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렇게 환하게 불 켜진 집들을 보면 괜히 가슴이 이상해져요."
연애 시절, 버스 차창으로 스쳐가는 집들을 보며 지금의 남편이 한 소리였다.
그때 내 나이 30대 중반, 남편은 친구들의 아이가 고등학교 다니는 나이였다. 연애한다고 말하기에도 쑥스러운 나이들인지라 약간 무덤덤하게 만나고 있던 중이었는데 그 말을 들으면서 난 갑자기 남편이 한없이 안쓰러워 보였다.
'이 사람, 참 외롭게 자랐구나.'
마치 내가 아니면 정에 굶주려 쓰러질 것 처럼 난 그 사람 인생을 감싸안고 싶어졌다.
남편의 어머니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전쟁이 나는 바람에 피난을 가면서 공부를 접어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전쟁 직후 하루하루 먹고 살기에도 급급하던 시기에 갓 낳은 지금의 남편을 업고 피난지의 영어 학원 앞을 서성거렸단다. 서울로 올라오자 어머니는 곧바로 공부를 계속했고 직장 생활을 했다고 한다.
집안에는 아이들 밥을 챙겨 줄 사람이 없어서 점심 때면 일곱 살짜리 누나가 네 살된 남동생 손을 잡고 집 근처 아버지 학교로 갔단다. 아버지 수업이 끝날 동안 강의실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기다렸다가 밥 얻어 먹고 다시 타박타박 걸어 집으로 걸어오고...
어머니 없는 집안 분위기에 질렸던 누나는 '스위트 홈! 스위트 홈'을 외쳤다는데 남편 따라 유학 갔다가 예정에 없던 출산으로 공부를 다 마치지 못하자 귀국 후에 미련을 못 버리고 친정에 아이들을 맡기고 공부를 끝냈다. 시간제이긴 하지만 누나 또한 사회 생활을 하면서 집안에 안주하지 못했던 어머니의 욕구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그 사람이 외로웠던 건 어머니가 사회 생활로 집을 자주 비워서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부족한 데 대한 미안함을 어머니는 강한 통제로 대신했다. 순탄하게 진학을 한 누나와 달리 남편은 외아들에 대한 부모들의 기대치, 특히 어머니의 엄청난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의대에 들어갔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휴학과 복학을 거듭한 끝에 결국 다른 학교로 전과를 했다. 어머니는 의사도 교수도 되지 못한 아들을 늘 못마땅해 했고 아들은 그런 어머니가 있는 집이 싫어서 바깥으로 돌다가 밤늦게 귀가하여 컴컴한 이 층 한 쪽에 있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어린 시절, 마당 한구석에서 찌그러진 양은냄비 하나 가지고 혼자서 놀았다는 남편은 커서도 외톨이였고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해있었다. 사회에 대한 관심도 사람들에 대한 애정도 없이 자신만의 세계에 심취해 있었다. 그렇지만 남편은 그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을 지극히 편해 하면서도 그 외로움을 힘겨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난 결혼하고 나서 남편이 올 시간이 되면 밖에서 보이는 집안의 불을 모두 켜 놓았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몇 년만에 보는 것처럼 반색하며 안아주었다. 당해본(?) 적이 없어서인지 남편은 오히려 그런 환대와 스킨쉽을 어색해 했다.
지금은 내가 안아주면 같이 안아주고 웃어준다. 우린 서로에게 '따뜻하고 환한 불 켜진 집'이 되기를 꿈꾸고 있다.
...
에세이방에 처음으로 글을 올리네요. 원래 다른 아이디로 가입을 했는데요. 아이디를 바꾸려면 탈퇴했다가 다시 가입해야한다고 해서 그냥 쓸 때마다 샤프란이란 이름으로 고쳐 쓰기로 했습니다. 샤프란은 서양요리에 자주 쓰이는 샤프란 소스의 재료가 되는 꽃인데요. 꽃 색깔은 보라색이고 꽃을 말린 가루는 붉은 색, 소스로 쓰일 때는 노란 색이 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