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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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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아줌마가 느끼는 좌절감.


BY 초보아줌마 2000-11-01

임신 8개월의 뒤뚱거리는 몸으로 회식자리에 갔더니.
앞에 앉은 이사가 내 옆의 아가씨가 이번달 실적이 우수하다고 칭찬을 해대길래, 기특하다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까지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어지는 술자리에서는 스타크래프트를 모르면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내용의 열변이 스타크 초보3개월짜리 입에서 나오기 시작한다.
갑자가 그 초보가 나를 보더니, 아줌만 모르지? 결혼하더니 완전 노땅 다됐다는 듯이 불쌍한 듯한 시선과 어조로 나한테 말하기 시작했다.
이인간 원래 좀 기분나쁘게 굴더니만, 갑자기 저기압으로 떨어졌다.
저쪽에선 술취한 아저씨 하나가 어린 애 하나 울리고 있고.
기분이 완전히 나빠져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갑자기 스타크초보의 말이 가슴을 찌른다.
요즘의 내 관심은 오로지 태교와 육아에만 쏠려 있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도통 모르고 있다.
집에 들어와보니 신랑은 어제 회식이라 늦게 잤다고 뻗어있는데, 방안에는 온갖 쓰레기가 널려있고, 빨래가 여기저기 걸려있고, 세탁기 앞에는 빨래감이 쌓여있고.
그래도 밥챙겨먹고 설겆이는 잘 해 놨네 싶으니까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더니, 작은 방을 열어보니, 방 청소까지 잘 해놨네.. 싶으니까 미워했던 마음이 조금 미안해지기도 하고.

직장생활도 적당히 할 뿐이고,
집안일도 적당히,
그래도 언제나 몸은 천근만근이다.
주말마다 시댁가서 노력봉사하는 게 정말정말 싫어진다.
회사에선 나보다 어리고 똑똑하고 시간많은 미스들이 일을 더 잘하기 시작하고.
앞으로 아기가 태어나면 그때부터 진짜 전쟁은 시작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벌써부터 질려버린다.
우울함을 떨칠수가 없다.
기분이 너무 울적해서 밤에 잠도 안자고 1시까지 여성학 책을 뒤적이는데, 암담한 아줌마 현실만이 보일 뿐이었다.
세상모르고 자는 신랑 옆에 비집고 누워자는데, 이게 또 왜이리 불편한지. 그냥 마냥 울고 싶은 심정이다.
아침에 신랑 나가는데 눈도 안뜨고 계속 잤다.
오늘 집에 들어가기도 싫다.
이럴 때는 따뜻한 엄마의 말한마디가 그리운데..
전화통화에서 엄마는, 편찮으신 시어머님 병수발 잘 해주라는 당부만 하시니,, 별로 엄마하고 얘기하고 싶은 기분도 안든다..
이세상에 나하나 뿐인듯한 이 외로움.
이런 나하나 믿고 살고 있는 뱃속의 아가한테 드는 미안함.
지금은 이것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