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건 남방을 우째 입으라 말이고
뻘건 남방이 우째서
하이고 참말로 넘새스러버라 작은 처남 갖다 조삐라
어제 아침 우리집 풍경이다
모처럼 마음먹고 백화점에서 사온 뻘건 남방은
뻘건게 아니고 홍색에 가까운데 색갈도 곱고
면 도 좋아 남편연배에 입는다고 흉물스럽지 않겠건만
촌티 낸답시고 저래 펄펄 뛰고 난리다
아따 마 당신보다 나이 많은 탈렌트 임 모씨도 입었더마
보기만 좋더라꼬
뻘건기 우째서
그라모 내가 시방 탈렌트라도 된다 말이가
바꿔다 주라 이 색갈을 우째 입노
그라모 한번 입어나 보소 입어보고 그때 영 아이다 싶으마
바까다 줄틴께
남편은 마지못한듯 엉거주춤 엉덩이를 빼면서 일어났다
거울앞에서 내내 툴툴거리면서 남방셔츠를 입더니
어머나 세상에 여지껏 입어본 옷 중에서 제일 멋있는기라
그래서 내가 양품점 점원 아가씨들 처럼 입에 침도 안바르고
거짓이 아닌 진실을 얘기 했다
세상에나 세상에나 너무 멋지다 당신 거울 함 봐라
남편도 그냥 남방셔츠를 볼때와 입어보니 뭔가 달라보이던지
겸연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이더니
그 입어보이 좀 괜찮네 참말로 쪽팔리진 않겠제
아이고 당신보고 그 옷이 안어울린다 쿠는 사람 있시모요
그사람 데불고 오소 그것도 눈깔이라고 달고 댕기는지
내가 확인해보거로
이렇게 부산스러운 아침시간을 보내고
그래도 새옷이고 자기가 봐도 괜찮았던지 출근을 했다
저녁무렵 때르릉 우리집 전화가 울리더니
남편의 퍽 고무적이고 이상기후마져 흐르는 듯 한
음색으로
오늘 회식이 있거든 저녁먹고 좀 늦어질랑가 모리것다
기다리지말고 자거라
그리서 알았다고 끊고 대충 차려 저녁을 마치고
텔레비젼 연속극도 보고 연예인 우스개소리도 듣고
이러구러 11시가 넘어가는데 다시 벨 울리는 소리
여보시요
한잔 걸친 음성이다
와그라는데요
내일 뻘건색 말고 다른 색도 사 줄수 있제 예전에 유동근이 입었던
그 잉크색 셔츠도 입을수 있겄다 사실 그 옷 참 좋아뵈던데
내 자신이 쪼매 없었거든 뻘건것도 입는데 그쟈 내일
사줄수 있제
무신 뜬금없는 소리고?
아따 오늘 당신이 사준 이 옷입고 내 스타가 안됐나
10년은 젊게 봐주는건 기본이고 우째 아가씨들이
전부 내 옆에만 앉을라 쿠네 옵빠 옵빠 함시롱
시방 무신 소리하노
그 뻘건 셔츠 길게 입을라모 빨랑 오소마
털커덕
무색만 좋아하는줄 알고 무색옷만 사다줬더니 여지껏
군말 없이 잘입어주던 남편
젊은시절엔 점잖아 보여 좋았는데
나이가 드니 노티 나는것 같아 칼라로 변신시켜
젊게 살라는 뜻으로 선물했더이
한술 더 뜨서 언쟈는 잉크색까지?
속으로 웃음이 쿡쿡 터져나왔다
아침에 정색을 하고 내 안목을 의심하던
남편이 남편말마따나 뻘건남방셔츠 때문에
돈안드는 비행기를 주위에서 태워줬나 보다
그렇기나 말기나
에구 고지식해서 분명 잉크색 사입고 또 좋다고 하면
이번엔 무신색을 사야될꼬
사줘야될까? 아님 말어?
이것이 시방 문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