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우렇게 뜬 황사가 우리나라 전역을 강타하더니 어느센가 파란
하늘이 자릴 잡았다.파란 하늘아래 노오란 개나리랑 매화꽃, 성숙
한 모습의 목련까지 화사하게 미소를 띄는 봄날이다. 황량하기 그
지없던 산책로에도 파란 쑥들이 자릴 잡고 눈인사를 건넨다. 하루
쯤 날잡아서 바구니 챙겨들고 들판에 쑥뜯으러 나서야 될것 같다.
아침드라마인 [외출]이라는 것에 푹 빠져있다. 한 가정의 변화되
어가는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드라마인데 그 속의 주인공들의
모습은 한결같이 불완전하기만 하다. 배다른 형제와 고아.부모몰래
동거하는 대학생부부들.또 혼자사는 여자..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몰래 낳아서 기르는 미혼모의 생활,나이든 노총각의 겉모습들을 그
드라마에서는 잘 그려내주고 있다.마치 바다에 가면 파도가 일렁이
듯이 파도속으루 말려 들어갔다가 잔잔한 파도가 되면 다시 본래의
자리에 돌아와서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그런 모습들.. 그 드라마
를 보고있으면 한바탕 풍랑이 휘몰아치고 간 느낌을 본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을 보고 있으면 시리도록 아득히 먼 수평선이
자리잡은 바다가 그리울때가 있다. 물론 바닷가에 살때에는 무작정
휭 달려서 바다에 찾아가면 되었는데 여기서는 그게 어렵다.바다가
아닌 푸른 저수지라도 근방에 있었으면 그곳을 찾아서 그곳 물가에
앉아 공상에 젖는 즐거움을 누릴텐데 내가좋아하는 [물] 하고는 거
리가 있는 도시에 살고 있다. 가끔 답답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을 위
한답시고 남편까지 홀로 내버려두고 따로살림하는 처지에 불평불만
이란걸 내 세울수가 없다. 그져 묵묵히 주어진 자리에서 묵묵부답
만족해하는 수 밖에. 나는 바다보다 강을 더 좋아한다.어릴때 부터
강변에서 살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강은 소리없이 잔잔하게 흘러
간다. 언제나 제모습 그대로 이고 제자리를 지키고있다. 항상 변함
없는 강의 잔물결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끝없는 평화로움에 젖
어들게 된다. 그렇게 쳐다만 봐도 가슴속에 시름을 강물이 다 흡수
해가는것 처럼 개운해진다.그 잔잔한 물비늘의 변화를 쳐다보고 있
으면 그게 바로 평화로움이 아닌가.내가 마음이 변덕스럽게 움직일
때엔 바람따라 움직이는 물비늘들에 초점을 맞추다보면 어느새 그
깊은 강물에 나를 던져버리게 된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강변에
있는 자갈돌 몇개를 던지다 보면 가뿐해지는 느낌들,
그렇게 나를 비워낸다. 그리고 다시 나를 생각한다.
언젠가 한 친구의 낚시터에 따라간 적이 있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낚시라는걸 해본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물가를 찾
다보니 낚시하는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친구는 낚시를 하고 나는 곁
에서 잔잔한 수면의 변화를 감상하고 있었다. 그곳온 바다끝에 자리
잡은 작은 수로였는데 갈대들이 많이 자릴잡고 있었다. 그 갈대들이
바람이 불면 오른쪽으로 또 뒤로불면 왼쪽으로 움직이는데 그 바로
옆에 물비늘들이 갈대의 방향에 따라서 함께 춤을 추는 것이다.하늘
도 눈부시게 파란데 자연의 숨소리에 맞추어서 소리없이 장단맞추어
춤추는 물비늘을 보고 있는데 왜 그렇게 가슴이 시리도록 뭉클한 감
동을 안겨주는지..비발디의 사계속에 나오는 음악들이 바로 저런 풍
경을 배경으로 작곡하지 않았을까 .갓 태어난 아가의 눈동자를 보고
있을때가 가장 평화롭다고 했는데 그때의 그 물비늘의 잔잔한 감동
은 두고두고 내 뇌리속에 자릴잡아 떠나지 않는다.이런저런 일로 머
리가 복잡하다고 느껴질때 그 낚시터에가서 물비늘을 잠시라도 볼수
있었으면 머리가 맑아질것 같다는 느낌까지 갖는데 그 이후 기회를
잡지 못했다. 강태공들이 물속에 붕어만 낚는게 아니라 호수속의 물
결들을 바라보면서 시름을 잊는다는 말..이 그제서야 이해가 갔다.
아침부터 작은놈이랑 한판 힘겨루기를 하였다.
워낙 교과서 같은 놈이라 책대로 설명이 되지 않으면 질문이 꼬리
를 물고 그게 자기 머리속으로 이해를 해야지만 만족하는 성격이라
어쩔수 없이 형한테 혼나고 엄마한테까지 혼쭐을 당하고 찔찔울면서
학교엘 갔다. 저런 고집통은 아빠씨 아니랠까봐서 하는 모양이 아빠
랑 아주 붕어빵이다. 우리집 대장님(이 사람은 호칭도 자주 바뀐다)
의 성격이 그래서 그거 맞추느라 십여년을 양보를 하고 살아 왔는데
작은놈이 머리가 좀 굵어졌다고 자기주장을 관철시키는데 이쯤에 와
서의 엄마의 자리가 머리가 애를 따라주나..힘이 따라주나..결국 목
소리로 기선제압하는 일.것도 안되면 회초리 드는일뿐이다.뒤돌아서
생각해보면 아이의 말이 맞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런 사실을 엄마가
만물박사도 아닌 담에야 하나하나 설명해줄 수가 없다. 아침에 바쁜
데 그런 자잘한 일루다가 아이한테 관심을 보여줄 정도로 다정다감
하지 못한 엄마가 문제인데 아이만 혼내킴 당하고 눈물 징징 거리면
서 학교로 가는 뒷모습이 영 안되 보였다.
아무도 없는 텅빈 집에 콕...쳐박혀서 씨디를 올려둔다.
물소리가 들려오는 음악을 들으면서 복잡한 머리를 식힌다.나는
새소리 물소리가 참 좋다. 산에 올라가면 보이지 않는 바람을 타고
살랑거리는 나뭇잎소리를 들으면 아..이게 살아가는 즐거움이 아닐
까 그 위대한 자연에 감사해 한다. 찡그리고 화내고 그런 시간보다
웃는 연습을 하자고 내 마음을 내가 다져보지만 인간이라는 이름을
빌미로 찡그리고 화내고 상대를 비난하고서는 후회를 한다. 음악소
리가 너무 좋다. 아침의 우울했던 기분도 사악 날려보낸다.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들과 즐거운 하루이기를 빌어준다. 그런데 역시 아이
들이란 돌아서면 자신의 행동을 곧잘 잊어버리지만 부모들은 그게
참 오래간다는 것.그리고 후회한다는 것.아직 인격의 수양이 덜 된
탓일까? 아침부터 많이 미안해지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런날에는 강변을 찾아가서 물비늘을 볼 수 있었으면..그런 아
쉬움이 많이 남는 하루이다. 내 가고싶은데 마음대로 갈 수 있다면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다 할 수 있다면 세상에 무슨 바램이 더
있을까? 조금 조금씩 욕심을 비워내는 연습으로 열심히 살아가야지.
갈대와 함께 춤추는 물비늘이 무척 보고픈 마음이다.
어느새 삼월의 시간들도 세월 저편으루 묵묵히 흘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