백tv.
텔레비젼 앞엔 놓인 짚이 들어 있을 것같은 느낌의 오래된 간이의자. 이발비 3천원...아이의 키가 작아서 의자위에 두터운 방석을 깔고 아이는 머리를 앞으로 숙이고 이발소 주인은 연탄위에서 끓고 있던 뜨거운 물과 차거운 물을 꽃밭에 물주는 반되짜리 물조루에 담아 비누칠을 한 아이머리를 감겨주고 있었다.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나오는 마지막 장면과 같은 기분과 느낌을 지울 수 없어 나는 눈물을
글썽이며 그 장면을 머리속에 찍어 두었다.
실제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 수 없으나 내 기억에 찍힌 사진 한 장이 있다.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를 따라 갔을까? 시골에선 미장원도 드물었으니까.
아이가 앉은 의자 위에 올라앉아 단발머리를 자른 기억이 하나 있다.
눈썹 위로 머리를 반듯하게 자르고 귀밑으로 반듯이 잘랐던 머리를 이발관에서 잘랐을 때 보고는 딴 나라 사람인 듯 살아왔는데... 그날 어린 아들의 머리를 자르러 들어간 간판없는 이발소에서 나는 내가 지나쳐온 기억의 장소를 만났던 것이다.
그리고 한동안 남편도 그 이발관에서 머리를 잘랐다. 아이들의 친구 아빠도 그 이발소 단골인 것을 알았고, 우리동네 나이든 어른들 다 그 이발소 단골인 것을 알았다.
그 흔패빠진 드라이기 하나 없고 가위 서너개 , 면도칼 서너개뿐이던 간간히 어른들이 놀러도 다니던 그 추억의 자리, 우리 조용히 살아온 내력을 간직하고 있던 눈물젖은 자리의
이발소가 무참히 부셔진 것을 발견한 겨울 끝자락.
초등학교의 조그만 나무의자에 앉아 늘 신문을 보던
그 자리에서 젊음을 보내고 환갑을 맞이할 정도의 나이가 된
그 성실하고 우직하던 그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2001.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