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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렇게 살아요!


BY 후리지아 2001-04-04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잡아 둘수가 없다하더니만...
잘도 지나가고 있다.
세월을 계산하여 보니, 많이도 흘렀구나...

난 아무것도 한것이 없이 나이만 덩그마니 먹고 있었다.
처음엔 한 십년만 건너뛰고 싶었다.
그래 십년만 지나면 아이들이 다 크니까...
그러나...
세월이 감이 왜이리도 아까운지...

남편보내고 작정을 했다.
육개월만 놀아야지,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하면서...
그랬다. 육개월동안 신물이 나도록 놀았다.
아이들이 학교같다 오면 무조건 끌고 다녔다.
세상에, 고1인 큰딸애랑 중2인 작은딸을...
그때 내겐 아이들이 공부를 해야 한다는 아무런 개념도
서있질 않았다. 어쨌든 우린 쓸쓸했으니까 세모녀가
히히덕 거리면서 쏘다니길 몇개월...

일자리를 구해야 했지만 아무곳에서도 날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에구 이럴줄 알았으면 무슨 기술이라도 하나 배워둘걸.
천년만년 벌어다 주는 돈 가지고 살 줄 알았던 난
땅을치고 후회를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저 현실은 내게 더 커다란 보따리를 줄 뿐이였다.

육개월쯤 지난 뒤...
내사정을 딱하게 여긴분이 자신의 보습학원에 와서
일을 하라는 제의를 받았다.
초등부와, 중등부 국어를...
난감했다. 이일을 어쩌나 자신이 없는데...
제시하는 페이가 꽤나 많은금액이였고, 우리 아이들이
공부도 할 수 있는 좋은조건이였다.

난 드디어 출근을 시작했고, 날마다 공부를 해야했다.
초등부 수학이 왜그리도 어렵던지...
통분이며, 방정식이며...
내가 중학생때 배웠음직한 문제들이 날마다 나를 괴롭혔다.
난 그래도 씩씩하게 움직였다.
예습을 해가야 했으므로, 저녁12시나 되어야 끝나는
학원의 생리를 원망하면서...

아이들도 늘어나고, 어느정도 안정도 ?았고, 노하우도
생기면서 재미을 붙혀갔다.
아줌마 선생님인지라 아이들이 편안해했고, 고민도
털어놓고, 말동무도 되여주고, 상담자도 되여주며...

이게 왠일인가!
2년정도가 지났다. 학원이 다른사람에게 인수가 되면서
난 그곳을 그만 두어야했다.
큰아이가 고3인데 공부도 염려가 되었고, 이제 무엇을 해야하나.
나이먹은 날 다른 학원에서 받아줄리 없고...

그래도 무엇이든지 시작을 해야했다.
자동차보험...
생각하기 싫다.
남들앞에서 죽어도 하기싫은 말을 해야했고, 아는사람
?아가면 혼자사는 여자라고, 한번놀아보자 하고...
처음으로 무지하게 자존심도 상해보고, 비참한 생각도
들었었던때였다.

종업원모집 이란 광고가 붙은 식당을 ?아갔다.
주인, 날보더니 "아줌마가 일하시려구요?" "네"
"손좀 봅시다" "아니! 아니 이런손을 가지고 무슨일을
한다고 그래요!"
난 펑펑울면서 집엘 왔다. 내손이 어때서...작게 생겼다고
일못하나, 정말 웃겨! 흥, 첨부터 일 잘하는 사람이 어딨어!
울화가 치미는데 하소연 할 곳도 없고...
아이들 보는데서 울수도 없고...

직업소개소를 ?아갔다.
드디어 파출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 사람많은 식당보다 백번났지.
그런데, 이것또한 장난이 아니였다.
이불이란 이불은 몽땅 끄집어내어 그것도 손빨래를 하란다.
빨래하기 좋아하는 나도 이건 아니지싶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자식들 먹여살리려면...
날 배신한 남편에게 한바가지, 아니 한양동이 욕을 퍼붓고
씩씩하게 일을했다.

난 아이들에게 기도부탁을 했다.
엄마의 직장을 놓고 기도좀해주라...

그리고...
난 지금의 직장을 잡을 수 있었다.
아! 이감격...
음악 마음대로 들을 수 있지, 인터넷들어와 놀 수도 있지...
천국이였다, 천국!
이곳에 온지 일년이 넘었다.
내게 감사하단다. 잘해주셔서 번창한다고...
내가 고마운데...

내아이들은 그런다.
"우리엄마 참 대견하네! 밥먹여주지 공부시켜주지...
첨엔 우린 이제 굶어죽었다 했어요, 엄마가 뭘해서 우릴
키워주실까, 근데, 우리엄마 정말 기특해죽겠어!"

난 지금 잠시잠깐 한눈도 파는 여유가 생겼다.
그때문에 세월감이 아깝다.
좀만 더 머물러 있었으면...

다음엔 제가 시작한 사랑이야기로 ?아올께요!